청소년을 위한 골 때리는 인문학
공개되자마자 미국 내 넷플릭스 비영어권 1위 시청기록을 달성할 정도로 <오징어 게임> 이후 최고의 히트작으로 손꼽히는 <중증외상센터>는 천재 외과 전문의 ‘백강혁’의 활약을 담은 아주 유쾌하고 거침없는 이야기입니다.
마침 이 글을 쓰기 이틀 전, 감기 기운이 있어서 병원에 갔거든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께서 너무 무섭게 저를 혼내시더라고요! 평소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들으시곤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으셨습니다. 처음엔 아픈 것도 서러운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표현이 좀 딱딱해서 그렇지 다 저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자기 직업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진심으로 환자를 대하는 선생님 덕분에 한껏 흐뭇해졌답니다. 물론 감기도 금방 나았고요!
어쨌거나, <중증외상센터> 속 의사 ‘백강혁’이 보여주는 의사로서의 태도는 제가 가진 편견을 싹 다 날려주었습니다. 성격이 괴팍한 듯 보이긴 하지만 환자를 살리겠다는 태도만큼은 직업윤리라는 측면에 있어 정말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거든요. 아마 세상엔 이런 의사 선생님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이 계시겠죠?
참, 저도 어릴 적엔 <중증외상센터> 속 ‘백강혁’처럼 멋진 의사가 되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구호활동가로 활동하겠단 포부가 있었습니다.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성직자가 되어 아프리카나 남미 대륙으로 향해 학교를 짓고 교육활동을 하고 싶단 마음도 있었죠. 어느 정도 머리가 크고 나서는 정치인이 되어 국가 발전은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과 차이를 사라지게 하고 싶었고, 교사가 되어 ―결국 진짜 교사가 되긴 했지만―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을 찾아주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도 싶었습니다. 돌아보니, 과연 제가 잘살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어떤 내일을 꿈꾸고 계십니까?
전국 17곳에 설치된 권역외상센터는 중증 외상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마지막 방어선으로 여겨지는 곳입니다. ‘중증 외상’이란 교통사고나 산업 재해 등으로 인해 발생한 심각한 부상을 의미합니다. 당연히 신속하고 전문적인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매년 200만 명에 가까운 외상환자가 발생하고, 이 중 중증외상환자는 약 7만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2015년, 권역외상센터가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이후 ―기존에 30%가 넘는 수치였던―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이라는 건 결국 적절한 시간에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다면 생존할 수 있었던 환자들의 비율을 의미하는데, 권역외상센터와 이를 이루고 있는 시스템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수치라 할 수 있겠죠?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권역외상센터 중 제대로 기능하는 곳은 손에 꼽힐 정도라 합니다. 조금 역설적일 수도 있는데, 그게 전국적으로 권역외상센터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더라고요. 시설과 인력이 집중되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뿌려지듯 엉성하게 존재하여 이도 저도 아닌 운영이 되고 있는 상태란 것입니다. 권역외상센터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갈수록 크게 인식되고 있지만 시스템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분들이 계십니다. 외과․흉부외과․정형외과․신경외과․응급의학과․마취통증의학과 등 전문의 인력, 외상소생실․외상중환자실․외상병동 운영을 위한 간호사 인력 등 ‘필수 인력’이 확보되어야만 하죠. 하지만 장시간으로 근로하는 상황들이 이어져 번 아웃이 일상화되면서 의대생들에게 필수 의료는 자연히 기피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처우 개선 등을 주제로 정부와 의료계가 지속적인 대화와 협력을 해야 하지만, 오히려 갈등의 골만 점점 더 깊어지는 상황이라고 하네요.
정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 처음엔 의사들 탓을 하기 바빴습니다. 어차피 돈도 많이 버는 귀족과도 같은 직업이지 않은가, 뭐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었죠. 하지만 몇 달 전 BBC 뉴스 코리아에서 취재한 권역외상센터의 현실을 보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방송에 출연한 의사분들께선 스스로를 ‘멸종위기종’이라고 칭하더군요. <중증외상센터>에서 환자가 이송됐을 때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의사분들의 모습은 연출이 아니라 실제였습니다. 자다가, 식사하다가, 심지어 씻다가도 위급 환자가 생기면 모든 걸 제쳐두고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그들의 투쟁이 시작됩니다. 30시간 넘게 연속 근무를 하기도 하고 일주일 근무 시간이 80시간을 훌쩍 넘어간다고도 하네요. 쓰러지지 않는 게 다행이죠. 쉬고 싶어도 제대로 쉴 수가 없는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필수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외상센터에서 6년째 근무하시는 모 교수님께선 단 한 번도 후배 의사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네요. 그런데 저라도 여긴 선택하기 힘들 것 같아요. 이분들을 위한 처우개선은 몇 년째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다 위급 상황을 대처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혹시나 환자가 사망했을 시 받게 될 심리적 부담 등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것투성이입니다.
결국 정책적인 개선이 시급합니다. 전국의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시스템 점검은 물론 응급의료용 헬기 확보 등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죠. 게다가 외국과 달리 우리는 건축법과 항공법이 상충하여 긴급하게 헬기가 운용되면 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정책 전문가들의 논의가 제대로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미래를 준비하며 AI 기술 등 첨단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할 테고요.
마르틴 하이데거는 존재에 관한 끊임없는 탐구를 통해 우리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이끌어준 독일의 유명 철학자입니다. 하이데거의 이론은 너무 난해해서 전공자들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이 많은데, 그래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가 있다면 알아둘 필요가 있겠죠?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이란 저서를 통해 ‘존재자’, ‘존재’, ‘현존재’라는 개념을 설명합니다. ‘존재자’는 존재해 있는 모든 것들, 즉 인간과 자연물 모두를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심지어 여러분이 지금 들고 있는 그 책 역시도 존재자에 해당하는 셈이죠.
이 이론에서 정말 어려운 개념은, 하이데거가 ‘존재자’와 ‘존재’를 구분한다는 점입니다. 정말 쉽게 설명하면 ‘존재’란 말은 ‘있다는 것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우린 좀 더 심오한 접근을 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비롯해 세상의 모든 사물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세상 삼라만상은 각각 반드시 존재하는 이유를 지니고 있죠. 예를 들어 부엌에 있는 칼, 이 칼이 우리에겐 요리를 위한 평범한 도구로 여겨지겠으나 범죄자에겐 살인을 위한 잔인한 도구로 여겨지겠죠? 우리가 어떤 상태 혹은 상황 속에 머무느냐에 따라 대상에게 부여하는 의미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란 곧 ‘존재자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정도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존재’에 관해 묻고 답하는 존재자는 오직 인간밖에 없죠? 그래서 인간을 ‘현존재’라고 부르며 다른 존재자들과는 구분합니다. 스스로 존재에 관해 고민하는 유일한 존재자라는 뜻이죠. 그런데 하이데거의 이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과연 우린, 우리 존재에 대하여 제대로 물음을 던지고 있을까요?
인간은 세계 안에 머무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미 만들어진 세계에, 마치 던져지듯 어느 순간부터 저절로 발을 디디고 살았죠. 그러다 보니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따라서 수동적으로 살아갑니다. 내 고유한 가능성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그저 남들처럼 살아갈 뿐이죠.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학교, 학원, 대학을 가고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그저 대입만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죠.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르는 채 아무런 의심 없이! 하이데거는 이러한 삶의 방식을 ‘비본래적인 삶’이라고 규정합니다.
물론 반대 개념도 있습니다. ‘본래적인 삶’이라고 부르는 이 개념은 ‘죽음’을 의식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삶은 언젠간 끝난다는 걸 인지하면 지금 이 순간을 결코 낭비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죠. 나는 누구인지, 내가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계속해서 묻고 또 묻는 본래적인 삶! 우린 이러한 삶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근데 누구에게 물어요? 에이, 그거야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