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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수고하셨다는, 진심 어린 말 한마디(1)

청소년을 위한 골 때리는 인문학

by 웅숭깊은 라쌤

폭싹 속았수다, 2025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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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고 힘들 때 우리가 해야 할 일


아이유와 박보검이 주연을 맡았단 사실만으로 공개 전부터 이미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는 단연 2025년을 강타한 최고의 흥행작입니다. 전 국민을 웃기고 울린 이 작품,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땐 ‘폭싹 속았다고? 누가 속였길래 홀딱 넘어가 버렸나’하고 걱정했지만, 알고 보니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란 의미의 제주도 방언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부모님 세대를 향한 헌사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일단 살고 보는 게 더 중요하던 시절, 그때의 부모님들에겐 그저 먹고사는 것만이 다는 아니었습니다. 자식에게 같은 삶을 대물림하지 않는 것,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문제였고, 그래서 끝까지 교육을 놓지 않았죠. 그리고 이를 위해 그들 스스로의 삶은 모조리 내어놓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건 시절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부모라는 존재들은 자식을 위해 기꺼이 본인의 삶을 내려놓고 있으니까요. 여러분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혹시나 방황하거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땐, 지금 그분들이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시는지를 떠올려보세요. 그들이 피땀 흘려 일하는 이유, 오직 여러분입니다.



1960년대, 처절했지만 강인했던 그때의 어머니들


<폭싹 속았수다>의 이야기는 1960년대 제주도에서 시작됩니다. 조금은 낯설 수도 있는 당시 제주도 여성들의 삶을 고스란히 옮겨놓았죠.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제주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그야말로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제주도 해녀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실제로 1960년대에는 26,000명이 넘는 해녀들이 활동했으며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져 2016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제주를 넘어 대한민국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이죠.

1105년, 고려 숙종 때 ‘해녀들의 나체조업을 금한다’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제주 해녀의 기원을 따지기 위해선 약 1,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후 조선시대 기록에는 해녀와 관련한 내용이 꽤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공물 할당량이 증가하며 이탈자가 많았다는 안타까운 기록도 발견됩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이 전쟁 준비를 하며 해산물을 전쟁 용품으로 조달하기 위해 제주 해녀들을 수탈하였다는 기록도 있죠. 지금이야 제주도가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여겨질 정도로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당시 제주도는 척박한 환경으로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강한 바람과 잦은 물난리로 살기 썩 좋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물질 말고는 답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하나 제주도 주민들, 특히 여성들은 처절했지만 강인했습니다.


이여싸나 이여싸나

이여싸나 이여도싸나

밋밋하ᆞ간 물절에

해풍만 치고요

허적소리 나는것은

연락선만 소리로구나

져라쳐라 쳐라베겨라

하ᆞ간목을젓엉 남을준덜

허리야지덕 배지덕말라

놈의나고대 애기랑배영

허리야지덕 배지덕 말라

우리어멍 날날적에

가시나무 몽고지에

손에궹이 벡이라고

날났던가

이여싸나 이여싸나

(하략)


1971년 8월 26일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해녀 노래’의 일부입니다. 원래 옛 노래 해석을 좋아하는 편인데 제주도 노래는 확실히 방언이 녹아들어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군요. 하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여싸나 이여도싸나’란 후렴구만으로도 그들의 역동성이 여실히 느껴집니다.


제주 해녀.jpg 해녀들의 물질

해녀들의 물질 작업은 공동체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반드시 정해진 규칙을 지켜야 했고, 이러한 공동 작업 덕분에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죠. 제주 해안가에서 종종 원형 모양으로 돌담을 쌓아놓은 ‘불턱’이란 곳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해녀들이 바다로 들어가기 전 함께 준비하고, 또 함께 불을 피우고 쉬기도 하며, 또 함께 담소를 나누며 채취한 해산물 손질 작업을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함께’라는 문화는 바다 밖에서도 유효했습니다. 물질을 통해 얻은 이익으로 기금을 조성해 마을 길을 정비하거나 학교 건물 신축에 기여하였고, 수익금을 마을 일로 수고하는 이장에게 격려 차 전달하는 ‘이장바당’, 초등학교 육성회비로 충당하는 ‘학교바당’ 등도 있었다고 하네요.

그들이 바다에서 건져 올린 건 비단 해산물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산소통도, 보호장비도 없이 오직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자신을 내던진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많은 후손들이 내일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그러한 희생과 헌신은 제주도에만, 과거에만 있었던 것은 또 아닐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엄마 아빠가 벌레가 되었다면?


“그는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벌렁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약간 들자, 활 모양의 각질로 나누어진 불룩한 갈색 배가 보였고, 그 위에 이불이 금방 미끄러져 떨어질 듯 간신히 걸려 있었다. 그의 다른 부분의 크기와 비교해 볼 때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앞에 맥없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중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는 잠든 사이 갑자기 벌레로 변신해 버립니다. 자신이 흉측한 벌레가 되었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죠? 원래 그레고르는 가족들을 부양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당장 돈을 벌어오지 못하면 집안의 생계가 문제 될 수 있었죠. 그렇다고 별 수 있나요, 방 안에 갇혀 여동생이 챙겨주는 식사로 겨우 연명하는 수밖엔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나름으로 살아갈 길을 모색합니다. 여동생은 취직에 성공하고, 어머니는 집을 하숙집으로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했죠. 그리고, 방 한구석을 차지한 그레고르는 가족의 ‘진짜 벌레’ 취급을 받게 됩니다. 가족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그는 점점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죠. 결국 그렇게 지쳐 죽고 맙니다.

갑자기 벌레라니, 조금 당황하셨죠? <변신>이란 작품 속 이야기는 비현실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 우리네 현실에서도 그레고르는 종종 발견됩니다. 벌레 말고, ‘버림받았다’란 측면에서 접근해 보면 말이죠.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jpg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일리야 레핀 1888


위 작품은 러시아의 화가 일리야 레핀이 그린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란 제목의 그림입니다. 당시 러시아 제국은 민중들을 높은 강도로 탄압했고, 혼란한 사회상을 혁명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이들도 여기저기서 등장했죠. 이 그림 속 좌측의 남성은 혁명을 시도했다가 실패하여 오랜 기간 집을 떠나 노역 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아마도 나머지 인물들은 그의 가족들인 것 같죠? 여기서, 가족들의 반응이 참 희한합니다. 다들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네요. 문을 잡고 서 있는 ―아내로 추정되는― 인물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 같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입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를 반가워하기는커녕 의심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무슨 범죄자를 만난 양 흠칫 놀라 일어선 딸의 모습에선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가족이란 집단이 처참히 붕괴된 상황을 묘사한 이 작품을 통해 우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 작품은 러시아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 더욱 짙게 반영되어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혁명이란 사회적 가치를 좇다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그래서 가족들에게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 한 남성의 버려짐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잠깐, 가장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으니 가족들에게 버려져도 괜찮다, 이런 얘길 하고 싶은 건 아니겠죠? 적어도 가족이라면 그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그가 겪은 고통에 공감해 주어야 하며 다시 한번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족은, 도구가 아니니까요.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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