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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수고하셨다는, 진심 어린 말 한마디(2)

청소년을 위한 골 때리는 인문학

by 웅숭깊은 라쌤

폭싹 속았수다, 2025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쓸쓸히 노년을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이 2023년 기준 200만 명에 육박합니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봉사했지만, 정년으로 은퇴한 뒤 가족들에게 외면받는 부모님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하죠. 벌레가 되어 더는 일할 수 없게 된, 그래서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변신> 속 그레고르와 일리야 레핀의 그림 속 남자와 다를 게 없는 모습입니다. 물론 독거노인의 발생과 관련하여 고령화, 핵가족화, 비혼 증가 등의 요인이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자녀와의 관계 단절이란 측면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 간의 연락이 끊기는 사례가 많다고 하네요. 노후 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부모의 입장에선 자식에게 손 벌리는 건 쉬운 행위가 아닐 겁니다. 오히려 자식들에게 부담을 줄까 염려되어 스스로 멀어지는 분들도 계시겠죠.

자,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회 구조를 개편하고 제도를 개선한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만, 가장 필수적이고 우선적인 건 우리의 마음가짐을 고쳐먹는 겁니다. 종종 가족을 하나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이들도 있거든요. 가족의 희생을 당연시하지 않고 늘 감사하며 사는 것, 이게 우선입니다.


효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


‘효’는 종교를 초월하고 이념을 뛰어넘으며 시대를 아우르는 보편적이면서도 최고의 덕목입니다. 그렇다면 '효'는 무엇입니까? 오해라면 오해일 수 있는 부분인데, 단순히 부모님이 늙어서 스스로 생활하실 능력이 사라졌을 때 정성껏 마음을 다해 보살피는 행위만을 효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효는 그저 당연한 의무로써 접근해선 안 됩니다.


춘추시대 말기 패권을 다퉜던 오월吳越, 두 나라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룬 <오월춘추>라는 역사서에는 활을 잘 쏘는 것으로 알려진 ‘진음’이란 인물의 일화가 담겨 있습니다. 당시엔 매장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하얀 보자기에 싸서 들 가운데 버리는 풍습이 지배적이었다고 합니다. 진음도 돌아가신 부모님 시신을 들판에 버려두고 돌아서려는데, 들짐승이 달라붙고 날짐승이 날아들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죠. 이를 쫓아내기 위해 돌도 던지고 활도 쏘고 하며 끝까지 곁을 지켰다는 내용입니다. 가만 두었으면 부모님 시신이 짐승의 밥이 되었을 테니까요. ‘효’란 이런 겁니다. 죽어서도, 결코 끝나지 않는 행위란 말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비록 그들이 세상을 떠났을지라도― 자식으로 해야 할 도리를 다해야 하겠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효는 모든 것을 뛰어넘습니다.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있죠. 성경 말씀에선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하느님이 내려주신 계명이 존재하고, 고대 로마에서도 ‘Pietas erga parentes’라 하여 부모를 공경하는 의무를 미덕으로 여겼던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언제부턴가 거꾸로 ‘올바른 부모의 역할’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더욱 지배적인 경향성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식에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가?’, ‘자녀 교육을 위해 부모가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을 주고받으며 그분들은 계속해서 애쓰는 중이십니다. 이미 격동의 학창 시절을 보냈던 이들이 또다시 ‘자녀 교육’이란 새로운 학문에 발을 담그고 열심히 학업에 정진하고 계시지요. 아니, 대체 이게 맞는 겁니까? 부모란 이유만으로 이미 자녀들에게 모든 걸 쏟아부어 주고 계시는데, 뭘 더 하게 두실 건가요?


공부는 사실, 우리가 해야 합니다. 뭘 공부해요? 무엇이 ‘효’이며 왜 ‘효’를 실천해야 하는지를 말이죠! 공자의 제자 중 한 명인 증자는 효도에 관한 도리를 모은 책인 <효경>을 집필했습니다. ‘신체와 터럭과 살은 부모에게 받았으니 훼손하지 않아야 효의 시작이고, 몸을 세워 도를 행하고 이름을 후세에 남겨 부모를 드러나게 하는 것은 효의 마지막이다. 효는 부모를 섬김에서 시작되고, 군주를 섬김이 중간이고, 몸을 세움을 마지막으로 삼는다’라고 효의 개념을 설명했죠.

부모님께 물려받은 신체를 상하게 해선 안 된다? ‘신체 발부 수지부모’라고도 하죠. 우리가 아프면 부모님 마음이 찢어지실 겁니다. 절대 아프면 안 되겠죠? 그리고 아프지 않아야 우린 ‘입신양명’, 즉 사회적 성공을 위해 노력할 수 있고요. 누구나 성공을 꿈꾸지 않나요? 그렇게 본인이 원하는 꿈을 이뤄내고 나면 그 자체로 부모님의 자랑이 되겠죠! 그러니 이 역시 효도입니다.


증자.jpg 증자

앗, 결과적으로 보면 효란 결국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데서 출발하는 거였어요! 남 잘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위해 효도해야 한다는 것이라니까요?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 아마도 지금은 학생 신분이니 학업에 충실하며 사는 것이 가장 큰 효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여기에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도리도 잘 지켜야만 하겠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기, 어른들께 예의 갖추기 등등. 그것이 성공을 위한 기본 조건 중 하나니까요. 말 안 해도 다들 잘 알고 있죠?



그나저나 이 작품, 더 재미있게 즐기려면?


시대적, 지역적 배경의 특색을 매우 잘 살린 작품입니다. 전문가들도 그러한 디테일을 극찬하곤 했습니다. 양말이나 머리핀 하나마저도 1960년대를 고스란히 반영한 소품들로 채워놓았고, 현대사에 빠질 수 없는 사건들이 소재로 활용되어 인물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부모님 세대,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에서는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고 또 어떤 젊은 시절을 살아오셨는지를 상상하게 해줍니다.

더불어 ‘가족’이란 클리셰, 쉽게 말해 작품을 관통하는 중심 설정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변함없이 감동을 선사하잖아요? 특히 이 작품은 가족 간의 사랑과 갈등, 이별과 아픔을 그 어떤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벽에 가깝게 잘 녹여냈습니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감동의 드라마인 셈이죠. 그러니 여러분, <폭싹 속았수다>를 기왕이면 가족들과 함께 꼭 감상해보셨으면 합니다.



*더 생각해보기

Q. 안중근은 부모와 처자식을 두고 하얼빈으로 가는 길을 결단했고 결국 이토 히로부미 암살의 거사를 성공했다. 조국과 가족 중 조국을 선택한 안중근은 비판받아야 할까?

Q. 부모는 자식을 몇 살까지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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