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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게 아닙니다, 그저 ‘다른’ 겁니다(1)

청소년을 위한 골 때리는 인문학

by 웅숭깊은 라쌤

두 교황, 2019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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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둘로 갈라진 세계


진보와 보수, 남성과 여성, 구세대와 신세대, 영남과 호남, 빈곤층과 부유층, 노동자와 기업가……. 아무리 늘어놓아도 끝없이 이어질 우리 사회의 갈등입니다. 세계가 완벽히 갈라졌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지경이죠. 어느 정도의 갈등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아예 공존이 불가능해보일 정도이니, 이젠 정말 그 심각성을 더는 외면할 수 없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팽배해져 있는 갈등 양상을 해결할 방법은 뭘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답은 안다고 해도 절대 몇 가지 단어로 정리해 낼 수 없을 것 같네요. 다만, 우린 이 영화를 통해 어느 정도 답에 근접할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두 교황>!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에 역대 두 번째로 자진 사임한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그를 이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만남과 충돌, 그리고 화해를 그려낸 <두 교황>은 전 세계인들의 감동과 환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우린 이 작품을 통해 늙은 신부님들의 투정이 아닌, 전 세계인들에게 전하는 화합의 메시지를 발견해야만 합니다. 첫 만남부터 두 사람은 모든 것이 반대인 상태였습니다. ‘전통’과 ‘개혁’으로 대변되는 그들의 견해 차이는 시종일관 강렬한 불꽃을 튀겼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친구가 됩니다. 그 과정이 궁금하시죠? 안 그래도 지금 막 소개해 드릴 참이었어요.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볼까요?



교황에 관하여


교황이란 가톨릭교회 전체의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전 세계 14억 신자들을 대표하기에 정치적, 외교적으로 매우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죠. 2,000년 가톨릭 역사에서 무려 266명의 교황이 재위하였고, 2025년 5월 8일, 267대 교황 레오 14세가 즉위하였습니다. 종교의 역할은 그저 한 종교 내의 일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교회 역시 교회 일치 운동이나 교리 전파뿐 아니라 자선 활동이나 인권 수호 활동, 환경 보호 활동 등에 앞장서는 역할을 하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막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역할 역시도, 교황의 큰 책임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체계적인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티칸 시국의 교황을 지도자로 두고 ‘추기경’들이 각국의 사목을 관리하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한 국가 내에도 지역마다 교구가 구분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서울대교구, 수원교구 등 총 16개 교구가 존재하고, 교구마다 ‘주교’들이 지역 교회를 관리합니다. 지역 교회 안에서도 ‘대리구’라는 하위 체계가 존재하고, 그곳의 책임자로 대리구장 신부가 존재하고 있죠. 세계 그 어떤 조직보다 광범위하지만, 그 어떤 조직보다 완벽한 체계로 운영되는 집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교황이란 직위가 엄청난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기도 하고요. 당연히 아무나 그 자리에 앉으면 안 되겠죠? 그래서 전임 교황이 선종하면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단이 세계 곳곳에서 소집되어 교황 선출을 위한 비밀회의가 열리게 됩니다. 이를 ‘콘클라베’라고 부르죠.

‘콘클라베’는 ‘함께’라는 뜻의 라틴어 ‘cum’, ‘열쇠’라는 의미를 가진 ‘clavis’의 합성어인 ‘쿰 클라비’(cum clavis)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열쇠로 문을 잠근 방’을 의미하는 단어죠. 추기경단이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비밀 투표장인 시스티나 성당 문을 걸어 잠그고 그 안에서 선거를 진행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생각됩니다. 역사가 길다 보니 선출 규정도 계속해서 변화되어 왔는데, 최근에는 일정 비율 이상을 득표할 때까지 투표가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방식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최소 득표자를 배제하여 점점 후보를 압축하는 형식이기도 하죠. 20세기 들어 열린 콘클라베 중엔 14차례나 투표 횟수를 거친 경우가 있었고, 추기경단의 갈등이 첨예하던 1268년의 콘클라베는 무려 2년 9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교황이란 지위는 세계인의 평화와 안식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그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직접 세례를 주었던 장면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뭉클한 기억으로 남아있죠. 2025년 새로이 선출된 레오 14세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 전쟁으로 세계 곳곳이 조각조각 찢어지고 있는 상태니까요.



두 교황, 하나가 되다


독일 출신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은 2005년 4월, 77세의 나이로 교황으로 즉위합니다. 1차대전 시기에 교회의 중립을 지키고 평화를 위해 노력한 베네딕토 15세에게서 이름을 따와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8년 후, 2013년 2월 스스로 교황직에서 사임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흔한 일은 아니죠. 가톨릭 역사상 고작 두 번째였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퇴임 이후 어느 수도원에서 매일 기도와 책 쓰기를 하며 일상을 보냈고, ‘주여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한 마디를 남긴 채 향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야말로 ‘학자’였던 그는 무려 10개 국어를 할 정도로 명석한 인물이었습니다. 영화에서도 묘사되었지만 수준급의 피아니스트이기도 했죠. 무엇보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회의 전통과 원칙을 강조하는 분이었습니다. 동성애와 같은 가톨릭이 직면한 사회 문제와 관련하여 절대적인 불관용의 원칙을 제시했죠. 반이슬람주의적 행보를 보이며 갈등을 야기하기도 하고, 사제들이 교회법을 위반한 경우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신념에 위기가 생긴 사건이 있었으니, 소위 ‘바티칸 리크스 스캔들’이라 불리는 바티칸의 기밀문서 유출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베네딕토 16세의 개인 비서였던 ‘파올로 게이브리얼’은 교황청 관련 문서 1,000여 건을 ‘잔루이지 누치’라는 기자에게 유출했고, 그는 이 문서들을 토대로 한 권의 책을 발간합니다. 해당 문서에는 성직자들의 뇌물 비리, 바티칸 은행의 돈세탁 혐의 등이 담겨 있었다고 하네요. 사실 여기서 교황은 이미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은폐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죠.


베네딕토 16세.jpg 교황 베네딕토 16세

하지만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향한 모든 비판은 그의 마지막 선택으로 지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역시도 가톨릭교회가 품고 있던 크나큰 문제들을 인지하고 있었고, 자신은 이를 해결할 능력이 부족하다 스스로 판단한 듯합니다. 그래서 적임자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었죠. 잘못을 진 이가 스스로 사임한 게 뭐 그리 대단하냐 반문할 수 있지만, 사실 교황은 ‘신 바로 아래’에 위치한 자이고, 그야말로 막강한 권력을 지닌 존재라 할 수 있기에 쉽사리 자리를 내놓기 어려운 위치이기도 합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교황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넘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하나의 ‘승복’이었다고 볼 수 있죠.

후임자는 아르헨티나 추기경 ‘호르헤 베르고글리오’였고, 베네딕토 16세를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등극하죠. 역사상 최초의 남반구 출신 교황이었던 그를 나타내는 가장 명확한 키워드는 다름 아닌 ‘거리’였습니다. 다소 권위적일 수 있는 가톨릭 사제들의 보편적 이미지와 달리 늘 거리에서 신자들을 직접 만나며 소통하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의 인물이었던 그는 용기를 내어 세계인들 앞에 서서 가톨릭교회의 지난 과오를 사죄합니다. 덕분에 가톨릭에 등을 돌렸던 수많은 신자들이 다시 성전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요. 두 교황의 용기 있는 결단들이 수많은 이의 새로운 믿음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jpg 교황 프란치스코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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