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섬 로맨틱>

by ratatouille

잔나비의 노래를 아주 즐겨 듣던 사람도 아니었고

그다지 잔나비를 좋아하는 편도

싫어하는 편도 아니었는데요

〈외딴섬 로맨틱〉은 저에게 참 신기한 노래 중 하나입니다


자주 찾게 되는 노래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추천하고자 하는 노래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한 번 듣기 시작하면 쉬이 멈추기가 힘들더군요

이유를 생각해 보니 자꾸만 그 가사를 읽게 돼서인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노래를 들려준다기보다는

가사를 읽어준다는 말에 더 가까운 노래인 것 같습니다

이 어디서 왔나 싶은 노래 하나가

요상하리만치 정말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느낌입니다

마치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아닌 어색한 사람과의 대화에서

알 수 없는 위로와 안도감을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대로 이대로

더 길 잃어도 난 좋아

노를 저으면 그 소릴 난 들을래]


가사에도 나오듯

말 그대로

노를 저으며 나아가는 것만 같은 그런 노래입니다

근데 이제 어디로 가는지는 잘 모르겠는

그리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는

또는 몰라도 되는 그런 노래입니다


마음대로 가사를 다시 읊어 보자면

외딴섬 로맨틱을 꿈꾸는 몽상가들이

작은 배를 몰고 광활한 바다를 모험합니다

그들은 그 배 위에서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노를 저으며 나아가고

깜깜한 밤을 맞고

달빛을 맞으며 다시 노를 젓고

그 소리를 들으며 다시 나아갑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도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 작지만 아늑해 보이는 쪽배를 타고

함께 나아가고 싶어서일까요

아니면 길을 잃어도 좋다는 그 한마디가

참 듣기 좋아서일까요

아마 둘 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노래에는 ‘나’가 있고

‘너’도 있습니다

두 눈으로 꼭 봐야만 믿는 ‘너’를 위해

끝에 그 무엇도 없다는 것을 앎에도 노를 젓는 ‘나’

그리고 그런 ‘나’가 돌아가자고 말하면

그저 웃다 고개를 끄덕여 줄 ‘너’

‘나’의 옆에 ‘너’가 있고

‘너’의 옆에 ‘나’가 있다는 것이

이 노래를 참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 작은 배 위에 ‘나’와 ‘너’는

연인이 아니더라도 사랑이지 않을까요

그들은 계속 사랑을 외치며

사랑 노래를 들려주지만

이 노래는 저에게 ‘사랑’보다는

‘믿음’에 가까운 무언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노를 저을 수 있던 동력은

저 멀리 존재하는 무언가의 존재를 믿어서이기보다

서로를 믿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러지 못했다면 나침판을 들여다보느라

서로의 노 젓는 소리는 듣지도 못했겠죠

어쩌면 출발조차 못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사랑’과 ‘믿음’은 참 다르게 생겼지만

정말 많이 닮아 있습니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처럼 말입니다

한 배에서 태어나 조금 다른 길을 걷는 것뿐이죠


그럼 사랑하면 믿을 수 있을까요

또는 믿는다면 사랑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누군가를 믿기 위해 사랑하는 걸까요

사랑하기 위해 믿는 걸까요

참 말장난 같은데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모르지 않을까요


어쩌면 사실 잘 모르고 싶은 것 같기도 하네요

경외감을 느낄 정도의 난제는

가끔은 눈감고 넘어갈 필요도 있거든요

어려운 것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참 부러운 노래입니다

그들이 어딘가로 정확히 향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노 젓는 소리를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으니까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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