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겐 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하고

by ratatouille


머무는 환경에 완전히 안주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지면

자꾸만 내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 하나로 정리해보자면

저는 제가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말에 웃어야 할지 모를 때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을 때

그런 것들이 정말이지 어렵습니다

무슨 말인지 몰라 그저 웃어넘기는 일이 많아지고

어디를 가든 제 행동거지에 대해 생각해보며 주변을 살피게 되고

사실 그것들이 제일 재미없어하던 일들이었는데

여기서는 꽤나 자주 그러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도서관 카페에서 마트에서 산 작은 간식빵을 꺼내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옆 테이블 할아버지 분께서 가방에서 코카콜라를 꺼내시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고 하나 꺼내 먹었습니다

먼 타지에서 아침을 시작하고, 점심을 맞고, 저녁을 마무리하다 보면

가끔 정말 내가 겉만 번지르르해 보이고 싶어하는 돌멩이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베르겐 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하였는데

제가 기념품 숍에서 구매한 것은 잘 닦여 있는 돌멩이 하나였습니다

그저 돌멩이 하나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냥 돌멩이 하나입니다

구르는 재주도 없는 돌멩이 하나가 저와 좀 닮아보였습니다

하지만 돌은 원래 혼자 구르지 못하는게 자연 명제니까

딱히 괴념치 않습니다

박물관에서 공룡뼈는 못 봤지만

제 몸체보다 수백 배는 큰 고래뼈와 고대 조류들을 봤습니다

예전에 누가 제 자신이 아주 작은 우주의 먼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했었는데

제 생각에는 지구의 먼지라 생각해도 충분하겠더군요

너무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이

충분히 멋진 먼지로 거듭날 수 있겠습니다

웃기게도 인간도 언젠간 멸종해서 저렇게 뼈만 남길까 생각하면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습니다

뼈는 말도 못 하고 노래도 못 하니까요

조롱도 하지 못할 겁니다

제 처지를 비관하는 건 아니고

그저 수많은 박제 동물들과 눈을 맞추다 보니

제 자신이 지하실에 갇혀 연구만 하는 괴짜 과학자라도 된다고

잠시 생각하게 된 모양입니다

외로움이란 뭔지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인간은 평생 외롭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같이 있어도 외롭고, 혼자 있어도 외롭고

물론 인복이 좋은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건지

살면서 지금껏 정말 혼자 남겨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함부로 꺼낼 수 없는 말이긴 합니다

아무튼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황동규 시인의 시집을 읽은 건 아니고

펼쳐본 적이 있었는데

‘홀로움’이라는 말을 쓰시더군요

홀로이지만 즐거운 외로움을 칭하는 시어라고 합니다

‘외로움’에서 명도를 높이면 ‘홀로움’이 되는 걸까요?

생각해보면 둘 사이를 좀 모르고 사는 것도 참 편할 것 같습니다

정말 사무치게 외로워도 그 외로움에 취해서 ‘홀로움’이라고 착각하도록 말이죠

그래서 정말 재미있는 사람은 외로움에 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지 생각해봤습니다

취한다는 게 말이죠, 하여튼 좋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

순식간에 가버리잖아요, 아주 훅 말이죠

그 사이에 조금의 이성도 끼어들 틈이 없을 만큼 넋을 빼앗기는 겁니다

쳇지피티에게 물어봤는데 이러한 상태를

“외로움이 나를 압도해서, 그 감정이 나의 정체성이나 세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라고 정의하더군요

그래서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외로움으로 저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쉬이 되지는 않으니까요

이전에 <1997년 12월 24일의 홀로움>을 읽으며

황동규 시인은 1997년 크리스마스에

솔로였을 것이라 추측했는데

어쩌면 솔로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외로움에 잘 취해 있다면 말이죠

내일은 미술관이 꼭 문을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동물 친구들을 이틀 연속 보고 싶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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