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 IT, BLAME IT〉

미디어는 무엇을 보여주고, 우리는 어떠한 눈으로 보는가

by ratatouille

모두에게 ‘처음’이라는 수식어는 자극적일 만큼 강렬하기 마련입니다.

전시의 첫 작품은 전시에 들어서는 관람객들을 압도하고, 전시 전체의 온도를 결정합니다.

지난 11월, 과천 MMCA의 해외 명작 시리즈 전시를 방문하였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거대한 크기의 디지털 프린트 작품을 마주하게 됩니다.

위의 작품은 미국의 개념미술 작가 바바라 크루거의 〈SHAME IT, BLAME IT〉입니다.

그녀는 첨예한 바늘이 동공을 위협하려는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냅니다.

그리고 그 작품은 〈모욕하라, 비난하라〉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옵니다.

작품의 거대한 크기와 압도적으로 강렬한 인상은 작품을 보는 이들의 눈 또한 자극합니다.

순간 우리는 알 수 없는 위협을 느낍니다.

마치 거대한 바늘이 우리의 동공을 향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거대한 바늘의 형상과 의뭉스러운 작품명은

미디어와 우리의 시선에 대해 질문하게 합니다.

현대 기술 사회에서 미디어는 불가피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도구입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하루를 시작하고, 미디어를 통해 세상과 연결됩니다.

미디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이 아니라 개인과 세상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 것입니다.


과거 ‘퓰리처상 사진전’에서 보았던 1994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케빈 카터의 작품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독수리에게 쫓기는 남아공 소녀의 사진을 찍어 큰 명예를 얻었고,

동시에 그 사진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독수리를 쫓아버리지 않고 먼저 셔터를 누른 그의 선택을 질타하였습니다.

그가 미디어에 올린 사진은 남아공의 참상을 사람들에게 전달했지만,

동시에 그 미디어라는 물살을 타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그에게 돌아왔습니다.


미디어는 세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무게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순환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울고 웃고 살아가며, 누군가는 죽습니다.

그 안에는 언제나 사람의 삶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미디어는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자 현실 그 자체입니다.


미디어는 아주 잘 닦인 ‘투명한 창문’이 아닙니다.

누가 쓰고, 누가 읽느냐에 따라 색과 질감이 변합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눈과도 닮아 있습니다.

마치 우리의 눈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만들듯,

미디어 역시 생각과 결론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인간은 결국 인간 자신과 가장 닮은 도구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은 사랑스럽지만 동시에 위험합니다.

바바라 크루거의 〈SHAME IT, BLAME IT〉은 이러한 미디어의 참상을 우리의 눈앞으로 가져옵니다.

바늘같이 날카로운 부정적 미디어의 주입은

사건을 판단하는 집단적 시선을 위협합니다.

결국 모욕적인 시선이 만들어지고(SHAME IT),

그 시선은 아주 날카로운 비난이 되어(BLAME IT),

다시 또 다른 눈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우리의 시선을 압박합니다.

작품의 거대한 형상은 더 이상 개인의 힘만으로는 통제하기 힘든

거대한 미디어의 압도감을 직관적으로 표현합니다.


작품 앞에 선 우리는 이제 우리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어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고자 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모두가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디어가 때로는 사탕처럼 달콤한 선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그저 삼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맛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이에 해롭지는 않은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본질을 보려는 거시적인 인지,

비판적이고 예리한 시야로 미디어의 영향을 인식하려는 노력,

그것은 살아남은 인간들의 숙명이자 평생의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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