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 MELANKOLI>

by ratatouille


#1.

MUNCH,

LIVSFRISEN


뭉크는 평생에 걸쳐 삶을 연구했습니다.

사랑, 욕망, 질투, 상실, 죽음, 불안 등의

삶의 원형적 감정들은

서로 연결되어 거대한 감정의 띠,

즉 “생의 프리즈(Livsfrisen)”가 되어

그의 회화 세계를 구성합니다.


#2.

MELANKOLI


프리즈 속을 선회하는 감정들은

멜랑콜리아라는 종착지를 향합니다.

결국 그의 작품에는 알 수 없는 우울감이

삶과 함께 동반됩니다.


누군가는 슬픔과 멜랑콜리아를 명확하게 구분해냈습니다.

그것이 그 어원이 남아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멜랑콜리아는 슬픔의 침전물에 가깝습니다.

스펀지에 슬픔과 상실을 적셔 가득 머금은 상태와 같다고 묘사해봅니다.


#3.

<Melancholy, 1894–1896>

: 사랑과 상실의 멜랑콜리아


1891년의 멜랑콜리아를 변주한 그림으로,

뭉크의 친구인 야페 닐센의 불행한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불길하게 요동치는 하늘과 해안의 선들이

사랑의 상실감을 대신 말합니다.


멀리 해변 한켠에는 마주 보고 있는 남녀 한 쌍과

그를 향해 달려가는 또 다른 이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세 사람이 어떠한 관계인지 정확히 정의할 수 없지만,

야페는 자신의 시야 안에 놓여 있는 그들을

가로질러 해변 끝 바다로 시선을 옮깁니다.


야페는 화폭 가장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고개와 시선을 떨구고,

턱을 손에 괴고,

몸이 안쪽으로 말려 있습니다.

그의 자세는 전형적인 “사유하는 멜랑콜리아 포즈”입니다.


<프로이트: 애도와 멜랑콜리아> :

프로이트의 멜랑콜리아는

상실한 대상을 놓지 못하고

그 대상과 감정을 자아 안으로 깊이 들입니다.

감정이 내부에 침전되어 멜랑콜리아로 온몸에 번집니다.


그는 “애도”와 “멜랑콜리아”를 명확히 구분해냅니다.

울고, 분노하고, 회상하고, 서서히 회복해 나가는 애도와 달리

멜랑콜리아는 상실 대상을 자아의 일부로 흡수합니다.


진정한 애도로 대상을 해방시켜 주기 전까지,

멜랑콜리아는 오래도록 내면의 상실의 기억과 감정을 회생시킵니다.


실제로 야페 닐센은 비극적인 사랑을 했습니다.

아스가르스트란드 (Åsgårdstrand)라는 해변 마을에서

그는 이미 기혼자였던 예술가 오다 크로그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야페는 그녀에게 강하게 끌렸지만,

이미 동시에 여러 예술가들과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던 오다는

끝내 자신의 남편에게 돌아갑니다.


그녀와 같은 예술가 그룹에 속해 있던 야페는

오다가 다른 남성과 함께 있는 모습을 계속 봐야 했고

완전히 관계를 끊어내지도 못했습니다.

이러한 비극적 상황은 그를 깊은 멜랑콜리아로 이끌었습니다.


애도되지 못한 그의 사랑과 상실이

그의 깊은 멜랑콜리아로 인해 다시 숨을 얻어

화폭 위에 남겨진 것입니다.



#4.

<Jealousy, 1895>

: 사랑의 상실에 대한 위기


이번에는 뭉크 자신이 화폭의 가장자리에 서

정면을 응시합니다.

공허하고 우울한 눈동자가 비춰 보입니다.

뭉크 또한 삶 전반에 걸쳐

비극적 사랑을 이어 온 인물이었습니다.


베를린에서의 뭉크는 ‘검은 돼지’라 불리던 작은 술집에서

그의 친구 스트린드베르크와 프시비지예프스를 만납니다.

뭉크는 베를린 유학 중이던

어린 시절 친구 다그니 율을 그들에게 소개합니다.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뭉크의 두 친구들은

경쟁하듯 사각관계에 빠집니다.

매력적이고 아름답던 다그니는 결국 세 명의 남성 중

프시비지예프스를 남편으로 선택합니다.

이에 뭉크는 참을 수 없는 질투의 감정을 느낍니다.

그의 감정들은

감출 수 없는 색과 선들로 화폭 위를 채웁니다.

뭉크는 색으로 감정을 표현합니다.

후면의 여성이 걸친 빨간 천,

정체 모를 나무의 빨간 과일,

강렬한 빨강은 그의 내면의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질투는 상실에 대한 위협과

소유를 향한 욕망의 혼합물입니다.

이는 상실과 멜랑콜리아의 서막으로,

위기감과 두려움으로 다시 치장하여

내면에 자리 잡습니다.


#5.

<Death in the Sickroom, 1893>

: 죽음은 상실의 기원이 되어


뭉크는 어린 시절, 가장 사랑하던 누나 소피를 결핵으로 잃습니다.

당시 그 죽음의 현장을 지켜보던 뭉크는 훗날 이렇게 말합니다.


“질병, 광기, 죽음은 내 요람을 둘러싼 검은 천사들이었다.”


화면은 죽음을 지켜보는 유족들의 모습에 집중하도록 초점을 맞춥니다.

뭉크는 남겨진 이들의 얼굴들을 그렸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평온하지만 알 수 없는 우울감이 감돕니다.


일찌감치 상실의 감각을 배운 뭉크는

소피를 애도했지만,

동시에 평생 자신의 멜랑콜리아에 가두었습니다.


뭉크는 반복해서 <Sick Child>와

<Death in the Sickroom>의 여러 버전을 그려 냅니다.

그에게 예술은 그 내면의 멜랑콜리아를 꺼내 되살려 내고,

표출하고 다시 소중히 간직하는 행위에 가까웠습니다.

놓지 못한 사랑은 내면의 구조가 되어 그의 예술적 정체성을 건설합니다.


#6.

<Evening on Karl Johan Street, 1892>

: 근대적 멜랑콜리아 한가운데서


거리에는 검은 복장의 사람들이 흘러나옵니다.

가면으로 무장한 것 같은 표정의 얼굴들은 일제히 정면을 응시합니다.

창백한 안색과 텅 빈 버석한 눈동자와 눈이 마주칩니다.

개별성을 상실한 그들의 얼굴은 절대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개인의 집합”이라기보다 “집단의 덩어리”로 보입니다.


그의 작품의 군중 속 고독은

해소될 수 없는 멜랑콜리아가 되어, 사회적으로 확장됩니다.

익명성과 개인주의에 압도된 근대인들은 심리적 고립에 놓입니다.


집단의 개념이 개인의 존재와 존엄을 이기는 기묘한 순간입니다.

우리는 그림을 통해 ”과연 사회는 개인의 집합체일까“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게 됩니다.



#7.

멜랑콜리아와 예술의 관계:

진정 멜랑콜리아가 예술에 기여하는가?


독일의 철학가 발터 벤야민은

멜랑콜리아를 단순히 개인적 감정의 일종으로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멜랑콜리아를 사물, 역사, 도시 등의 외부적 세계를 읽어내는

또 다른 ‘시선의 기원’으로 봅니다.


사물들이 하나의 ‘완성된 의미’를 가지기보다

남겨지고 부서진 흔적과 잔해로 보이는

알레고리적(Allegory) 세계에서,

예술가들은 회피적 태도로 눈을 감는 대신

멜랑콜리아라는 기폭제로 정면을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단지 감정적인 무기력에서 종결되는 것이 아닌,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던 파편화된 세계를 들여다보고

배열하는 행위는 예술적 멜랑콜리아에서 시작됩니다.


모든 멜랑콜리아가 예술의 기원이라 단정하긴 힘드나

이는 조건부적으로 예술의 재료로 쓰이기도 합니다.

뭉크는 사랑, 상실, 죽음의 멜랑콜리아를

자신의 예술에 녹여 낸 대표적 예술가입니다.


남겨진 그의 멜랑콜리아는 더 이상 개인적 감정이 아닌

세계를 보는 ‘시선’이 되어 다각도의 삶을 보여 줍니다.

결국 우리는 그의 작품을 바라보며

뭉크의 세계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 자신의 멜랑콜리아를 먼저 발견하게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외딴섬 로맨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