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엄마에서 나로 거듭나는 과정을 만들어 봐요.
엄마에서 나로 거듭나는 과정을 만들어 봐요.
사실 원어민강좌는 회화가 주이다. 한국어도 느리게 말하는 타입인데다가 폐결핵을 앓았기 때문인지 조금만 말해도 숨이 차는 편인데 외국어는 더욱 혀가 꼬인다. 알파벳 난독증이 있을까 싶은 정도로 읽기조차 쉽지 않다. 번역은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교재에 수록된 듣기 예제는 그나마 기초이고 해당 단원에 한정된 것이어서 알아듣는다지만, 뉴스나 드라마에 나오는 중국 및 베트남 사람들의 말은 한없이 빠르기만 하고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우리 부부와 아이 명의 해외비과세장기주식펀드에 중국과 베트남이 있으니 아이와 함께 그 나라 정치, 산업, 경제, 문화를 익히고 나눌 수 있다는 점은 부수적인 산물이었다. 회사에서 업무를 하며 단발적으로 익힌 최근 정치, 경제, 산업 정보가 전부였던 나에게 아이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중국과 베트남 정치사회문화 변화를 알려주며 큰 도움을 주었다.
아무래도 암기할 게 많아지기에 부담이 되긴 하지만, 성인이 되어 취미로 배우는 외국어는 반복 수강이 답이다. 저녁 직장인반이라는 특성상, 선생님도 습득이 더뎌 답답한 수강생들을 넓은 아량으로 품어주었고 이는 낯선 언어를 배우는데 장벽을 낮춰주었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자주 듣기 어려운 칭찬의 말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이 비록 짧은 언어로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해서 한국어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비대면이든 대면이든 다양한 연령층과 함께 소통하는 일은 매일 저녁 활력소가 된다.
공동 서재 겸 미디어실로 활용 중인 방에서 헤드셋을 착용하고 zoom(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방식) 수업을 하고 있다 보면, 종종 남편은 '영어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왜 다른 외국어를 해?'하면서도 '즐거워 보인다'라며 격려해준다. 부부가 같이 듣기를 원했지만, 남편은 한사코 거절한다. 30분 전후하는 짧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 정리를 부탁하고 각각 공부하러 향하는 아내와 아들의 뒤를 봐줘야 해서 본인은 괜찮다며... 두 명의 수험생을 보필하는 학부모 같다고 한다.
현재 용산원어민외국어교실에서 아이는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를 비대면으로, 나는 중국어, 스페인어를 대면 수강 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신혼 초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 가보자 계획했던 양가 부모님 동반 유럽 여행이 무산되었다. 우한 독감 바이러스가 퍼진다는 이야기가 중국 내에서 나오던 2019월 11월 유럽 전문 여행사에 소규모 단독 여행 비용 전부를 지급하고 유럽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중국 우한 봉쇄를 넘어 유럽으로 확산하는 기조를 보이면서 2020년 5월 초 황금연휴 출발하기로 한 여행은 지금까지 유보된 상태이다. 언제 다시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익혀 가고자 했던 계획을 진행해 나간다. 아이는 프랑스어를 1년째 수강 중이고 나는 이제 막 스페인어 기초의 진입이다. 사실 프랑스어를 뒤따라 배우고 싶었는데, 이전 학기에 기초 1반이 시작해서 2반부터 들을 순 없어 스페인어 신규반을 수강했고, 여행지에서 아이와 한 언어씩 나눠 담당하기로 했다.
동아시아를 비롯해 유럽 서양사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아이는 프랑스어 선생님까지도 제 딴엔 열성적으로 좋아한다. 아직 아이들 수업은 비대면 수업을 진행 중이라 다행히 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헤드셋을 통해 나가고 있어 내심 다행이다. 아이가 내게 프랑스어 발음이 좋다는 칭찬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할 때, '엄마는 스페인어 발음도 쉽지 않네. 네가 배우는 프랑스어에도 성수가 있잖아, 스페인어에도 있대. 그리고 스페인어는 단어마다 악센트 위치를 주의해야 해서 정신이 없어.'라고 어려움을 하소연도 해본다. '스페인어 의문문과 감탄사는 뒤에 있는 물음표, 느낌표가 앞에도 있어서 문장을 묶어줘야 한대. 우리 지난번 스페인어로 쓰인 문서 봤었다가 뭔가 했었잖아.' 아이랑 나눌 대화가 느는 것도 재밌다.
한참 유행하던 이베리코 고기도 생소한 나에게 아이는 켈트족, 이베리아족, 게르만족, 로마인들이 수시로 이베리아반도를 침범해 오면서 이베리아반도와 왕국이 어떻게 분열되었는지를 알려 준다. 방대한 역사라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그 문화 배경도 조금씩 숙지해 나가면 아이가 하는 무지막지한 이야기도 경청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