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커피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기호식품이자 음료인 커피, 나 또한 그를 꽤 즐기는 일원이다. 커피를 수식하는 다양한 말들은 대부분 고급스럽고 여유로움을 풍긴다. 사실 나는 와인과 커피를 즐기지만, 그 깊은 향미(flavor)를 잘 알지는 못한다. 와인처럼 커피 한 모금에서도 다양한 아로마와 맛을 느낄 수 있다는데, 향은 두 종류 이상을 두고 구분할 뿐이고, 맛은 단맛과 산미 정도를 대략적으로 나눌 뿐이다.
내가 처음 커피를 접한 건 언제였을까?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카페인에 너무 의존하면 안 된다 하여 대학에 가서야 비로소 커피를 맛 본 거 같다. 97학번인 내가 커피를 접하였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거의 없었다. 분위기 괜찮은 커피숍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비교적 세련되고 안락한 의자가 있었고, 당시만 해도 대학가에 예전 다방과 같은 분위기도 흔했던 기억이다.
가장 가까이 커피를 접하기는 상황은 도서관 휴게실이었다. 도서관에 있다보면 무슨 1학년이 공부냐며 휴게실로 끌려 나왔다. 하루에도 몇 차례 선배들로부터 음료 자판기 앞 선택권이 주어지면, 자취생인 내가 고른 건 영양을 생각해 과채 주스 캔이었다.자주 함께하는 선배 앞에서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여 자판기 믹스커피 버튼을 누르기도 했다. 누가 그랬던가, 우리나라 커피 믹스가 황금비율이라고. 시골에 가면 할머니들이 타 주시는 커피 1, 설탕 2, 프림 3... 인스턴트 커피, 설탕, (프림의 대표 명사가 된) 프리마를 오롯이 옮겨온 자판기 커피는 교내에서 수시로 마시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던 중 선배의 손에 이끌려 간 99년 한국에 처음 들어온 스타벅스는 신세계였다. 한참 어린 나이 입맛이었기도 하거니와 당시에는 칼로리 계산도 하지 않았을 때였나 보다.스타벅스 주문은 무조건 캐러멜 마끼아또(우유 거품 위에 바둑판무늬를 낸 황금색 달달한 캐러멜 시럽)에 휘핑크림 더하겠냐는 종업원의 응대에 바로 수락을 한다. 당시 스타벅스 커피 가격은 3,000원(아메리카노 tall size 기준)으로 짜장면 한 그릇에 준하는 가격이었다. 내가 마신 카라멜 마끼아또 한 잔은 그 보다 더 비싼 3,500원이었다. 일명 된장녀* 축에는 끼지 못하는 과소비와는 거리가 먼 나였지만, 내 돈 내고는 절대 사 먹지 못할 것이기에 가장 달달하고 발음도 멋져 보이는 이름의 커피 메뉴를 주문했던 거 같다.
* 된장녀: 1990년대 중후반 만들어져 2000년 중후반 유행한 허영심 때문에 자신의 재산이나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사치를 일삼는 여성, 당시 밥보다 더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이들을 싸잡아 부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스타벅스 커피의 색깔을 된장국에 빗대어 부른 설이 있기도 했다.
그 무렵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결의를 다질 겸, 스터디 그룹 선배들이 서울 야경도 보고 고급진 커피 맛을 보여준다 하여 남산에 갔다. 처음 가본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로비에는 TV 드라마에서 맞선 장소로 많이 나오던 커피숍이 있었다. 그곳에서 주문한 커피는 기다란 유리잔 상단 둘레를 빙 둘러 설탕이 묻혀 나왔다. 잔을 돌려가며 한 모금씩 마신다는 그 커피는 한 잔에 1만 원이다.맛은 별반 차이가 없는데, 안 그래도 비싸다는 스타벅스 가격의 3배가 넘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니 서울엔 돈 많은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그 후로도 호텔에서 커피숍을 내 돈 내고 먹을 일은 없었다. 요즘은 그 고급진 아메리카노가 15,000원, 예전에 맛보았지만 이름도 몰랐던 그 커피는 18,000원에 달하는 솔티드 캐러멜이었던가 보다.
어느덧 주변에 크고 작은 커피전문점들이 난무하고, 가격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저렴한 커피, 용량이 많은 커피들이 생겨났고, 스페셜 커피를 취급하는 리저브 매장이 생겨나면서 가격의 양극화는 심해졌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커피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다니는 것이 괜한 멋인 양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도 여전히 적지 않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커피는 외출해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잠시 머물 장소, 즉, 공간 사용의 개념으로 활용된다. 물론 사람을 좋아하는 내게 있어 그들과의 시공간을 공유하기 위한 커피 하우스는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닌다. 반면, 테이크아웃을 하기 위해 지불하는 커피 가격은 여전히 아깝다. 제조 및 공급 단가를 생각한다면, 무척 불합리한 가격이다. 늘 그렇듯, 커피 역시도 유통/마케팅 비용이 크고 1차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건 거의 없다. 그래서 집 안팎에서 가볍게 마시는 커피는 분말형 원두(특정 상표를 언급하기는 그렇지만, 모름지기 카누)를 탄다. 시간적 여유가 좀 있다면 원두를 바로 갈아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핸드드립으로 추출해 마신다.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기호식품이자 음료인 커피, 나 또한 그를 꽤 즐기는 일원이다. 커피를 수식하는 다양한 말들은 대부분 고급스럽고 여유로움을 풍긴다. 사실 나는 와인과 커피를 즐기지만, 그 깊은 향미(flavor)를 잘 알지는 못한다. 와인처럼 커피 한 모금에서도 다양한 아로마와 맛을 느낄 수 있다는데, 향은 두 종류 이상을 두고 구분할 뿐이고, 맛은 단맛과 산미 정도를 대략적으로 나눌 뿐이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내가 사든, 다른 사람이 사든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실제 음료 메뉴판을 살펴보면 다른 것보다 커피가, 특히 아메리카노가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것을 마시고 나면 오히려 입이 텁텁해짐을 느낀다. 사실 한 잔의 맛과 여유를 느끼기 보다는 수시로 따뜻하고 씁쓸한 맛의 음료를 한 모금씩 마시기 위한 것이 나에게 있어 커피가 되었다. 한 여름에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고수한다. 냉방이 잘 된 실내에서 종일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온 종일 핫플레이트 위에서 식지 않는 커피를 마신다. 가끔은 밤이 늦도록 보고서를 쓰다보면 내 몸에 피보다 커피가 더 많이 흐르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보고서 마감이나 발표를 앞두고 심장이 빨리 뜀을 느낌은 카페인 때문인지, 긴장감 때문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카페인이 몸에 잘 듣는 체질이 아니어서 머그컵으로 하루 3~4잔의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한편, 임신과 수유 기간에는 커피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던 것도 신기하다. 기호식품을 넘어서 내 생활의 일부분인 것처럼 20년 넘게 커피와 지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고소한 맛과 산미 강약만을 구분할 뿐, 진정한 커피 맛을 경험하지 못했다. 약 80~90도의 물로 커피를 추출해서 바로 마셔야 본연의 맛을 잘 느낀다던데, 혀가 금새 데이는 편이라 이번 생애는 그 맛을 알진 못할 거 같다. 한창 시험 기간에는 커피를 마시면서도 깜박 자는 나를 보며, 각성 효과를 전혀 못 느끼는 내가 야속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 커피를 마시고 언제든 잘 수 있는 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