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회의

건축소설 COMPETITION #12

by 글쓰는 건축가

이제 정말 마감이 열흘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은 제출 전에 디자인 방향을 최종적으로 점검하는 회의가 열리는 날이다.


회의실에 최종 대안을 만들어놓은 모형, 패널 *목업, 각종 도면들의 출력물들이 벽면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붙여져 있다.


*목업(mock-up): 최종 출력 전에 여러 가지 패널의 대안들을 레이아웃 해보는 작업


박교수가 회의실로 들어섰다.

“다들 고생 많네.. 이제 열흘 정도 남았나? 다들 힘내서 조금만 고생합시다. 전체적으로 퀄리티는 많이 올라온 것 같고.. 흠. 도면은 아직 좀 남은 건가?”


강소장이 최종적인 도면 작업을 직접 그리고 있어서 박교수의 질문에 대답한다.

“세부적으로 좀 보다보니.. 정리가 좀 덜 된 거 같아서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 강소장이 직접 본다면야 걱정할 건 없겠지만.. 시간이 별로 안 남긴 했으니까 슬슬 마무리해야지. 단면에서 실의 높이 같은 게 좀 과장되더라도 확실히 보여주는 게 나을 것 같고. 상세도면 같은 건 좀 더 그리는 게 낫겠지?”

“현상설계 수준에서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되는 데 까지 그려보려구요. 안 그리는 거 보다야 낫지 않을까요?”

“글쎄. 설계 개념을 확실히 보여주는 다이어그램을 더 넣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이제 제출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큰 맥락을 흔들기는 쉽지 않다. 세부적인 표현이나 디테일한 *소스를 무엇으로 갈 것인지 정도가 논의되고 있다.


* 소스(source) 패널이나 보고서 등을 채우는 다이어그램이나 CG 등을 통칭하는 말


김종민이 박교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교수님, 기무사 지하를 건드릴 것인지 말 것인지.. 그게 결정이 안됐어요. 감점이 3점이나 걸려서.. 오늘은 정말 결정이 되어야 하는데요.”

“아 맞다.. 저번 회의 때 결정했어야 하는데 못했구나. 수현아 어때? 두 개 다 해봤어?”

정수현이 모델링 파일을 켜고 팀원들에게 두 개 대안을 비교하면서 보여준다.


“제가 지금 대안으로 기무사 지하로 저희 메인 골목 개념을 연장하는 안을 잡아 봤는데요. 이렇게.. 보시다시피 개념이 휠씬 더 살긴 하죠. 지상에서도 이어지고 지하에서도 이어지고.. 전 감점만 아니면 확실히 이쪽으로 가는게 당연히 나은데.. 그 감점이 너무 커가지고..”

“음. 그거야 예전부터 얘기했던 거긴 한데.”

“이렇게.. 그냥 지하를 막아버리면 갑자기 답답해 보이죠. 딱 막혀 보이고. 그냥 뭔가 대지 안에서 단절되어 버리는 느낌이 나요.”

“그러네. 음.. 어떡해야 하나..”


“교수님, 감점 3점을 안고 가는건.. 뭐랄까. 자살행위 같다고 해야 하나.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을까요?”

역시 강소장은 보수적인 입장이다.

“음.. 다른 팀원들 생각은 어때?”


최예린이 생각 끝에 말을 꺼낸다.

“이게.. 정말 판단하기 힘든 문제이긴 한데요. 쉽게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 좋다고 생각하는 걸 해야 한다고 봐요. 감점 같은 거 너무 신경쓰기 보다.. 어차피 저희가 꼭 당선되려고 하는 거 아니잖아요? 스스로 만족하는 안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예린아, 이건 회사일이잖아. 사무실 인원 전체가 원래 하던 일 홀드하고 2주 넘게 여기 붙은 거라구. 그만큼 비용이 들어가는 거고, 성과가 나와야지. 냈는데 그냥 예선에서 떨어지면 아무것도 안 남는거야. 3점 감점이면 본선에 올라가지도 못할 수 있다고.”


김종민이 거든다.

“사실 그 채점과정이라는 게.. 그렇게 몇점, 몇점 하는 식으로 정량적으로 판단이 될까요? 결국 심사위원이 주관적인 판단으로 뭐가 낫다는 식으로.. 정성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거 아닐까요?”

“얘가 모르는 소리하네.. 이런 큰 공모전의 심사 결과는 어떤 식으로든 문서와 기록으로 남게 되있어. 심사위원이 점수도 정확히 적어야 하는 거고..”

또다시 격론이 오간다. 주로 젊은 팀원들은 기무사 지하층의 변경을, 경험이 많은 고참들은 건드리지 말 것을 주장한다.


결국 이 건도 박교수가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강소장이 말을 꺼낸다.

“저희끼리는 도저히 결론이 안날 것 같은데요. 교수님이 결정해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박교수는 턱을 괴고 한참을 고심 중이다. 모든 팀원들이 박교수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박교수가 입을 연다.

“저번 회의 때도 비슷한 말을 했지만.. 최소한 우리 사무실은 당선에 연연하는 건축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도시에 어울리는 건축, 대지에 맞는 건축, 사용자를 배려하는 건축.. 모두 당연한 듯이 말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지켜가기는 어렵지. 자본주의 논리, 돈의 논리, *건축주의 예산, 법규 등등.. 우리의 건축, 우리의 생각을 펼치고 실현하기에 제약이 너무 많으니까. 그렇게 깎여나가고 재단되어서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은 건물이 들어서곤 하지. 하지만.. 이런 현상설계에서조차, 한 설계사무실의 제안에서조차 건축가의 생각이 움츠러든다면.. 과연 이런 현실이 바뀔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건축주: 건축가에게 건축설계를 의뢰하고 건물을 짓는 사람. 건물이 완성되면 건물의 주인이 된다.


“...”

“이 현상은 내가 하자고 했고, 사실상 이 사무실의 운영도 내가 책임지고 있지. 그러니까, 당선 가능성보다, 팀원들이 하고 싶어 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봐. 그리고 나는 우리 디자인이 굉장히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3점 감점이 되도 괜찮다고 해야 하나? 설사 3점 감점을 먹더라도 원안을 망치고 싶지 않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강소장이 끼어들려고 한다.

“교수님 하지만..”

“강소장 입장은 충분히 이해해. 사무실 살림을 직접 꾸려가는 입장에서 이런 결정은 쉽지 않겠지..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네. 예선 탈락이라고 하더라도 내 책임인거지. 그렇게 정하고 진행하기로 합시다. 그리고 우리 아직 은행에 여윳돈 좀 있잖아? 하하.”

“음... 교수님은 역시 못 말리겠네요. 아직도 그렇게 *나이브하게 생각을 하시니.. 에휴, 어쩌겠습니까. 그럼 교수님 말씀하신대로 진행하기로 하겠습니다. 모두 알아들었지?”

강소장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수긍한다. 정수현은 역시 교수님의 성향은 10년이 지나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건축의 기본과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생각들 말이다.


*naive: 순진한.


회의가 끝나고 최예린이 팀원들을 독려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원안이 지켜지게 돼서. 애들아, 이제 열흘 정도 남았으니까 마지막까지 힘내자.”

“그래. 이제 패널이랑 보고서 본격적으로 마무리 지어야 하고.. 내가 모델링 조금만 더 하면 최종으로 CG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 다음에 보고서나 패널 도와줄게.”

“그게 되겠어? 끝까지 모델링 수정사항이 생길 텐데.. 상황 보고 하자. 무리하지 말고.”


지금은 강소장과 김과장이 각종 도면, 최예린과 김종민이 보고서와 각종 소스, 한수경(대리)이 패널, 정수현과 박경민(사원)이 각각 3D 모델링과 사진용 모형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일주일 가량이 이 현상설계 과정에서 가장 힘든 기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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