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소설 COMPETITION #17
“당선 취소 라구요? 저희가 당선 취소될 사유가 있습니까?”
“그게.. 운영위원회에서 결정이 된 사항이라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저도 단순히 전달드리는 사항이라..”
“그 지하 보존공간은 훼손.. 아니 훼손이 아니지. 리모델링 했을 경우 감점 처리 한다고 지침에 정확히 써 있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감점 받고도 당선된 것 아닌가요? 그걸 이유로 당선을 취소시킨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아.. 참.. 죄송합니다..”
통화를 하고 있는 이종수 과장도 당황한건 마찬가지다. 자신이 지침을 낸 사항인데 위에서 마음대로 바꿔서 당선공고까지 난 사항을 엎어버렸으니.. 그걸 오롯이 전달해야 하는 이종수 과장은 말 그대로 정말 죽을 맛이다.
“이런 말씀 드리면 변명 같지만, 제가 결정한 사항이 아니라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마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설명회 내지는 *공청회 같은 회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심사위원들에게도 설명이 필요하고.. 아무튼 그 때 논의가 되겠지만.. 당선 취소가 번복될 것 같진 않네요. 운영위원회 입장이 워낙 완강합니다.
*공청회: 관련된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공개적인 회의
저도 몇 번 항의를 해봤는데.. 같은 미술관 분들이지만 이해가 안 될 정도입니다.
제 말이 위로가 되진 않으시겠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건축가님. 이만 끊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좋은 하루가 되기 힘든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인사를 남기고 이종수 과장은 전화를 끊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지. 이종수 과장 스스로도 운영위원회의 결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앞으로 일을 어떻게 정리해나가야 할지 막막함이 밀려온다.
“뭐라구요? 박진호 교수 안의 당선이 취소됐다구요?”
여기는 홍준성 건축가의 사무실. 홍준성의 고성이 사무실에 울려 퍼진다. 직원들이 깜짝 놀라서 홍준성의 방을 쳐다본다.
“왜? 무슨 일이야?”
“미술관 심사하신 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요.”
“박진호 교수 안이 된 거 아니었어? 뭔가 문제가 있었나?”
“글쎄요.. 그 기무사 지하 건드린 게 문제가 된 거 아닐까요?”
“이봐요. 과장님. 그게 말이 됩니까. 우리 심사위원들이 거 다 채점하고 고른 건데. 그렇게 엎어버리면, 우린 그날 거기서 뭘 한 게 되는 겁니까? 저희들 허수아비 만들려고 부른 건가요?”
“아..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 당선 취소 결정에 대해서 공청회를 열 계획입니다. 아무래도 설명이 필요할 테니까요. 심사위원 분들이랑 당선자, 관계자 여러분들 모시고 충분히 설명을 드릴 예정이니까, 그때 말씀 나누시지요.”
“하.. 자기들 맘대로 해놓고 설명을 할 테니 납득해라.. 너무 화가 나는군요. 이럴 거면 자기들이 뽑지 왜 심사위원을 불러다가 심사를 시킵니까? 그리고 공모지침 한번 다시 보세요. 심사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은 번복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선생님, 수고스러우시겠지만 공청회 오셔서 말씀 나누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홍준성은 전화를 끊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기껏 좋은 안을 뽑아놨더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손이 떨릴 지경이다.
이대로 놔 둘 수는 없다. 홍준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영향력을 동원해서라도 이 사태를 바로잡아야 겠다는 결심을 한다.
홍준성은 우선 현대미술관 김관장에게 전화를 해보기로 한다.
“아, 홍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김관장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당선 취소라니요. 이게 말이 되나요?”
“아.. 그게 선생님께서 심사에 애를 써주셨는데.. 그렇게 됐습니다. 운영위원회에서 그렇게 결정이 됐네요.”
“지하보존시설.. 그거 충분히 얘기 된 거 아닙니까? 그게 결격 사유가 아니잖아요?”
“운영위원회에서 보존시설 존치를 필수사항으로 다시 정했습니다. 그래서 훼손이 실격사유가 된 거구요. 홍 선생님께서도 이해를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봐요, 김관장님. 이럴거면 대체 심사를 왜 한 겁니까? 미술관 사람들이 뽑으면 되잖아요. 우리 허수아비 만들려고 이러시는 겁니까?”
감정이 격해진 홍준성의 말투가 점점 거칠어진다.
“홍선생님. 좀 냉정하게 말씀드리자면, 저희가 가장 쓰기 좋은 미술관을 만들자고 이 사업 하는 겁니다. 저희 의견도 생각해 주셔야죠. 그리고 2등안도 충분히 좋은 안 아닙니까?
그냥 그걸로 하면 되죠. 솔직히 홍선생님이야 뭘로 하든 크게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며칠 나오셔서 회의하시고, 심사하시고 작품 봐주신 건데, 그게 그렇게 큰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음 너무 쓰지 마시고, 바꾸는 걸로 하시죠 그냥.”
이 사람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건가. 그냥 심사 하루 이틀 한 거 가지고 뭘 그러냐. 수고비 좀 받았으니 된 거 아니냐, 그만 잊어버려라. 이 소리가 아닌가.
“김관장!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할 소리가 있고 못할 소리가 있지! 심사위원... 건축가를 뭘로 보는거요! 심사 시켜놓고 들은 체 만 체 할거면 심사는 왜 시킨거요!”
“아.. 홍선생님.. 너무 화 내지 마시고.. 교양 없게 왜 이러십니까.”
“이게 지금 교양 따질 일입니까? 나 이대로 가만 안 있을테니 두고 보시오. 내가 국토부 장관을 만나든, 청와대를 찾아가든, 언론사 인터뷰를 하든...”
“일단 공청회 오셔서 말씀 나누시지요. 이만 끊겠습니다.”
홍준성은 믿었던 김관장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자 적잖이 당황했다. 최소한 미안해하거나 사태에 대해서 설명을 할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뻔뻔하게 나올 줄이야.. 김관장이 이런 사람이 아닌데.. 이성적으로 말하면 통하던 사람인데 뭔가 다른 사람이 된 듯한?
일단 박진호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이보게, 박교수. 소식 들었지?”
“네.. 선생님..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질 줄은..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선생님도 지금 아신 건가요?”
“그래, 나한테도 방금 전화해서 일방적으로 통보하더군. 당선취소라니.. 나 참. 관장한테도 전화해봤는데.. 완전 모르쇠야. 그거 당선작 바뀌는 거 별거 아니라는 식인데.. 하 참 기가 막혀서.”
“관장이 그런 소릴 한다구요? 이거.. 완전히 당선안을 바꾸려고 작정을 한 것 같네요.”
“일단, 자네도 공청회에 들어오라고 하던가?”
“네. 3일 뒤에 한다더군요. 당선자에게도 설명이 필요할 테니까요.”
“그래. 일단 그날 보세. 할 말은 많지만.. 말해두지만 나 그냥 안 있을 걸세.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해서라도 이거 바로잡을 생각이야.”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 일단 마음 정리 좀 하고 그날 뵙겠습니다.”
박진호는 전화를 끊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사무실 직원들한테는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막막함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