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청회

건축소설 COMPETITION #18

by 글쓰는 건축가

“다들 회의실로 좀 모여줘. 할 말이 좀 있는데..”

박교수가 사무실 식구들을 불러 모은다. 강소장은 뭔가 안좋은 예감이 들었다. 딱히 회의할 만한 사항이 없는데..


“다들 모였습니다. 교수님. 무슨 일이죠?”

“음.. 다들 당황스럽겠지만.. 오늘 아침에 미술관 당선이 취소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어.”

웅성웅성.. 사무실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다. 그럴 만도 하다. 어제 당선되었다고 파티를 했는데, 오늘 그 당선이 취소되었다니..


“예? 뭐라구요? 왜 그렇죠? 저희가 특별히 어긴 것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지하 보존시설 훼손 때문이라는데.. 감점 처리하겠다고 하고 한 건데 이걸 빌미로 실격 처리를 하겠다는 거야. 지침에 명시된 사항을 바꾸겠다고 하니..”

“이거, 완전 항의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우리 감점 먹고도 당선된 거잖아요? 

말도 안되는데 이건.. 이대로 당할 순 없습니다.”

최예린이 나서서 말한다.

“교수님, 이건 좀 아닌 거 같아요. 미술관 쪽에서 무슨 근거로 그런 결정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쪽에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인거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든 항의를 해야 될 거 같아요.”

“3일 뒤에 설명하는 공청회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하니 일단 거기 가서 얘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아. 나도 그 담당자라는 과장이랑만 통화해본 상태라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어. 홍선생님이랑도 통화해봤는데, 노발 대발 하시더라고.

관장이라는 작자도 당선안을 바꾸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아. 담당자도 운영위원회 핑계만 대고. 아무래도 미술관 윗선에서 당선작을 바꾸려고 술수를 쓰는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대

응해야 할지..하.. 아무튼 공청회를 들어가 봐야 알거 같아.”


정수현은 마음이 복잡해진다. 기껏 당선되었다고 좋아했더니 이런 일이 생기다니.. 미국에서 수없이 많은 현상을 해본 정수현도 이런 사태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일단 각자 일들 하고.. 내가 공청회 다녀와서 어떻게 됐는지 얘기해줄게. 다들 고생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교수님이 제일 힘드시겠죠. 저희들은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시구요.”


최예린이 회의실을 나서며 정수현에게 말한다.

“수현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난 도대체 이해가 안돼.”

“나도.. 지침을 그렇게 내 놓고 이제 와서 바꾼다고? 이거 어디다가 고발해야 되는 거 아닌가?”

최예린에게 전화가 온다. 어? 문재민의 전화다.

“아.. 재민아. 그래.. 잘 지내지? 아 음.. 그래, 당선 됐었는데.. ”

“아닌 게 아니고 우리 쪽도 난리야. 박교수님 당선 취소됐다며?”

“우리도 방금 들었는데. 너희 쪽에서도 얘기가 나온 거야?”

“어. 그래서 2등인 우리가 최종 선정될 것 같다고.. 아침에 사장님이 오셔서 말씀하시던데.”

“아.. 이게 어떻게 되는 건지.. 교수님은 공청회 들어가 보시고 말씀해 주신다던데..”

“우리도 좀 어벙벙한 상태야. 이게 당선 된 것도 아니고 당선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될 것 같다고는 하는데 영 찜찜한.. 나는 너희 쪽에서는 무슨 얘기가 나왔나 해서 궁금해서 전화했어. 아무튼 미술관 쪽에서 설명하는 걸 들어봐야 아는구나. 알았어. 많이 놀랐겠네. 또 연락하자.”

“그래, 재민아. 잘 지내고.”


정수현이 전화하는 걸 듣고 묻는다.

“뭐야, 성문에서 벌써 당선 취소를 아는 거야? 확정도 아닌데?”

“그렇다네.. 사장인가가 알려줬다는데..”

“이거.. 성문에서 뒤로 뭔가 꾸미고 있는 거 아냐? 교수님도 이제 아셨다는 사항을 거기서 벌써 어떻게 알아? 당선자도 아닌데.”

“그러니까.. 아무래도 좀..”



며칠 후 현대미술관 회의실에서 공청회 자리가 열린다. 무거운 침묵 속에 관계자들이 속속 입장한다. 홍준성과 박진호 교수는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대화를 나눈다.

“박교수, 짐작하겠지만 오늘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긴 힘들 것 같네. 자기들 주장만 일방적으로 늘어 놓을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희 의견을 제대로 들을 거면 취소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불렀겠죠.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 자체가 결정해놓고 일방 통보하겠다는 거니까요.”

“마음 단단히 먹게. 아마 긴 싸움이 될 것 같아. 난 오늘 좀 얘기가 안 통한다 싶으면 그냥 나와 버리려고 생각하고 있네. 어차피 제대로 된 회의가 아니라면 그냥 기싸움 차원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음.. 알겠습니다.”


회의가 시작되고 이종수 과장이 설명을 시작한다.

“바쁘신 가운데 참석해주신 관계자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금일 공정회 자리는 이번 현대미술관 신관 현상설계 심사과정에서 당선작을 실격처리..하게 된 과정을 설명 드리고자 하는 자리입니다.

우선 운영위원회 조진수 단장님께서 경위를 설명해주시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현상설계 공모전 운영위원회 단장 조진수라고 합니다.

우선 당선 취소 소식 듣고 많이 놀라고 실망하셨을 당선자.. 박진호 건축가님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당선 취소..라는 결정까지 내리게 된 경위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음.. 결국 지하 보존시설의 훼손이 문제가 된 것인데요.. 운영위원회에서 이 시설의 보존가치에 대해서 조금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차후 조사를 진행해본 결과 이 시설과 건물 전체의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그래서 훼손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구요..“


홍준성은 웬만하면 끝까지 들어보려고 했지만 화가 나서 기어이 말을 끊고 만다.

“잠깐만요. 단장님. 조사는 언제 해보신거고 뭐가 발견되었다는 것입니까?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음.. 그건 미술관 자체적으로 진행한 것이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고.. 미술사적으로 보존해야할 고건물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 국방부 사람들은 보안 때문에 안된다, 미술관 사람들은 미술사적 가치가 있어서 안된다... 도대체 거기 뭐가 있길래 그러시는 겁니까? 전 제가 직접 보고 확인하기 전까지는 납득 못하겠습니다.”

“지금 기무사 건물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조사 보고서가 작성 중이니까 나중에 그걸 참고하시면 될 것 같고.. 국방부에서 밝혔듯이 보안상의 이유로 내부를 보기는 아마 힘드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듣고 있던 박진호 교수가 발언한다.

“저.. 공모전 과정에서 질의응답 회신으로 공고되었던 문서를 보면, 지하보존시설 내부를 리모델링할 경우 감점 3점을 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홍선생님을 비롯한 심사위원 여러분께서 채점 과정에서 저희 안에 3점 감점을 주셨구요. 이건 인터넷상에 공개된 심사과정 안에 다 녹화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공고가 난 사항인데 이걸 이런 식으로 차후에 번복하셔도 되는 겁니까? ”

“아까 설명 드렸다시피.. 기무사 건물의 문화적 가치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일제 시대에 지어진 건물이고 워낙 오래됐으니까...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 아닙니까? ”

“그런데 지하 말고 다른 지상층들은 내부 리모델링이 허용되지 않았습니까. 지상은 되고 지하는 안된다니요. 이게 말이 됩니까?”

“그래서 지상도 최대한 훼손되지 않도록 설계안을 조정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박교수님의 제안은 지하를 완전히 훼손하도록 계획된 것이 메인 개념이기 때문에 조정이 힘들 것 같아서 실격 처리하는 겁니다.”


홍준성이 참다 참다 한마디 한다.

“이보세요. 그런 조사가 그렇게 중요한 거면 공모전 이전에 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공모전 심사 결과 다 나와서 그런 조사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냥 당선안 바꾸고 싶어서 일부러 하는 거 아니냐구요. 제대로 한 거 맞습니까? 그리고 문화재적 가치가 있든지 없든지, 당신들이 바라는 대로 보고서 나올 거 아닙니까?”

“홍선생님!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마치 저희가 일부러 당선안을 바꾸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정황이 그렇지 않습니까. 공모전 기간 다 지나서, 제출도 하고 심지어 심사까지 끝난 마당에, 심사위원장도 몰랐던 문화재 조사가 은연중에 행해졌다니. 그리고 심지어 보고서도 작성 중이라니. 그걸 저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왜 진작에 알리지 않았죠? ”

“미술관 내부의 행정적인 부분까지 일일이 공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심사위원회의 결정은 번복이 불가하다는 규정이 있는데.. 이건 어떻게 보십니까?”

“당선작이 결정되더라도 그 후에 실격사유가 발견되면 당선권이 박탈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번 건은 이 사항에 해당됩니다.”

박진호 교수는 머리가 아파온다. 앞으로 꽤나 힘들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든다.


홍준성이 화를 가라앉히며 재차 묻는다.

“단장님. 그럼 이것만 물어봅시다. 그 문화재 조사라는 것이 언제 하기로 결정이 된 거고 언제 실시하게 된 거죠? 그리고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을 현상설계 전에 실시하지 않았습니까? 그 정도는 미리 알고 설계를 하도록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음.. 2달 전에 결정난 사항이고.. 지난 달 정도에 실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한 사항이죠? 그럼 그때 적은 회의록이나 녹음된 파일을 제시해주십시오. 참석자 명단두요.”

“그런 걸 일일이 제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술관 내부적으로 결정한 사항입니다.”


홍준성은 급기야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걸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생각보다 억지를 쓰는 게 심하군요. 무슨 핑계를 대려나 했더니 문화재 조사를 들고 나왔네요.

최소한 이런 조사를 하게 됐으니 죄송하다, 심사위원이나 참가자들에게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조사를 해서 당선작이 바뀌게 됐으니 그냥 받아들여라, 이거 아닙니까?”

듣고 있던 김석호 관장이 나선다.

“홍선생님, 진정하시구요. 그래서 저희가 충분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 문화재 조사는 저희가 급하게 결정하고 추진하느라 공모전 과정에 반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부분 저희가 미숙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전 그 조사라는 것 저의가 굉장히 의심스럽구요. 결과도 어떻게 나올지 뻔합니다. 당연히 지하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하겠죠. 결과 다 정해놓고 하는 조사 아닙니까?

이렇게 결과 맘에 안든다고 말도 안되는 핑계 만들어서 당선작 바꾸려면 저명한 건축가들 불러다가 심사를 왜 하셨습니까? 그냥 미술관 내부에서 맘대로 뽑으시면 되잖아요? 그냥 건축가들 호구 만들려는 거 아닙니까.

전 이 결과 절대로 용납 못합니다. 절대로!”

“이보세요. 홍선생님. 핑계 만들어서 당선작을 바꾸다니요. 말씀이 심하십니다. 저희가 무슨 다른 의도가 있어서 당선작을 바꾸려고 한다는 겁니까?”

“정황이 그렇지 않습니까. 말 같지도 않은 핑계 만들어서.. 아 더 들을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말 더 해봐야 소용도 없을 것 같고... 전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박교수, 그만 일어나지.”

“아.. 예.”

홍준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옆에 있던 박진호 교수도 주춤거리면서 같이 일어난다.

“어.. 홍선생님.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홍선생님?”


김관장의 당황한 목소리를 뒤로 하고 두 건축가는 회의장을 나선다.

호기롭게 회의장을 나서긴 했지만, 박진호 교수는 앞으로의 일이 적잖이 걱정이 된다.

“홍선생님, 이제 어쩌실 생각이세요?”

“글쎄.. 일단 내가 연락할 수 있는 곳은 전부 연락해 볼 생각이야. 국토부 장관이 됐든, 국가 건축문화 위원회가 됐든.. 이렇게 그냥 억울하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이건 우리나라 건축가들 전체를 무시하는 행동이야. 이 현상설계가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해서라도.. 당할 때 당하더라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오늘은 일단 들어가지. 고생 했어 박교수. 마음 단단하게 먹고. 아직 끝난 거 아니니까. 알겠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두 건축가를 보내고 남은 미술관 운영위원회 인원들은 차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홍준성 저 사람, 생각했던 것 보다 더 강경한데요.. 어쩌죠?”

“어떡하긴, 그냥 추진해야지. 이미 결정 된건데, 심사위원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뭐 있겠어. 기껏해야 언론사 인터뷰 몇 번 하겠지. 거기 사람들 동원해서 잘 무마해면 돼. 한 두달 지나가면 다 잊혀지게 되있어.

보통 사람들이 미술관 설계가 어떻게 되든 알게 뭐야. 아무렇게나 지어지면 그만이지. 돈을 횡령한 것도 아니고 큰 비리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크게 관심가질 일이 아니라서 이슈거리도 아니라고. 아무튼 차질 없이 추진하기로 합시다. 성문 쪽에는 연락했지?”

“예, 조만간 *우선협상 통보 나갈 거라고, 협의하러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 우선협상 통보: 현상설계에서 당선되면 발주처와 우선적으로 협상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이를 해당 회사에 통보한다는 뜻이다.

“그래, 아무래도 그 쪽이 다루기 훨씬 쉬울거야. 건축가란 놈들은 쓸떼 없는 *곤조가 세서 힘들단 말이야. 암튼 고생들 했고, 홍준성 그 사람 어쩌고 있는지나 조금씩 살펴보자고.”


*곤조: 자존심, 고집 등을 이르는 일본어


며칠 후 박진호 도시건축 사무소. 정수현이 짐을 싸고 있다.

“수현아, 진짜 가려구? 아직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마냥 여기 있을 수도 없잖아. 공모전 사이트 보니까 벌써 우리 실격됐다고 공고 다 떴던데.. 성문이 대신 선정됐다는 것도 나왔고. 솔직히 이제 다 끝난 거 아닌가.. 에휴.”

“아.. 이렇게 끝나다니.. 눈물이 나려고 하네.. ”

“내 잘못도 있지.. 괜히 지하 건드리자고 해서. 그냥 강소장님 말씀 듣고 안전하고 문안하게 갈걸. 뭘 대단한 디자인을 만들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그게 무슨 소리야. 다 같이 회의해서 결정한 사항이잖아. 나도 당연히 그 안이 좋다고 생각했었고.. 당연히 니 책임이 아니지..”

“그래도.. 마음이 좀 안좋다는 거지.. 에휴. 아무튼 당선 됐다고 생각했던 게 이렇게 되다니..”

듣고 있던 김종민이 말한다.

“형 이렇게 가면 너무 아쉬운데요.. 저희끼리 회식이라도 해야죠.”

“야, 이 판국에 회식은 무슨 회식이야. 조용히 가야지.”


멀리서 가만히 듣고 있던 강소장이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어? 이게 뭐지? 홍선생님 인터뷰 하시는 것 같은데? 종민아, 회의실 가서 TV 좀 켜봐라. NBS 뉴스같은데. ”

“예? 저희 공모전 때문에요?”

“어, 그런 것 같아. 친구한테 카톡 왔어. 얼른 좀 틀어봐.”

홍 선생님이 방송사 인터뷰까지 하시는구나. 정수현은 일이 그렇게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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