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발표

건축소설 COMPETITION #16

by 글쓰는 건축가

심사가 끝나고 심사위원들은 늦은 저녁식사를 마쳤다. 모두 헤어지고 다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것을 확인한 후, 목장호가 핸드폰을 꺼낸다.


“어, 그래. 종국아. 이제 끝났네.. 미안하다.”

성문종합건축 김종국 사장과의 통화다.


“어휴, 형. 하루 종일 기다렸잖아. 어떻게 됐어.”

“아.. 어떡하냐.. 안됐어. 2등이야.”

“어? 뭐라구? 그렇게 밀어준다고 했잖아..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지하를 건드린 안이 있었는데. 다른 심사위원들이 거기 다들 꽂혔는지. 그걸 엄청 밀더라구. 동점이라고 해서 결선투표까지 갔다니까.”

“뭐라구? 지하 건드린 안이 감점 3점 먹고도 올라왔다고? 말이 돼?”

“그러니까.. 다들 그걸 엄청나게 밀더라니까. 감점 먹고도 공동 1등이 되니까 할 말이 없더라고.”

“아.. 그렇게 잘 될 거라고 말해놨는데.. 회사에 뭐라고 하지.. 에휴.. 1등 어디건지 말 나온건 없고?”

“보통 어떻게든 알게 되는데. 여긴 뭐 그런 게 전혀 없어서. 결과 나와야 어디건지 알 거 같은데.. 아무튼 미안하다 종국아.”

“아.. 할 수 없지. 형 나름대론 최대한 밀어줬을 테니까.. 2등이라구? 체면은 살리긴 했네.. 아깝게 떨어졌다고 해야지.. 아무튼 수고 했어 형. 나중에 사무실 한번 찾아와.”

김종국 사장은 전화를 끊고 긴 한숨을 쉰다. 낭패감이 밀려온다. 사실 이번 현상설계 심사위원을 보고 회사차원에서 참여를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 그였다. 든든한 학교 선배 한명을 포섭해두면 나머지 일은 술술 풀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일 대표이사에게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 밀려온다.


심사로부터 5일이 지났다. 오늘이 정식으로 심사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어.. 좋은 아침. 다들 잘 잤어? 오늘 현상 결과 나오는 날이지?”

강소장이 출근하면서 오늘이 발표날 임을 상기시킨다. 그러지 않아도 다들 오늘이 그날임을 잘 알고 있다.

“수현이는 오늘이 마지막인가? 결과까진 봐야 되니까. 당선되면 계속 나오는 거지? 하하.”

“글쎄요.. 뭐 짐을 조금씩은 싸고 있네요. 로또 당첨을 기대할 순 없으니까요.”

“뭐 로또까지야.. 그거보단 가능성이 좀 높겠지. 종민아 뭐 좀 나왔어? 벌써 나오진 않으려나..”

“저 출근하면서부터 핸드폰으로 계속 현상 사이트 새로 고침 하고 있어요. 긴장 되서 가슴이 터질 것 같네요.”

“에이, 왜 그래. 마음 비워~ 등수라도 들어가면 좋은 거지.”

“이왕 할 거면 1등을 해야죠. 진짜 1등 하면 좋겠네요.”

“나도 정말 1등 했으면 좋겠다..”

정수현의 목소리에서 간절함이 묻어난다.

박교수가 사무실로 들어선다.

“좋은 아침이네. 오늘이 결과 발표날이지? 어때, 혹시 올라왔나?”

“아직이요.. 혹시 교수님 따로 소식 듣거나 그런 거 없으세요? 진짜 솔직하게요.”

최예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아니.. 나도 이런 현상하면 먼저 좀 당선결과를 알 수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발표가 빨라지기도 하고. 이번엔 그런 게 없네. 그냥 딱딱 일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나봐. 전혀 들리는 게 없어.”

“홍 선생님한테 전화하는 건 말도 안 되겠죠?”

“아마 받지도 않으실걸.. 그런 원칙에 철저하신 분이라.. 너무 안절부절 하지 말고 다들 기다려 봅시다.”


점심시간이 지나도, 3시가 지나도 결과가 올라오질 않는다. 다들 긴장이 길어져서 지쳐가고 있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뭐야 이거. 오늘 나오는 거 맞아? 사이트가 잘못됐나? 담당자가 사고가 났나.. 어떻게 된거야?”

“그러게.. 이쯤 되면 올라와야 맞는데.. 이상하네. 전화를 해봐야 하나.”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일과시간 안에는 올라오겠지.”


김종민은 무심하게 컴퓨터에 F5 키를 눌렀다. 그 때 이전과는 다른 하얀 팝업창이 올라오는게 느껴졌다.

“어, 이거 뭐지.. 이거 당선작 아냐? 뭐 올라왔어요!”

“뭔데, 뭔데? 어떻게 됐어?”

“잠깐만요.. 잠깐만요.. 1등이.. P-876.. 저희 핀번호 뭐죠? ”


최예린이 황급히 컴퓨터를 뒤져본다.

“아.. 뭐더라.. P-87642인데? 설마 우리 거 아냐?”

“P-87642? 진짜 그거 맞아요? 그럼 우리가 1등인데?”

“뭐 진짜? 진짜 그 번호 맞아? 다시 잘 봐바..”


“예 맞아요. 직접 보세요..”

“와! 우리 1등이야! 강소장님 저희 1등이에요! 교수님!”

사무실에서 한바탕 박수와 환호가 쏟아진다.


박교수가 소리를 듣고 자기 방에서 뛰쳐나온다.

“뭐라구? 우리가 1등이라구? 하하.. 진짜야? 이거 믿기지가 않네.. 꿈이야 생시야..”

“진짜에요. 이거 보세요.. 교수님.. 흑흑..”

최예린은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오는 게 느껴진다. 그동안에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차장님.. 울지 마세요.. 죄송해요.. 흑흑..”

“야.. 한수경. 넌 또 왜 우냐.. 에휴. 아직도 그 일을 맘에 담고 있어.. 아이고.”

영문을 모르는 강소장이 묻는다.

“왜, 뭔 일 있어? 경사 났는데 쟤들 왜 저래?”

“아, 아니에요.. 별 일 없어요. 하하. 당선상금.. 설계비 얼마죠? ”

“한 백억 가까이 되었던 것 같은데.. 이야.. 뭐 우리 사무실 몇 년은 이걸로만 가도 되겠는데요? 하하..”

“우리 인력만 가지고 되겠어.. 사람 좀 써야지. 벌써 별 걱정을 다하네. 하하.”

“회식 어디로 가지? 제일 비싼 게 뭔지 알아봐야겠다..”

그야말로 한바탕 축제가 벌어진 듯 박진호 도시건축 사무실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아.. 잠깐만.. 홍 선생님 전화가 왔네.. 아 여보세요. 선생님. 전화를 다 주시고. 결과 올라온 것 봤습니다.”

“그래. 박 교수. 홍준성일세. 결과 나온거 봤어. 정말 축하하네.”

“선생님이 잘 봐주셔서 그렇죠. 너무 감사드립니다.”

“안이 좋으니까 그런 거지. 사실 나도 심사 다 하고 나서야 박교수 안인거 알았네. 뭐, 단연 돋보이더구만. 감점 이런 거 다 감안하고도 1등이었어. 그만큼 안이 좋았던 거지.”

“그랬나요.. 저희 딴에는 열심히 하긴 했지만 그 정도 일줄은.. 아.. 너무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감사인사를 드려야 할지..”

“왜 이래 이 사람이. 난 좋은 안 뽑은 거 밖에 한 일이 없어. 감사할 이유도 없고. 앞으로 설계 마무리 잘 해서 좋은 건물 짓게. 기대하겠네.”

“예. 감사합니다.”


그날 저녁 박진호 도시건축의 직원들은 새벽까지 기분 좋은 회식을 즐기고 헤어졌다. 박교수는 새벽까지 수없이 많은 축하 전화, 문자를 받았다. 지치기도 했지만 기분만은 최고였다.


다음날 아침. 새벽까지 이어진 회식 덕분에 잠이 덜 깬 박진호 교수의 집.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것이 들린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박교수가 전화기를 집어든다. 또 축하 전화인가.


“예.. 여보세요. 박진홉니다. 어디시죠?”

“예.. 여기 국립현대미술관 공모전 담당팀 이종수 과장입니다.. 박진호 건축가님이시죠?”

“네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당선 후 절차 때문에 그러실까요?”

“아.. 아니요.. 하.. 말씀드리기가 너무 힘든데요. 이게 .. 참.. ”


박교수는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상대편의 말투가 너무 좋지 않다.

“왜 그러시죠? 정확히 말씀해주시죠.”

“박교수님 제출안의 당선이 취소될 것 같습니다. 내부 회의에서 어제 밤에 그렇게 결정되었습니다.”

“예? 뭐라구요? 그게 무슨 소리죠?”

“지하보존공간 훼손이 문제가 돼서.. 공모전 운영위원회에서 재심사 방침이 내려왔습니다. 이게 저희도 아직 논의 중이긴 한데.. 아무튼 당선은 취소될 것 같구요..”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다 결정난 것 아니었나? 박교수는 정신이 아득해져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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