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 주제로 글을 써보려고 수차례 생각했지만 결국 실패했었다. 우선 내 게으름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각 나라의 건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연구차원의 심층적인 분석보다는 피상적인 인상을 언급하는 정도가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쉽사리 쓰이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한번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그러한 피상적인 인상으로나마 ‘한국건축’, 정확히는 ‘한국 현대건축’이 무엇이며 어떤 방향으로 나야가야 할지 생각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길을 지나다니다 보면 같은 동양인인데도 불구하고 ‘저 사람은 외국인이 아닐까?’‘저 사람은 일본사람(중국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그 사람이 어느 나라 말을 하는지 유심히 들어보면 100%는 아니더라도 그 짐작이 들어맞는 경험을 자주 하곤 했다.
나는 건축도 이와 비슷하게 사람들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굳이 어느 나라의 건축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아키데일리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 ‘아, 이건 어느 나라의 건축이 아닐까?’라고 생각된다면 그 나라만의 건축적인 특성이 형성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즉, 별도의 주석이나 분석이 달려있지 않더라도 건축적인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이 보았을 때 ‘어느 나라의 건축 같다’고 인지될 정도가 된다면 ‘진정한 지역성’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완전히 토속적인 형태가 아니라, 근대건축의 기본적인 틀 안에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근대건축의 거대한 흐름 속에 그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사회 경제적인 시스템 안에서 불가능에 가깝고, 시대 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
우선 이 논의에 앞서 근대건축에서 ‘지역적인 건축’이 유효한가 혹은 이 시대에 필요한 건축인지를 먼저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 블로그에서 지속적으로 거론해왔던 주제가 ‘한국성’, 정확히는 ‘한국적 모더니즘 건축’이었고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지역성’을 기저에 둔 것이기 때문에 차후에 좀 더 논의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세계건축의 흐름이 국제적이고 균질한 것에서 지역적이고 개별적인 방향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둘 간에는 적정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동양 3국의 건축적 인상을 비교하는 것을 통해 ‘한국적 건축’의 방향을 찾고자 하는 방식을 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끄럽지만, 먼저 인정하고 넘어가고자 하는 부분은 일본과 중국이 이러한 ‘직관적인 건축적 지역성’ 획득에 어느 정도 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야 워낙 긴 건축역사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다수 배출했고, 그 와중에 그들만의 근대건축을 견고하게 구축해왔던 것이 주지의 사실이라고 치더라도, 중국은 최초의 프리츠커상 수상자 배출 이후로 빠른 속도로 이룩해가는 건축적 성취가 놀랍기만 하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세련되고 정제된 현대건축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들 나름의 전통적인 체취를 결코 촌스럽거나 어색하지 않게, 절묘하게 융합해 낸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건축도 우리만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그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그것들을 모아놓고 보면 더욱 잘 드러난다. 하지만 다른 동양 2국에 비교한다면 왠지 모르게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3국의 비교를 통해 우리나라 건축의 특징을 다시 한번 부각시켜보고자 하는 것이다.
1. 일본건축
동양 3국 중 일본은 객관적으로 가장 빨리 근대건축이 시작되었고 역사와 규모, 세계적인 건축가의 숫자 등 모든 부분에서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심층적인 접근도 가능하겠지만, 나의 능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이 글은 ‘직관적인 인상’에 집중하기로 하였으니 그 부분은 넘어가기로 하자.
최근 득세하고 있는 SANAA, 후지모토 소우, 도요이토 등의 건축 작품들을 보면 그들은 재료의 물성을 드러내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약속한 것처럼 중성적인 하얀색을 사용하며, 슬라브는 종잇장처럼 얇고 기둥 또한 이쑤시개처럼 얄팍하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이렇게 극단적으로 얇게 만든 부재들을 통해 건축 특유의 육중함과 구축성을 지워내고 건축 내부의 공각개념을 극단적으로 증폭시켜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마치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공간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들의 건물을 보면 자유롭게 그린 다이어그램이 그대로 현실화된 느낌도 들고, 가구와 건축의 중간정도의 무엇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내부와 외부, 공적공간과 사적공간의 경계 흐리기를 지속적으로 시도하며, 프랭크 게리나 자하디드 식의 형태적인 시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벽의 미세한 기울임이나 기둥의 섬세한 배치 등을 통해 통상적인 건물과는 다른 개념과 위계를 가진 공간을 구현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것처럼 보이고, 극단적인 디테일을 통해서 그 이외의 사족이 될 만한 것들을 숨겨버린다. 그런 측면에서 그들의 건축은 미니멀리즘 디자인을 추구하는 ‘무인양품(MUJI)’의 제품들을 보는 느낌도 든다.
내가 느끼는 것은 일본 건축의 이러한 흐름이 최근에 생겨난 것 같다는 점이다. 요시오 타니구치나 안도 다다오 등의 건축가는 (내가 느끼기에) 새로운 공간개념 구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엄정한 기하학 언어를 사용한, 완결된 건축을 구축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던 것 같다. 하지만 숨막힐 듯한 완벽한 디테일로 건축을 구현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제조업강국 일본의 완성도 높은 제품들을 보는 듯한 그들의 건축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국민성이 드러나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특징들이 조합되어 전체적인 일본건축의 인상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그들이 만드는 건축이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최전선에서 건축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과연 실제 생활하는 공간에 제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는 아직도 미지수라는 생각이 든다. 후지모토 소우의 house na를 보면 내외부가 얽힌, 새로운 공간을 가진 실험적인 건축임에는 분명하지만 과연 어떤 사람이 이렇게 사방이 열린 집에서 살 수 있을까?
마치 예술작품을 만들듯이 그들만의 세계에서 자기만족을 위한 건축을 하는 것이 그들의 약점이자 한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2. 중국건축
중국 건축이 지금의 위상을 가지게 된 데는 프리츠커 수상자인 왕슈의 공이 누구보다 컸다고 생각한다. 나조차도 그가 등장하기 전에는 중국에 주목할 만한 근대건축의 흐름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그의 건축을 보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형적인 측면이 강조되어 있는데도 결코 과장되어 보이지 않았고 다양한 재료들을 썼는데도 난잡해 보이거나 촌스러워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 와중에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명백히 ‘중국냄새’가 난다는 점이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중국건축에 대한 지식이 아직은 부족하다. 하지만 이 글의 취지에 맞게 전체적인 인상 위주로 서술해 보도록 하겠다.
먼저 재료의 사용이 매우 대담하고 물성을 매우 강하게 드러내다. 일본건축처럼 재료의 물성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돌이면 돌, 벽돌이면 벽돌 하는 식으로 재료의 물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에 따라 건물이 일견 거칠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지역성이 고스란히 잘 드러난다는 장점이 있다.
두 번째 특징은 형태가 대담하며 자잘한 메스의 조합보다는 큼직한 흐름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느낌일수도 있지만, 그들의 건축은 세밀하고 섬세한 디테일의 조합보다는 큰 규모의 메스형태를 보여주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러한 형태들이 중국의 전통적인 처마 선 등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전통적인 느낌을 자아낸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이러한 대담하고 거친 재료의 사용과 형태의 조화가 중국건축의 특징이라고 본다. ‘대륙’의 건축다운 호방하고 담대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건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다만 복잡한 도시적인 컨텍스트를 섬세하게 다룬다거나, 디테일에 대한 집요한 접근 등은 확인되지 않았거나 부족한 측면이 있다. 강한 형태적 어휘들은 그 건축이 상징적 프로그램을 담고 있거나 주변 컨텍스트가 약한 땅에서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그러한 시도들이 도시 안에서도 어울릴지는 의문이다. 도시에 어울리는 작고 섬세한 건축에 중국이 어떻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일지. 그 와중에도 강한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3. 한국건축
마지막으로 한국건축이다. 나조차도 한국건축의 일원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글이지만 서술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혹자는 우리건축에 정체성이 어디 있느냐며 회의적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한국 현대건축의 정체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니, 분명하지 않다면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건축가’들의 의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먼저 생각나는 한국건축의 특징은 외부공간과의 조화 내지는 엮임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한국건축을 설명할 때 흔히 등장하는 개념이 중정, 마당, 켜.. 이런 것들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거의 모두 외부공간을 내부공간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유입시키기 위한, 혹은 공존하게 하기 위한 전략들이다. 이렇게 한국건축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공간’ ‘땅을 밟을 수 있는 공간’ 같은 말로 외부공간과의 조화를 강조(천착에 가깝다)한다. 물론 다른 나라 건축에서도 비숫한 시도들이 나타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느낌이다. 이는 우리나라 전통건축에서 나타나는 ‘마당’,‘대청마루’, 복도 없이 외부에서 바로 방으로 접근하는 구조 등 외부와의 접점이 굉장히 많았던 것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번째는 천연재료의 사용이다. 건축가들의 ‘작품성 있는’ 건물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지만, 건물에 사용되는 재료가 특수한 가공을 거친 것보다는 벽돌, 돌, 목재, 금속(코르텐 강판 등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선호한다) 등 천연재료에 집중되는 모습을 보인다. 특정 색상을 적용하는 도색 같은 가공도 최대한 지양한다. 중국건축 정도의 거친 느낌은 아니지만 일본건축보다는 덜 정제된 느낌이랄까? 특히 벽돌이 최근의 유행을 선도하고 있어서 마치 ‘벽돌건축의 재림’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세 번째는 건축물 주변의 컨텍스트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한국건축만큼 컨텍스트를 거론하고, 강조하는 건축이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물론 다른 나라 건축가들도 컨텍스트를 건축설계의 큰 요소로 거론하기는 하지만 리베스킨트나 자하디드처럼 자신만의 시그니쳐 형태를 세계 어느 나라에나 이식하는 건축가들도 공존하기 때문에 그 정도가 낮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형태를 강조한 건축이 등장하면 컨텍스트를 근거로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곤 한다(DDP나 서울시청을 생각해보라). 이러한 컨텍스트는 건물 주변의 도시조직이나 대지환경, 역사, 주변 건물에 사용된 재료 등등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법규’라는 컨텍스트이다. 일조사선이 반영된 기묘한 형태의 건물들이 형제들처럼 등장하는 것이 이를 극적으로 반영한다. 법규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본의 욕망을 최대한으로 충족시켜주는 것, 그것이 우리나라 도시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거론하고 싶은 한국건축의 특징은 큰 메스의 조합보다는 자잘한 메스의 조합으로 건물을 구성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의 근원은 아무래도 김수근의 공간사옥에서 찾아야 될 것 같다. 계단이나 통로의 폭을 사람이 간신히 다닐 수 있을만한 정도로 최소화하고 잘게 쪼개어진 공간을 세밀하게 조합시킨 공간사옥의 설계방식은 김수근이 한국 전통건축의 특징을 자잘한 공간의 조합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설계에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인식이 옳은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는 이후 그의 대표작들에서 비슷한 시도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며 그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 후배건축가들도 비슷한 어휘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공간구성은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내외부가 만나는 부분을 풍부하게 한다. 또한 건축가의 노고가 들어간 정성스러운 설계로 느껴지게 하며 사람에게 맞추어진 휴먼 스케일의 공간으로 읽혀지게 한다.
지금까지 조금은 장황하게 동방 3국의 건축에 대해 서술해보았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결국 한국건축의 ‘정체성’과 ‘가능성’이다. 다시한번 생각해보면, 한국건축은 중국건축과 일본건축의 중간정도 성격을 가지지 않나 생각된다. 일본건축처럼 완전히 중성적이지도 않고, 중국건축처럼 거칠지도 않다. 또한 중국건축처럼 완전히 형태적으로 대범하지도 않다. 하지만, 결코 과도하거나 지나치지 않으면서 도시조직에 겸손하게 순응한다. 일본건축처럼 현실과 괴리되지 않고 법규에 부대끼며 현실에 순응하지만, 내부공간은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한국인의 따뜻한 삶과 정을 담아낸다. 마치 항아리나 뚝배기와 같은 질박함, 거친 것 같지만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한국건축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특징들과 잠재적 가능성들을 더욱 극대화시켜나가는 것이 한국 현대 건축가들의 과제이자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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