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건축가 Aug 20. 2020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완성도를 지닌 대형오피스건축의 탄생

몇 년 전에 이전 회사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답사를 위해서 용인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연구소에 들른 적이 있다. 거장 알바로 시자의 명성답게 국내에선 본 적이 없는 건물의 퀄리티에 마치 내가 외국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건축가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아모레퍼시픽이란 회사는 정말 건축에 관심이 많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구나’라는 인식이 생겼다. 

사실 아모레퍼시픽은 용인 연구소 이외에도 부산사옥(김종규) 등 수준 높은 건축물들을 선보인 바 있다. 여기에 마지막 화룡정점과 같은 건물이 추가되었으니, 그것이 최근에 완공된 용산의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이다. 

이 건물의 건축가인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영국출신 건축가로 명쾌하고 깔끔한 모더니즘의 정석을 강박증처럼 좇아가는 건축가이다. 비록 아직 프리츠커상은 받지 못했지만, 수상자들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볼 수 있는 스타건축가이다. 그의 프로젝트가 우리나라에서 실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워낙 오랫동안 공사 중이었기 때문에 지나가면서 가끔씩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루버로 건물 전체를 감싼 모습이 마치 담쟁이 덩굴이 건물을 두른 듯 하여 조금은 그로테스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최근 완공된 이후의 세간의 평가는 칭찬일색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곳곳에 돈 안들어간 곳이 안보인다고 할만큼 압도적인 퀄리티를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방적인 여론 흐름에 조금은 어깃장을 놓고 싶어진다고 해야 하나, 나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이 글을 써보고자 한다. 거장의 건축에 나 같은 애송이 건축가가 조금 비판적인 말을 덧댄다고 해서 그리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진 않다. 아무리 걸작이라도 시비걸 만한 구석은 있는 법이니까.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의 조형원리를 표현한 다이어그램


1. 조형원리

위 그림은 아모레퍼시픽 사옥의 메스스터디 과정을 나타낸 다이어그램이다. 단순하고 두꺼운 정방형 메스에서 중앙 부분을 도려내고 벌려서 중정을 만든다. 동서남북 네 개의 켜 중에 세 군데 보이드를 뚫어서 도시로의 조망과 소통을 추구한다. 대지에 맞닿는 부분을 띄워 주변으로의 개방성을 확보하고 저층부에 거대한 개방공간을 두어 공공성을 극대화한다. 건물 주변을 루버로 감싸 외부환경에 대응한다. 




미스의 시그램 빌딩과 김종성의 SK빌딩


서두에서 비판적으로 써보기로 했으니 조금은 격하게 써보기로 하자.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게 전부다(?). 사실 오피스 건물에 있어서 새로운 공간개념을 시도하기는 쉽지 않다. 업무시설일수록 도심지에 위치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토지가격이 높기 마련이고, 최소 비용으로 용적률을 한계치까지 활용하여 최대면적을 차지할 수 있는 메스형태를 띄게 된다. 그래서 시그램빌딩을 비롯한 많은 오피스건물들이 표준화된 평면구성을 추구하면서, 외피 디테일을 통해 디자인 정체성을 추구하곤 한다. 하지만 이 건물은 다르다. 아모레 퍼시픽의 재력이 뛰어나서인지 몰라도, 상당히 호사스럽게 외부공간을 끌어안고 있다.


사실 중정을 내고 보이드를 뚫는 것은 네모박스로 이루어진 모더니즘 건축에서 건축가들이 자주 하는 시도들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것 말고는 할 게 별로 없다(?). 그렇게 뚫어놓고는 도시와 소통한다, 연계한다, 조응한다, 숨을 쉰다 등 좋은 말들을 갖다 붙이곤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설계초기단계까지는 그런 시도들을 해보는데 설계가 진행될수록 점점 사그러들기 마련이다. 그런 복잡한 메스 형태로는 앞서 언급했던 용적률게임(정해진 비용과 용적률 안에서 최대 면적을 차지하기 위한 건축가들의 노력 혹은 전략들을 표현한 용어로 2016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주제로 선정되었다)을 통해 건축주의 경제적 목표를 이룩하기 힘들다는 것이 입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건축가의 명성 혹은 뛰어난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 난관을 극복하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도 있다.

짐작컨대 이 건물에서 용적률 게임을 극복한 힘은 건축가의 명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실 메스 자체의 구성 원리는 건축가라면 누구나 생각해 봄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상설계에서 당선되었다고는 하지만, 국내 건축가였다면 어떻게든 원안이 바뀌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수없이 바뀐 서울시청의 투시도들을 생각해보자)

개인적으로 이러한 메스형태가 오피스건물로서는 굉장히 호사스럽게 느껴진다. 용적률과 비용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외기에 접한 면적이 넓어지기 때문에 에너지 측면에서도 불리할 것이 뻔해 보인다. 마치 ‘난 돈이 너무 많아서 공사비를 아끼려고 애쓰지 않고, 사방으로 뻥뻥 뚫으면서 이 정도 건물을 만들었다’라고 선언하는 듯하다. 어떻게든 최대 면적을 확보하기 위해 잔뜩 웅크리고 있는 주변 건물들이 옹색하고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의 스킨루버


2. 스킨 루버

이 건물에서 건축가는 커튼월 외부에 이중외피 방식으로 루버를 덧대는 방식을 사용했다. 친환경 이슈가 부각되기 이전에 고층빌딩은 커튼월 방식이 대세를 이루었다. 63빌딩으로 대표되는 화려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외견이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커튼월 건물의 에너지 비효율성 논란 이후로 순수하게 유리 커튼월만으로 지어진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 와중에 커튼월을 사용하고 싶다면 로이삼중유리와 같은 고가의 특수유리를 사용함과 동시에 외부에 햇빛을 차단하는 설비장치를 덧붙여야 한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의 거대한 루버들은 그렇게 등장한 것으로 보이는데,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날렵한 외관은 개별적으로 볼 때 하이테크한 인상을 주면서, 건물 전체로 보왔을 때 발을 쳐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대나무 숲 속에 와있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같은 패턴의 루버를 외부 4면에 동일하게, 심지어 내부 중정을 면하고 있는 부분까지 적용해야 했는지에 의문이 들었다. 물론 다수의 루버가 모여서 자아내는 압도적인 광경은 인정하지만, 채광이나 일사 등을 정밀하게 분석했다면 좀 더 효율적이면서도 변화가 있는 패턴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내부 중정면이나 저층부는 루버의 밀도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3. 저층부 / 로비공간

사실 이 건물에서 외부인에게 개방된 부분은 저층부의 로비공간과 부속 상업시설, 미술관(물론 유료이다) 정도이다. 그래서 건물 중앙의 중정이나 상부층은 일반인이 관람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직접 본 공간은 로비 공간 정도이고, 거기에 대한 글을 좀 더 써보고자 한다. 

우선 이 건물은 정방형의 형태를 띈 건물답게 정면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없다. 어느 한쪽변이 길다면 그 쪽을 정면이라고 칭할텐데 네 변의 길이가 같다보니 어디를 정면으로 봐야할지 애매하다. 로비 또한 그러한 건물의 성격을 반영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중앙에 위치한다. 

우선 그 크기부터 어마어마하다. 일반 빌딩의 로비공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바닥은 화강석, 벽과 천장은 거의 모든 부분이 노출콘크리트로 이루어져있다. 심지어 에스컬레이터조차 노출콘크리트에 감싸여 올라간다. 상부에는 역시 노출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격자형 보 사이사이에 끼워진 천창을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사실 이 정도의 공간을 대중에게 개방된 공간으로 계획한다는 것이 민간기업의 사옥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나 역시 이정도 규모의 로비를 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건축가 이은영의 슈트트가르트 도서관 내부공간과  알베르토 캄포 바에자의 그라나다 은행 내부공간을 섞어놓은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은영의 슈튜트가르트 도서관
알베르토 캄포 바에자의 그라나다 은행

상부 천창에서 떨어지는 빛이 바닥에 만드는 흔적을 보니, 무언가 일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맙소사, 천창을 준 것도 모자라 그 위에 물을 얹은 것이다!

물과 수공간, 건축가들이 흔히 꿈꾸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쉽게 적용하지는 못한다. 비용과 관리, 설비 등의 복잡한 문제들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하늘로 넓게 뚫려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천창 또한 건축가들의 워너비 아이템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결로와 단열, 하자 문제로 말썽을 일으키는 것을 자주 보았다. 이렇게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애증의 아이템들인데, 여기서는 숫제 천창 위에 물을 태워버렸다! 우리 같은 평범한 건축가들은 ‘하자 발생시키고 싶어서 환장’하지 않는다면 엄두조차 내지 못할 시도이다. ‘치퍼필드니까 이렇게까지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공간미학적으로는 두말할 나위없이 뛰어나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말을 써봤지만, 사실 이 건물은 건축적으로 매우 뛰어나며 퀄리티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하지만 나같은 초보건축가가 보기엔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건물을 보는 듯한 괴리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모레퍼시픽이 기부채납 했다는 주변의 주민센터만 보더라도 우리가 평소에 보아오던 주민센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이 건물을 보면서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어 있는 동안 주말연속극을 보면서 일반 국민들이 재벌을 보는 시각이 그러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앞으로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인터뷰가 생각났다. 우리나라 어느 국민이 그 인터뷰를 보고 ‘아 진짜 이재용이가 반성하고 있구나. 우리 심정을 좀 이해하나보다’라고 느꼈을까? 그냥 이번 구속은 면했으니 계속 그들만의 세상에 살면서 일반 국민들의 삶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 뻔하다.

이 건물은 퀄리티가 높고, 돈을 쏟아 부은 흔적이 보인다. 각종 목업을 위해 쓴 돈을 모으면 작은 건물을 지을 돈이 된다고도 하고, 1군 건설사인 현대건설이 설계사 컨펌을 위해 독일로 수십 번씩 날아갔다고도 한다. 기부채납을 위해 주민센터를 지어줬다고도 한다. 정말 ‘주말연속극’에나 나올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건물의 퀄리티를 위해, 한 기업의 자부심을 위해 이정도 재화가 꼭 들어가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건이 된다면 호사스러운 건물을 만들 수 있겠지만, 제한된 여건 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주변 건축가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주어진 비용과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공공에 기여해야 한다는, 내가 가진 건축가의 가치관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진출처: GOOGLE 검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