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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Jun 28. 2021

나의 건축철학? ‘단순한 속의 단단함’



여러분은 어떤 건축가들을 알고 계시나요? 근대건축 최고의 거장이라는 프랑스의 르꼬르뷔제나 노출콘크리트 앞세워 자신만의 건축을 구축한 일본의 안도 다다오 정도가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건축가들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정말 많은 건축물들이 있습니다. 아파트부터 학교, 빌라 등등 수많은 건축물들이 도시를 채우고 있죠. 하지만 우리가 이 많은 건축물들의 건축가들을 기억하진 않습니다. 그 건물들을 설계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말이죠. 왜 그럴까요?


그것은 그 건축물들에 담긴 큰 생각이나 철학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주변의 많은 학교, 아파트, 빌딩의 설계안들은 예전 쓰던 것들을 거의 그대로 적용한 것들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항상 보던 것들이죠. 


하지만 소위 ‘건축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작업하는 방식은 조금 다릅니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다른 건축물을 만들까, 다른 공간을 만들어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건축가입니다. 그런 고민들이 다른 재료, 다른 외관, 다른 공간을 가진 건축물을 만들게 되고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는 것입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인사동에 가면 쌈지길이라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최문규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물로, 건물 전체가 완만한 경사로로 이어져 있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옥상까지 접근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건축물을 경험하면서 건물이라기 보다는 인사동 길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이런 저런 물건도 구경하고, 가운데 마당에서 벌어지는 각종 이벤트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건축가가 의도한 가장 큰 설계 개념입니다. 건물의 공공성을 극대화하면서도 상업시설로서의 접근성까지 확보한 흔치 않은 성공사례가 이 쌈지길입니다.


두 번째 사례는 용산에 위치한 아모레 퍼시픽 사옥입니다. 영국의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건물인데요. 겉보기부터 기존의 박스형 건물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건물 가운데 공간을 크게 뚫고 그곳에 공중 정원을 두었는데요. 이 곳에서 도시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몇 개의 큰 구멍을 내주었습니다. 면적을 확보하는데 중점을 둔 기존 건물에서 하기 힘든 시도입니다. 공공을 먼저 배려하고자 하는 건축가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의 백미는 1층의 거대한 로비입니다. 기존 건물 로비 면적의 몇 배에 달하는 거대한 로비는 보는 사람을 압도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벌어지는 각종 문화 이벤트와 카페, 전시 등을 회사 사람들 뿐 아니라 외부의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건축과 공간에 담긴 건축가의 특별한 생각이 건물을 특별하게 만들고, 대중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건물을 설계할 때 건축가가 하는 생각, 개념들을 종합한 것을 그 건축가의 ‘건축 철학’이라고 부릅니다. 앞서 설명한 르 꼬르뷔제는 ‘건축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말로 자신의 건축 철학을 설명했습니다. 르 꼬르뷔제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보자르 학파라고 하여 도제식 수업에 의해 전수되던 장식적이고 화려한 건축이 유행이었습니다. 르 꼬르뷔제는 여기에 반기를 들고 20세기 초에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던 산업 발전을 건축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산업화의 산물인 배나 비행기의 디자인을 건축에도 적용하자는 것이었는데요. 그에 따라 대량생산된 철근 콘크리트와 지상에서 건물을 통째로 띄운 필로티 등을 그의 건축에 적용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아직 제대로 된 완성작이 몇 개 없는 신출내기 건축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만의 ‘건축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아직 완성되지 않더라도 하나의 지향점이 있어야 그를 향해 나아갈 수 있고 일관성 있는 작품들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비록 ‘르 꼬르뷔제’같은 거장 수준은 아니지만 제가 저만의 건축 철학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최근에 제가 정립한 저의 건축 철학은 ‘단순함 속의 단단함’입니다. 외관에서 나타나는 형태적인 유희를 최소화하면서 나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단정하고 정갈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제가 몇 개의 설계 공모전과 실제로 이루어지는 건축물을 진행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건축 어휘는 복잡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두 가지의 포인트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들이 뒤섞여 복잡한 인상을 주는 것은 곤란합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에는 아내의 영향이 컸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작업한 것들을 자주 아내에게 보여주곤 하는데, 아내의 미적 감각이 좋은 것도 있지만 건축인의 시각에서 벗어나 ‘일반인의 시각’에서 볼 때 어떻게 보이는가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마다 자주 듣는 말이 ‘너무 복잡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단순하게 정리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반감을 가지고 논쟁한 적도 많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수긍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는 경지는 아닙니다. 많은 사례 스터디, 스케치, 실제 프로젝트를 통한 적용, 이론적인 공부의 뒷받침 등이 수반되어야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건축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함이란 심심함으로 귀결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쿨’하게, ‘심플’하게 만들려고 하다가도 결국에는 이것 저것 군더더기를 붙이게 됩니다. 왠지 휑해 보이고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디자인이 덜 되어 보인다’라는 표현이 이럴 때 등장합니다. 단순함만으로 승부하기엔 뭔가 자신이 없고 뭐라도 덧붙여야 디자인적 시도를 한 것 같습니다. 이런 딜레마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건축가들은 정말 얼마 없습니다. 그만큼 순수한 메스(mass, 건물의 덩어리를 뜻하는 말)에 자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몇 개의 참고 사례를 통해 저의 건축 철학인 ‘단순함 속의 단단함’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말로 어렵게 설명하기보다 유사한 사례를 통해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일반 대중에게 설명하기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종묘입니다.


종묘는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한 사당입니다. 기능과는 별개로 그 건축적 구성은 매우 심플합니다. 좌우 대칭의 기다란 장방형 건물에 큰 지붕이 올려져 있고 그 밑에 열주가 늘어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단순함에서 오는 묵직함과 기품은 평범한 건축물이 따라가기 힘든 수준입니다. 경복궁 같이 화려한 단청이나 장식이 없이도 충분히 좋은 건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달항아리입니다.


달항아리는 조선 후기 백자 항아리 양식입니다. 조병수를 비롯한 많은 유명 건축가들이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앞서 말씀드린 데이비드 치퍼필드도 아모레 퍼시픽 사옥을 설계하면서 달항아리를 언급했습니다. 크게 기교를 부린 것 같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고 정감 있는 아름다움을 풍기는 문화재입니다. ‘무기교의 기교’라고 했던가요. 이런 경지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초고수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세 번째는 김정희의 추사체입니다.


김정희의 추사체는 사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후반부의 작품들은 대담하면서도 독특한 미감을 뽐내고 있는데, 역시 크게 성의를 들이지 않은 듯 하면서도 특유의 힘 있는 필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특집입니다.


이 세 가지 사례의 특징은 화려하거나 현란한 기교를 최대한 배제하고, 무심한 듯하면서도 본질에 충실한 작업으로 높은 경지를 이룩했다는 점입니다. 제가 이루고 싶은 경지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저만의’ 정체성, ‘한국’만의 정체성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입니다.


아직은 손에 잡히지 않을 듯한 모호하면서도 막연한 지향점이긴 합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생각하고, 스케치해보고, 좋은 것들을 보고, 실무에 적용해나간다면 언젠가는 이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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