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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Jun 20. 2021

내가 건축을 하게 된 이야기

안녕하세요. 글쓰는 건축가 김선동입니다. 


여러분은 건축가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가지고 계시나요? 멋진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 아니면 날카로운 감각을 지닌 크리에이터? 아니면 도면과 치수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공학자? 사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 건축가입니다. 그만큼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할 수 있죠. 저 역시 공학적이면서도 예술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매력 덕분에 건축과에 진학했고 건축가라는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이 이제부터 써나갈 글을 통해서 저란 사람에 대해서 파악하시겠지만, 먼저 제가 어떻게 건축을 하게 되었는지 말씀드리는 것이 저를 소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 어렸을 때부터 나가서 노는 일은 거의 없는, 집에서만 노는 아이였습니다. 매일 매일 집에서 그림만 그렸기 때문이죠. 아버지가 회사에서 남는 이면지를 가져오시면 그 뒷면에 하루 종일 그림 그리면서 놀았습니다. TV에서 하는 만화를 너무 좋아해서 빠지지 않고 봤던 것 같습니다. 주로 방바닥을 뒹굴며 그림을 그리면서 그런 만화의 주인공이 되는 역할극 놀이를 하곤 했습니다. 제 멋대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들면서 놀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 자연스럽게 만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 혼나거나 하면 '가출해서 어디 만화가 문하에 들어가 숙식을 해결하면서 살 순 없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도 그렇고, 제 친형이 워낙 공부를 잘해서 저도 공부를 잘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저 만화가 할래요' 라고 부모님에게 말할 용기가 없었죠. 지금 생각하면 그런 진로로 가겠다 라고 말했다면 부모님은 처음엔 화를 내셨을 수도 있지만 결국 하라고 하셨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하겠다는 걸 반대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분들이니까요. 하지만 아무도 규정짓지 않은 제 자신의 벽 때문에 만화가가 되는 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후회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한 번 사는 인생, 해보고 싶은 대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남들 다 하는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뭔가 진득하게 하면 조금씩은 발전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1학년 때부터 차츰 차츰 성적을 끌어올려 고3 때는 나름 서울 상위권 대학을 바라볼 수 있는 성적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이때부터 어느 과를 가야하나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적도 안 되지만 사람 배를 가르는 의사는 도저히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럼 이과니까 공대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래도 뭔가 그림 그리는 직업을 갖고 싶다.. 라는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건축’이라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아마 그맘때쯤 신동엽 씨가 진행하는 '러브 하우스'가 한창 유행을 탔을 겁니다. 건축가들이 나와서 오래되고 구질구질한 집을 멋지고 아기자기한 새 집으로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프로그램이었죠. 그 프로그램 때문에 건축과의 인기가 한동안 상종가를 치게 됩니다. 저도 그 프로그램과 도서관에 있는 몇몇 건축 잡지를 보고 '이거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뭔가 공부도 좀 하고, 예술적인 감각도 발휘하는 멋진 직업으로 보였던 거죠. 주변 사람들에게도 좀 더 그럴싸한 직업으로 보일 것 같았구요. 그래서 야무지게 '내 목표는 서울대 건축과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수능을 보고 가나다라군 모조리 건축과로 집어 넣었습니다. 아쉽게 서울대 갈 점수는 안 나왔고, 연세대로 진학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대학교에 진학해서 드디어 설계수업이라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딱딱한 공대 수업 분위기와는 너무나 다른 교수님과 학생들의 화기애애하고 열린 분위기.. 이게 건축 설계 수업이구나 라는 낭만에 빠지는 것도 잠시, 엄청난 과제량에 깜짝 놀라고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도면, 모형, 컴퓨터 그래픽 작업.. 물론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긴 합니다만, 당시로선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죠. 지금도 많은 건축과 학생들이 많은 과제 때문에 밤잠을 설쳐가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쌓여서 사회에 나가서 일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됩니다. 


전 군대에 가기 전까지 설계 수업에 적응을 잘 못했습니다. 매 시간마다 담당교수님에게 설계를 다시 해오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죠. 아마 교수님이 원하시는 스타일의 설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당연히 학점도 안 좋게 나왔습니다. 그러다보니 군대에 갈 때쯤 ‘계속 설계를 해야 하나’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말하는 소위 ‘명문대학’에 왔으니 졸업은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 설계라는 것을 그다지 열심히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일단 돌아가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고도 잘 안되면 그때 포기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죠.


제대하고 좀 더 설계에 매진했고, 좋은 지도교수님들을 만나 설계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설계실 수위아저씨 ’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설계실에서 밤을 새는 걸 당연한 것 처럼 여기기도 했구요. 


그렇게 대학원까지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같은 설계라면 큰 회사에서 안정적으로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림건축이라는, 업계에서 건실하다고 평가받는 대형 설계사무소에 취직했습니다. 당시에는 대형 설계사무소와 소형 설계사무소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회사를 몇 년 다녀보고 나서야 두 회사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대형 설계사무소는 오피스나 마트, 물류창고 같은 큰 건물을 설계합니다. 따라서 한 프로젝트에 많은 인력이 투입되고 좀 더 시스템화된 설계를 합니다. 때문에 한 명의 직원이 전반적인 과정을 파악하기 힘들고, 자기 분야만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큰 기업의 일을 주로 하기 때문에 보고도 많이 하게 되고, 디자인적으로 뭔가 독창적인 시도를 하기 보다는 안정적인 방식을 선택하게 됩니다. 아래 직급 직원들이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가 힘들고, 윗선에서 정한 디자인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죠. 


반면에 소형 설계사무소는 작은 주택이나 근린생활시설(소매점, 휴게 음식점 등의 소형 건물)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많아야 1~2명의 직원이 한 개의 프로젝트를 맡게 됩니다. 따라서 건물이 디자인되고 지어지는 전반적인 과정을 경험할 수 있고, 현장경험까지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급여나 기타 복지 같은 것들은 대형 설계사무소보다 대체적으로 열악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형 설계사무소에서 7년을 보내다 보니, ‘이제는 실제로 지어지는 내 건물을 디자인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습니다. 물론 다니던 회사에서도 조금씩 디자인할 기회는 주어지고 있었지만, 실제로 지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작은 건물을 설계해서 실제로 지어지는 것을 직접 확인, 감독하는 ‘감리’ 업무를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는 지인들이 운영하고 있던 ‘이데아키텍츠’ 설계사무소에 합류했습니다. 이 사무실에서 몇 개의 주택과 다가구주택, 근생 시설 등을 설계하고 감리하면서 현재까지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짧게나마 제가 건축을 해왔던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제가 주변에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조금씩은 다르지만 비슷한 동기를 갖고 있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예술적인 직업을 가지고 싶은데, 뭔가 공부도 좀 하는.. 그런 것이 없을까 해서 왔다고들 하죠. 근대건축 최고의 거장 르 꼬르뷔제도 화가를 동경했다고 합니다. 포르투칼이 낳은 최고의 건축가 알바루 시자도 원래 화가를 지망했다고 하죠. 저 역시 한때 만화가를 동경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건축가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예술보다 좀 더 ‘현실적인’ 분야이기 때문이죠. 작업실에 틀어박혀 뭔가 만들어내서 ‘짠!’하고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좋습니다. 뭔가 모두의 작업물을 만들어내는 느낌이 들거든요. 물론 예산이나 법규 등 현실적인 제약요소도 많지만요. 그런 것들을 잘 극복해내는 것이 좋은 건축가의 요건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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