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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Jul 11. 2021

글쓰기 - 건축가의 글은 또 다른 표현의 도구이다

두 번째로 소개드리고 싶은 제 습관은 글쓰기입니다. 사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자신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으로 생각해왔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학창시절부터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도 별로 없구요. 저 때만 해도 대학 입시 때 논술 시험을 봐야 해서 그때 잠깐 글 쓰는 연습을 해본 기억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건축가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전달해야 할 일이 꽤나 많습니다. 학생 때 공모전에 나가면 패널이라는 것을 꾸며야 하는데요. 도면이나 투시도, 다이어그램이라는 개념 그림들도 물론 들어가지만, 설계 개념을 설명하는 글도 써야 합니다. 이 글은 비록 짧지만 설계의 핵심 개념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잘 써야 합니다. 물론 심사위원들이 글보다는 투시도나 도면 등의 이미지를 보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순위권 안에 들어가서 1,2등을 다투게 된다면 그 글도 전부 읽어보기 때문에 결코 대강 쓸 수는 없습니다. 


설계 사무소에 가게 되면 보고서라는 것을 자주 작성하게 됩니다. 패널과 비슷하게 도면과 투시도, 다이어그램, 모형 사진에 회사의 실적 등을 더해 건축주들을 설득하는 내용이 담겨집니다. 여기에도 다양한 종류의 글을 쓰게 되는데요. 대지를 분석하는 내용, 설계안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내용, 회사의 강점을 소개하는 내용 등이 글에 담기게 됩니다. 당연히 보고서에서 이 글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따라서 보고서의 글은 상당히 고참 급의 인원들이 쓰게 됩니다. 어느 사무소에서는 대표 소장님이 직접 작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 회사에서 이런 글들을 쓰면서 ‘아 내가 글을 못 쓰지는 않는구나’라는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큰 회사의 소장님들은 워낙 바쁘셔서 이런 글을 직접 못 챙기실 때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 전 그냥 제가 글을 써버리고 정해진 시간 내에 새로운 글이나 코멘트가 없다면 그대로 넘기겠다는 식으로 말씀드리곤 했습니다. 그럼 소장님들은 제 글을 보고 약간의 수정사항만 적어주셨고 그걸 반영해서 넘길 때가 많았거든요. 제가 쓴 보고서 글이 괜찮았다는 말도 심심찮게 듣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의 아내와 연예를 하게 되었는데, 제가 그려준 그림보다 편지에 좀 더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특별한 날이면 아내의 사진을 보고 그림도 그려주고, 편지도 써주었는데 그림보다도 글을 잘 쓴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아내도 그림을 좀 그리기 때문에 글에서 더 강한 인상을 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저에게는 ‘아 내가 그림보다 글에 더 소질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건축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펴낸 일이 많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르 꼬르뷔제도 ‘건축을 향하여’라는 저서를 통해 자신의 건축 철학을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도 ‘정신착란의 뉴욕’, ‘S M L XL'이라는 저서들을 통해 세계 건축계에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릴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승효상 선생님이 ’빈자의 미학‘이라는 책을 통해 자신의 건축 세계를 알린 사례가 있죠. 저 역시 글을 통해서 저의 건축 철학을 정리, 발전시키고 나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도 그 일환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스케치에 관한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전 회사를 옮길 시절에 저 자신을 알릴 방법으로 블로그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학생시절부터 해왔던 공모전 몇 개와 작업들을 소개하고 나자 더 이상 올릴 만한 내용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해왔던 것이 앞서 말씀드린 스케치와 글쓰기입니다. 


우선 제가 보았던 인상적인 건물에 대한 감상이나 건축과 관련한 책에 대한 서평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사실 건물을 보고 나면 ‘좋았다. 멋지다. 이건 좀 별로다’ 정도의 인상이 산발적으로 머리 속에 남아있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사진 몇 장을 찍어오는 것이 전부죠. 이런 것들을 체계적인 글로 정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설계한 건축가나 제반 사항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도 추가적으로 해야 하죠.


책에 대한 서평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은 그래도 쉬운 일이지만 여기서 요점을 간추려내고, 내 생각을 담아서 한 편의 글로 다시 정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 밖에 일상에서 겪은 일, 각종 전시회나 강연 등에 참석한 후 이에 관한 글도 몇 편 정리해서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적다보니 블로그에 쓰는 글이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라는 글쓰기 사이트에도 가입하여 그 곳에도 글을 올리기 시작했구요. 블로그와 브런치에 대해서는 다른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말씀드릴 예정입니다.


스케치와 마찬가지로 글쓰기 모임도 하나 만들어서 운영 중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세 분 정도가 참여해주고 계시구요. 일주일에 한 편 이상 글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혼자 쓰면 힘든 일이지만 서로 격려하고 응원해주면서 쓰니 아무래도 힘도 나도 자극도 받는 것 같습니다. 의무감도 더 생기구요. 오프라인 모임도 한 번 가졌는데, 얼굴을 본 이후로 좀 더 친숙해진 느낌이 듭니다. 


제가 다양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역시 ‘글쓰기를 통한 나만의 건축철학 만들기’과 ‘글쓰기를 통한 나 알리기’일 것입니다. 사실 앞서 말씀드린 ‘단순함 속의 단단함’이라는 키워드 역시 여러 권의 책을 읽고, 생각한 것을 글로 정리하다 보니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구요. 앞으로 생각하고 검토하고, 다시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좀 더 발전될 것입니다. 두 번째 목표는 결국 ‘홍보’입니다. 건축가란 사람도 결국 자신을 알려야 일을 수주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유명하지 못한 제가 큰 실적 없이 나를 알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글쓰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를 위해서 일반인들이 건축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알기 쉬운 집짓기 안내서’라는 카테고리로 집짓기의 과정과 여러 지식들을 최대한 알기 쉽게 정리해서 써보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이 글들이 모아 건축주들을 도우면서도 저를 홍보할 수 있는 ‘집짓기 책’을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밖에 건축계 후배들과 학생들의 고민을 같이 생각해보는 ‘건축 상담’이라는 카테고리의 글도 몇 편 써보았습니다. 이 글들을 보고 상담을 위한 몇 편의 메일을 받아볼 정도로 반응이 있는 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전 한때 만화가를 꿈꿀 정도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는 편입니다. 예전에 큰 사무실에 다닐 때 잠깐 잠깐 생각했던 플롯을 바탕으로 취미 삼아 소설도 한 편 써보았습니다. ‘건축소설 COMPETITION' 이라는 소설인데요. 제 블로그에 올라와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쯤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현상설계에 도전하는 젊은 건축인들의 땀과 열정,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부조리와 음모를 파헤쳐가는 이야기입니다.아직은 아마추어 수준이라 약간은 어설픈 소설이지만, 전 쓰면서 참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이 이 소설을 어떻게 보든지(물론 재밌게 봤다고 하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나 스스로 재미있었고, 그런 점에서는 참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건축이라는 분야를 홍보하는데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후속작들을 써볼 생각입니다. 


쓰면 쓸수록 느끼는 거지만, 글이라는 건 참 솔직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글을 쓰면서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면 자신을 숨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길게 쓰면 쓸수록 쓴 사람의 성격과 생각, 철학 등이 고스란히 묻어나게 됩니다. 제 글을 보신 많은 분들, 글쓰기 모임의 분들도 비슷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제 글을 보면 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고요. 저의 솔직하고 착하고, 친절한 성격이 글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아마 비교적 쉬운 내용이라도 최대한 자세하고 친절하게 해설하려고 썼던 글 등이 그렇게 비춰졌던 것 같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글을 봐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거만한 글을 쓴 사람은 거만한 성격일 것이고, 자신감 없는 글을 쓴 사람은 자신감이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글은 쓴 사람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건축과 관련된 저의 생각과 철학, 지식을 발전시키는 도구로서, 제 삶을 가다듬는 방식으로서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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