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물의 디자인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 주변엔 정말 많은 물건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책상 위에도 여러 가지 것들이 있는데요. 노트북과 펜, 마우스 등등.. 이런 일상적이고 사소한 제품들에도 디자인이 들어있고, 그 디자인에는 각각의 의미가 있습니다. 흔히 쓰는 펜만 보더라도 손이 닿는 부분의 굴곡 처리, 옷이나 노트에 꼽을 수 있는 걸이 부분의 디자인, 뚜껑 부분의 처리 등등..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부분에서도 ‘어, 그런 의도가 있었어?’하고 새삼 감탕할 만한 것들이 숨어있죠.
예를 들어 종이컵을 한 번 보겠습니다. 예전에 서울대 서현 교수님의 책에서 본 내용인데요. 종이컵은 기본적으로 코팅된 종이를 둥글게 말고 아래쪽을 원형의 종이로 받쳐서 물이 담을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여기서 입이 닿는 부분을 보면, 종이의 날카로운 부분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도록 바깥쪽으로 둥글게 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작은 디테일이지만 입에 닿는 촉감을 좋게 만든 것이죠. 종이의 날카로운 부분이 입술에 그대로 닿는다면 그다지 좋진 않을 겁니다. 날카로운 종이에 손이 베이는 경우도 가끔 있으니까요. 또 한가지, 종이컵의 아랫부분을 보면 밑바닥이 바닥에 직접 닿지 않도록 종이를 접어서 턱을 만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닥에 종이가 직접 닿는다면 컵에 담겨진 커피나 차의 열이 쉽게 뺏길 것이고 바닥이 손상될 우려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항상 접하는 종이컵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렇게 세심한 디테일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물건은 바가지입니다. 원래 바가지라는 것은 물을 퍼 담거나 옮기기 위해서 쓰는 물건인데요. 박을 세로로 두 조각 내서 쓰던 물건인데 현재는 플라스틱 등으로 만들어서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플라스틱 바가지를 보면 예전에 쓰던 것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는데요. 바로 물을 따르는 뾰족한 주둥이 부분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바가지로 병 같은 곳에 물을 따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일반적인 바가지로 물을 따르면 흘리지 않고 따르기가 힘들죠. 이럴 때 뾰족한 주둥이가 있는 바가지는 무척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물건이지만 구석 구석에 디자인이 숨어 있고, 그 디자인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건물 디자인에도 이러한 디테일들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얼핏 보았을 때는 지나치기 쉬운 것들이죠. 하지만 건축가들은 그런 것들을 디자인하는데 많은 신경을 쓰고 공을 들입니다.
계단의 난간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벽과 천장 혹은 바닥이 만나는 몰딩이나 걸레받이의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요소들이 그러한 것들입니다. 이 디테일의 결정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건물의 하자를 최소화시키면서, 디자인이 세련되어야 하고 시공할 때 드는 비용도 적정해야 하죠. 건물 구석 구석에 적용되는 디테일들을 보면 건물의 많은 측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건축가들은 이러한 디테일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 같은 주변 사물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내 건물에 어떻게 적용할지 생각해보기도 하고, 주변 건물들은 어떻게 했는지 관찰하기도 합니다.
건물을 디자인 할 때 생각해야 할 디테일의 사례를 몇 가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두겁’입니다. 건물 최상단의 파라펫(옥상에서 난간이 되는 낮은 벽 부분)이나 창호 하단에서 마감재로 덮는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돌이나 금속재, 벽돌로 처리하기도 합니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것은 ‘물갈기’라고 불리는, 광택이 있게 처리된 돌 재료입니다. 이 두겁이 중요한 이유는 이 부분이 건물에서 물이 침투하기 가장 쉬운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마감재와 콘크리트 골조가 맞닿는 부분이라 여기서 물이 새면 실내로 물이 새어 들어올 염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잘 마감해줘야 하는데요. 돌 등의 재료로 이 부분을 빈틈없이 잘 막아줘야 합니다. 아마 건축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일반인 분들은 이러한 설명을 듣기 전엔 ‘건물에 그런 부분이 있었어?’라고 하실 법 합니다.
이러한 두겁의 재료나 공법 선택에 있어서 건축가들은 여러 가지 결정을 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돌로 마감하게 되면 물의 침투로부터는 비교적 안전할 수 있지만 다소 투박하게 보일 염려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돌이라는 재료가 두껍기 때문에 외견상 둔탁하게 보일 수 있죠. 그래서 많은 건축가들이 금속으로 만든 ‘후레싱’ 처리를 선호합니다. 금속으로 처리하면 훨씬 얇고 세련되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얇게 처리하려고 하면 할수록 물에는 취약합니다. 또한 하나의 금속판은 길이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옥상에서는 보통 몇 개씩 이어 붙어야 합니다. 이 연결부위에서 흔히 ‘코킹’이라고 하는 실리콘 처리가 필요한데, 이 코킹에는 한계 수명이 있어 몇 년 지나면 보수를 해줘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금속 후레싱은 돌로 만든 두겁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내구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서 건축가들의 딜레마가 생깁니다. 누수 등에 다소 취약하지만 예쁘고 세련된 금속 후레싱으로 할 것이냐, 내구성이 뛰어나지만 투박한 돌 두겁으로 할 것이냐?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건축가들은 고민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물받이 거터와 선홈통입니다. 물받이 거터라는 것은 경사지붕 끝에 길게 달린 ㄷ자 모양의 철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붕에서 내려오는 물을 선홈통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거터가 없으면 경사지붕의 물이 그대로 지상으로 흘러 내려가기 때문에 보행자들에게 직접 떨어질 수 있고, 지상에서의 물 처리가 어려워집니다. 또한 지붕에서 흘러내린 우수가 벽에 직접 떨어질 수 있어 오염의 원인이 됩니다. 선홈통은 거터에서 모인 물들을 잘 모아서 지상으로 내려 보내는, 벽에 달리는 파이프 형태의 철물입니다. 평지붕 건물에도 선홈통은 거의 다 달려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디테일은 신경 쓰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지만, 유심히 살펴보시면 거의 대부분의 건물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디테일이 없다면 건물의 우수 처리는 굉장히 힘들어질 것입니다.
사실 이 물처리 디테일에서도 건축가들은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세련된 디자인을 원하는 건축가들은 거터나 선홈통이 외부로 드러나는 디테일을 싫어합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외관을 중시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거터를 지붕선 안에 숨기는 ‘히든 거터’로 시공하거나 아예 물받이 거터를 생략하기도 합니다. 선홈통 같은 경우에도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마감 안에 묻어버리는 공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장의 시공사 분들은 이런 공법을 선호하지 않죠. 히든 거터를 시공할 경우 실내로 물이 샐 위험이 있고, 유지보수가 힘듭니다. 선홈통을 벽체 마감 속에 묻어버리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유지보수가 필요할 경우 기껏 붙여놓은 마감을 뜯어내야 합니다. 이렇게 세련되고 아름다운 디자인이냐, 유지관리와 시공의 편의성이냐 하는 딜레마는 거의 모든 디테일 디자인에서 건축가들이 마주치게 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제품 디자인과 건축 디자인에서 적용되는 디테일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서로 다른 재료가 맞닿는 부분, 사람의 손길이 직접 닿는 부분에서의 디테일을 고민하는 것은 건축가로서 힘들면서도 재미를 느끼는 부분입니다. 마치 정교한 프라모델을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여러분들이 건물을 보실 때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여러 디테일들을 잘 관찰하시고 그 디자인을 보실 수 있다면 건축물을 보는 재미를 한층 더 많이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