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미래농원에 대해서
사진 및 이미지 출처(모든 사진 동일):
http://societyofarchitecture.com/project/mrnw-daegu/
나는 한국 근대 건축계의 역사를 4단계 정도로 분류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분류이기 때문에, 나보다 전문가분들이 보기엔 아마 동의를 못하실 수도 있겠지만 15년간 공부하고 일하면서 내가 보고 들은 한국 건축의 역사를 축약,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아마 동시대 건축인 여러분들은 대체적으로 동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먼저, 김수근 - 김중업을 필두로 하는 소위 '양김'의 시대다. 이 두 건축가가 한국 근대건축을 대표하는 사람들이고, 그 후광이 워낙 크고 깊기 때문에 그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이전에도 많은 건축가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임팩트가 훨씬 컸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한국 근대건축이 시작됐다고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 양김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이 그 다음 세대를 이루게 된다. 이것을 합쳐 '양김'의 시대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80년대 중 후반에 양김이 유명을 달리 했으니 대략 90년대 초반까지 양김의 시대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다음은 승효상, 민현식, 김인철 등을 위시해서 행성된 '4.3그룹'의 시대다. 양김 이후에 많은 건축가들이 나왔지만 그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여기서 (당시의) 기성세대 건축가들에게 반기를 들면서 나타난 (당시의) 젊은 건축가 그룹이 4.3그룹이다. 빈약한 이론적, 실무적 토대 위에 세워진 당시 건축을 혁신시키기위해 서로 모여 각자의 건물을 매섭게 비판하는 모임을 가지기도 했고, 권위있는 이론가(김광현 교수)를 불러다 강의를 듣고 해외 답사를 다녀오기도 하며, 자신들의 작업물을 모아 전시를 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혀나간다. 김수근의 직계 제자라는 정통성과 단단한 이론적 토대, 이전 세대에 비해 완성도 높은 건축물 등을 통해서 그들은 결국 주류가 되었고 한국 건축계를 주도해가게 된다. 이들의 시대는 대략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쯤 까지이다.
그 다음은 조민석, 최문규, 조병수, 김종규, 김준성 등 '해외파'의 시대이다. 이들은 해외 여행이 자유로워지고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국내에서의 건축공부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해외로 떠난 사람들이다. 군사 정권 하에서 시위가 잦았던 당시 학교 상황이 이런 유학을 부채질했던 듯 하다. 하버드, 콜롬비아, AA, MIT 등 말로만 듣던 유명 대학에서 공부하며 당시의 최신 경향, 트렌드를 우리나라로 발빠르게 이식하면서 각광받게 된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해외 상황을 바로 바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접근이 더 먹혔던 것 같다. 여기에 장윤규를 뺐는데, 그가 예외적으로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활동 시기는 거의 비슷해서 이 부류에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이들의 시대는 대략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중반쯤 까지인 듯 하다.
이 다음은 소위 '젊은 건축가들'의 시대이다. 젊은 건축가상은 문체부, 국토부 등에서 일년에 한번 만 45세 미만의 '젊은 건축가'들 3팀 정도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이게 처음에는 크게 반향이 없었는데, 몇 년간 수상자가 모이고 그들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건축가들이 많아지자 권위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 상을 받아야 이름있는 건축가 대열에 합류하는 등용문 내지는 척도가 되어 버렸다. 여기에서 두각을 나타낸 건축가들이 유현준, 김창균, 김동진, 이정훈.. 등이다(이 밖에도 정말 많다). 이 상을 받은 건축가 이외에도 정말 많은 '젊은' 건축가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이전 세대 건축가들이 취급하지 않았던 소규모 근생, 다세대 다가구(빌라) 등의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건축가의 업역을 넓혔다. 이제는 몇 명의 유명 건축가가 이끌어가는 게 아니라, 일단의 '젊은 건축가' 집단이 함께 건축판을 이끌고 가는 느낌이다. 이들의 시대는 201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이다.
대구 미래농원에 대한 리뷰를 쓰려다가 졸지에 한국 근대건축사를 정리하게 되었는데, 서두에 이렇게 길게 글을 쓴 이유가 있다. 이 시대구분은 완전히 칼로 두부 자르듯이 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이 BTS가 주도하는 아이돌의 시대라지만 나훈아가 콘서트를 하면 표 구하기가 어려운 것과 비슷한 것이다. 나훈아의 전성기는 옛날 옛적에 끝났지만 그의 인기는 여전한 것처럼 지금이 젊은 건축가의 시대지만 예전 세대의 건축가들 역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승효상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고, 조민석 장윤규 등등은 아직도 공모전에서 우승하며 꾸준히 좋은 건물을 만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소위 '수준 차이'가 생겼다. 젊은 건축가들은 아까 언급한 조그만 건물을 만들면서 어떻게든 '디자인'된 건물을 만들어 보려고 아등바등 발버둥치는 느낌이고, 그 윗세대 건축가들은 좀 더 규모가 있고 수준 높은 건물을 만들면서 여유있게 고급 건축주들을 상대하는 느낌이다. 이들은 부동산 논리로부터도 자유롭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기 때문에 디자인적인 여지가 훨씬 많다. 당연히 윗세대 건축가들의 건물이 디자인적인 시도도 적극적이고, 재료나 디테일 등 전반적인 수준이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느낌도 최근엔 바뀌는 것이 느껴진다. 젊은 건축가들의 세련된 감각, 트렌드를 읽어내는 기민한 움직임들이 먹히면서 하이엔드 건축주들도 그들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푸하하하 프렌즈'가 BTS 하이브의 건물 프로젝트를 수행한 것, JYA 가 롯데 타임빌라스의 중앙 광장 건물을 디자인 한 것 등이 이러한 상황 변화를 대변하는 사건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중에서 최근에 보았던 SOA의 대구 미래농원 건물은 그러한 사건들 중 하나로 취급될 만하다고 생각했다. 도심지의 소규모 필지에서 다가구 다세대 등 소위 '빌라' 건물을 예쁘게 만드려고 벽돌 쌓기를 고민하던 '젊은 건축가'의 수준을 확실히 뛰어넘는 작품이다. 그 전세대 건축가들의 수준 역시 넘보거나, 혹은 뛰어넘기 시작하면서 선생님들이 독차지했던 '하이엔드' 영역으로 확실히 넘어왔다는 선언 같은 느낌이었다.
SOA는 2015년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다. 그러니 당연히 젊은 건축가의 부류로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사실 상을 받은 이후에도 여러 작품들을 했지만 그다지 치고 나간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2020년에 완공된 통의동의 '브릭 웰(BRICK WELL)' 건물이 소위 '대박'을 터트렸다. 치장벽돌의 가능성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외관과 중앙에 뻥 뚫린 중정의 공간감이 압권이었다. 수많은 사람의 인스타그램에 오르내리며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한다. 이를 계기로 SOA의 몸값도 상당히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내가 말한 '젊은 건축가' 부류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치고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 브릭 웰에 대한 리뷰도 짧게 써본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좋은 말만 쓰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다. 우선 벽돌을 지나치게 치장재 혹은 외피 장식 처럼 사용했다는 점. 가능성을 극단까지 실험해보려고 했다는 점을 알겠지만 벽돌은 본질적으로 그렇게 건식으로, 멋지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장식적으로 사용하는 재료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조금은 지나치게 멋진 건물을 만들기 위한 몸짓이 과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외부로 열린 공간이 많아서 실제 실내에서 쓰는 공간이 거의 없어보였다는 점. 이것은 건축물을 어떤 방식으로 쓰느냐, 건축주가 양해를 해주느냐의 문제이기는 하나 건축물 자체가 큰 파빌리온 처럼 느껴지는 느낌이 있기는 했다. 건축물은 사람이 온전히 차지하고 실내공간을 써야 제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나는 (옛날사람처럼)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soa의 신작, 대구 미래농원은 단연 압도적인 퀄리티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규모도 그렇고, 내외부 공간과 디테일의 수준이 전작 '브릭웰'을 뛰어넘었다. 벌써 인스타그램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올리며 화제를 일으키고 있고, 건축계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고 있다. 나도 처음 보았을 때 '와 이 정도까지 만들어냈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전 세대의 건축가들 작품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아니 그것보다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젊은 건축가가 '싸고 디자인 좀 하는 가성비 좋은 건축가들'이 아닌, 퀄리티와 작품으로도 건축계를 선도해나가겠다는 선언같이 느껴진다.
건축가의 설명을 읽어보면, 기존의 농장으로 활용되던 비교적 넓은 부지를 수목과 전시, 카페가 어우러진 일단의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프로젝트의 골자인 듯 하다. 기존에 있던 오래된 창고와 사택 중에서 살릴 수 있는 건물과 철거할 건물을 고르고, 기존 수목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자리를 신중하게 선정했다. 그리고 장방형의 길쭉한 건물과 타원형의 건물 두 개를 나란히 놓으면서 그 안에 보이드 공간을 만들어 실내 공간과 병치하도록 계획한다. 이것이 주변 수목과 보존된 건물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아마 나무 농장이라는 특수한 조건과 기존 건물을 어떻게 살리고 철거할 것인가,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성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건축가의 고민이었을 듯 하다. 여기에 건축가는 칼라 콘크리트라는, 다소 튈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하였다. 그것도 살구색이라고 부를 법한, 주황색과 핑크색 중간에 있는 독특한 색깔이다. 거기에 타원 같은 평소 건축에 거의 활용되지 않는 조형 어휘까지 들고 나왔다. 여기까지 들으면 '과연 이런 요소들이 수목원의 나무들이랑 잘 어우러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법 하다. 하지만 미래농원의 사진을 보면 그런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다. 주변 나무들과 굉장히 잘 어우러지면서 이국적이면서도 독특한, 멋진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런 것들이 건축가의 노하우이자 디자인 능력이 아닌가 싶다.
건축가는 브릭웰의 원형에 이어 이번에는 타원을 들고 나왔다. 사실 타원이라는 어휘 자체가 건축에서는 잘 보지 못하던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과감하게 보이드로 뚫는 시도는 치열하게 용적률을 따지는 도심지에서는 거의 보지 못하는 것이다(브릭 웰에서는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무척 멋지게 나왔다. 그것이 타원형 담장으로 이어지는 전시동에서도 상당히 잘 어울리는 어휘가 되었다. 지속적으로 원이나 타원 등을 다루면서 다듬어왔던 건축가의 능력이 드러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원이 되었든, 타원이 되었든 노출콘크리트가 되었든 시도해볼만한 아이템은 여러가지가 있다. 하지만 아무나 그걸 쓴다고 좋은 것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여러 번의 프로젝트와 시도, 연습 등이 쌓이고 쌓여서 프로젝트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만 비로소 많은 사람이 보기에 좋은 건축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건축을 시작한 학부생이 자기 작품에 원을 넣는다고 자연스럽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건축학도들 뿐만 아니라 기성 건축가들의 어휘에서도 어색한 부분을 자주 보곤 한다. 그런 측면에서 soa는 자신들의 건축 어휘를 어떤 프로젝트에서도 자연스럽게, 높은 퀄리티로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생각된다.
그 다음에 눈에 띄는 건 노출콘크리트로 섬세하게 처리한 입면이다. 마치 미술 조각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인데, 두꺼운 콘크리트 벽체의 깊이감을 살리면서 90도 비튼 기둥의 조형감, 테이블을 매단 듯한 차양 설계 등이 어우러져서 상당히 디테일하고 섬세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이 파사드를 디자인하고 실제로 구축해내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이 들어갔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깊이감 있는 입면 구성과 담장에 뚫린 삼각형 개구부 등은 루이스 칸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한다.
난 칭찬만 하고 글을 끝내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이야기해 보겠다. 우선 역시 실내공간이 많이 없는, 외부 공간만 부각된 느낌의 건물이라는 것이다. 전작 브릭웰처럼 마치 큰 파빌리온처럼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실내 인테리어 처리도 외부와 비슷하게 노출콘으로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아마 전체 건물 규모에 비해 실제 사용할 실내 공간은 꽤 좁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것은 이러한 바람이 통하는 외부공간의 스펙터클을 보여주기 위해 희생한 부분일 수도 있다.
두 번째는 노출콘크리트라는 재료의 본질적인 단점이다. 이 건물은 마치 모든 내외부 마감이 노출콘크리트인것처럼 마무리되었다. 아마 일반인이 보기에도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이 노출콘크리트가 과연 한국의 날씨와 맞는 것인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 있다. 거주공간이라면 난방효율과 결로 방지를 위해서 필수적으로 단열을 해야하고, 중요성은 약간 떨어지지만 이것은 기타 용도에서도 마찬가지다. 노출콘크리트라면 바깥쪽에서 단열을 할 수 없으니 안쪽에서 해야 하고, 그것도 싫다면 콘크리트 중간에 심는 '중단열'이라는 묘기에 가까운 시공을 해야 한다.
이 건물에는 어떤 방식으로 단열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노출콘이니 내단열을 했을 수도 있고, 벽체가 저리 두꺼운 걸 보니 중단열을 했을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그런 단열 - 마감 처리를 마치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애쓴 흔적이 많이 보인다. 도장을 콘크리트와 동일한 색으로 했을 수도 있고, 도면을 보니 옥상 천장 부분은 단열재를 지붕 위로 올린 것 같다.
이 건물은 아마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울 것이다. 노출콘 건물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물 안새고 안 추운' 것이 건축물의 기본적인 의무라면 비판의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으로서의 건축과 '실제로 쓰는 건물'로서의 건축의 간격을 메우는 것이 능력있는 건축가의 할 일이라고 본다.
이제 더 이상 '젊은 건축가'를 '낮은 설계비로 비교적 좋은 디자인의 건물을 만드는 가성비 좋은 건축가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 싶다. 젊은 건축가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올라가 상향 평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젊은 건축가상 심사과정과 수상자들만 보아도 그걸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예전 수상자들의 수준으로는 감히 수상을 노리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에 따라 '젊은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수준차이가 벌어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나 역시 그 안에서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 끝없이 고민하고 있다.
척박한 건축 환경 속에서 또다시 역작을 만들어낸 soa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제는 젊은 건축가들을 리드하는 건축가로서 확실히 자리잡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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