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310호 백자 달항아리. 상당히 삐뚤어져 보인다. 이게 정상이다. 달항아리는 어색해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https://namu.wiki/w/%EB%B0%B1%EC%9E%90%20%EB%8B%AC%ED%95%AD%EC%95%84%EB%A6%AC?from=%EB%8B%AC%ED%95%AD%EC%95%84%EB%A6%AC
예전 글에서도 썼고, 최근에 내가 출간한 책에서도 내 건축의 '원형'에 대해서 몇 가지 레퍼런스를 동원했다. 달항아리, 종묘, 추사체.. 같은 것들이었다. 공통적으로 한국의 것이라는 특징이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내 문화적 근본은 한국이기 때문에 여기서 출발해야 하고 그 근본을 가지고 내 것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이것들을 뽑은 것 같다. 무심한 듯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높은 미학적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이것들을 레퍼런스라고 생각하고, 글도 쓰고 했지만 이것들에 대해서 내가 과연 잘 알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들 말고도 소위 한국적인 오브제들은 정말 많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한국적 오브제'에 대해서 나름대로 탐구하고 알아보는 글들을 써보기로 했다.
사실 난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지 미술이나 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미술 쪽에 그다지 관심도 없고, 전시회 같은 걸 자주 찾아다니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래서 내 글이 다소 유치할 수도 있고, 수준이 좀 낮을 수도 있다. 그런 점들을 감안해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다.
달항아리의 기본적인 사항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조선 후기, 17세기 말엽부터 18세기 중반(숙종 ~ 영조) 쯤에 만들어진 조선백자를 일컫는 말로이다. 커다란 백자 항아리 양식으로, 조선 시대 백자의 특징인 온화한 백색과 유려한 곡선, 넉넉하고 꾸밈없는 형태를 고루 갖추어진 항아리로 인정받는다. 매력적인 볼륨감과 질감, 형태, 공간감을 가졌기 때문에 국외에서도 달항아리를 주로 찾는 도예가들이 보이곤 한다(나무위키).
https://namu.wiki/w/%EB%B0%B1%EC%9E%90%20%EB%8B%AC%ED%95%AD%EC%95%84%EB%A6%AC
달항아리는 원래 백자대호(白磁大壺)라고 불렸다. 일제강점기에는 둥근 항아리라 하여 원호(圓壺)라고도 일컬어졌다. 낭만적인 현재의 이름이 붙은 것은 한국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미술사학자 고유섭(1905-1944)과 화가 김환기(1913-1974)의 의 영향이 크다. 남다른 백자 애호가였던 김환기는 “글을 쓰다가 막히면 옆에 놓아둔 크고 잘생긴 백자 항아리 궁둥이를 만지면 글이 저절로 풀린다”(수필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고 했다. 그와 교우하던 혜곡 최순우(1916~1984)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의 ‘백자 달항아리’ 편에서 “폭넓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는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썼다(중앙일보 기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10970#home
https://www.youtube.com/watch?v=R2W43AtYmxA
관련 유투브 동영상.
보물 제1437호 백자 달항아리.
달항아리는 하나의 작품을 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17~18세기 조선에서 백자 형식으로 만들어진, 장식과 무늬가 없는 곡선 형상의 항아리를 통칭하여 '달항아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원래 이 달항아리는 조선이 어려운 시절에 만들어졌다. 병자호란, 임진왜란 등 큰 전쟁으로 나라 살림이 어려워지고 도예가들도 죽거나 끌려가면서 도자기 만드는 일도 어려워졌다. 그래서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는 항아리 형태가 유행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달항아리의 원형이 되었다. 달항아리를 자세히 보면 완벽한 대칭 형태가 아니다. 어딘지 모르게 삐뚤어져 있고, 어색해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위 아래를 따로 만들어서 맞붙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두 개의 그릇을 위 아래로 포개 만든 것이다. 그러다보니 맞붙은 자리도 어색해지고, 심지어 유약이 흘러내린 자국이 있는 경우도 있다. 전쟁 이후 나라 살림이 나아지자 달항아리는 점점 사람들이 찾지 않게 되었고, 화려한 색상과 장식이 있는 청화백자 같은 도자기들이 유행하게 되었다.
사실 이 항아리의 이름이 원래 '달항아리'였던 건 아니다. 그저 백자 항아리, 백항 등의 평범한 이름으로 불리던 것인데, '달항아리'라는 낭만적이고도 멋진 이름을 붙인 건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였다. 김환기는 휘엉청 떠오르는 보름달을 닮았다고 해서 이 항아리에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붙였고 돈이 생길 때마다 사모았다고 한다. 작품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한다. 달항아리가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김환기의 공이 매우 크다. 달항아리가 그렇게 다시 각광받게 되면서 최근까지도 광주, 이촌의 도예촌에서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엔 BTS 멤버까지 달항아리를 구입했다고 할 정도로 젊은 층에게도 유행을 타고 있다.
'달항아리'는 건축가들이 정말 자주 동원하는 레퍼런스다. 조병수도 그랬고, 데이비드 치퍼필드도 아모레 퍼시픽 사옥을 설계할 때 달항아리를 언급했다. 아마 무심한 듯 세련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매력 때문에 달항아리를 언급했으리라 본다. 말로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무기교의 기교'라고 했던가. 분명 화려한 장식이나 색채는 전혀 없지만, 거기서 오는 다른 차원, 높은 수준의 고결한 아름다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건축에서도 그렇게 장식과 기교, 잡다한 디테일을 배제하고 순수하고 정돈된 메스 형태, 꾸밈없는 질감 등으로 승부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이번 글을 쓰기 전에 달항아리 이미지를 찾으면서 '왜 이렇게 다 삐뚤어졌지. 대칭으로 잘 나온 사진은 없나'라고 생각하면서 찾았던 적이 있다. 이런 저런 달항아리에 대한 자료를 찾으면서 달항아리가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렇게 삐뚤어지고 어색한 것이 달항아리의 본성, 본질임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똑바른' 사진만 찾았던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큰 기술이 없어도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이 달항아리이고 거기서 고유의 아름다움이 나오는 것인데, 이미 고정된 세속적인 기준으로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재단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달항아리는 전쟁의 고단함 속에서 어떻게든 생필품을 만들겠다는 의지 속에서 나온 산물이다. 하지만, 그러한 조건이 오히려 소박하고 검소한, 최근의 언어로 말한다면 심플하고 단정한 아름다움을 갖추게 만들었다. 낮은 기술 수준으로도 만들 수 있도록 위 아래를 따로 만들어서 붙이는 방식 또한 당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궁여지책에 가까웠지만, 오히려 그것이 비정형의 독특한 미감을 만들어내었다. 상황의 역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조선시대를 관통했던 도예가들의 높은 미적 수준이 아니었다면 그런 우연 역시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보 제309호 백자 달항아리. 달항아리 중에서 가장 둥근, 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https://namu.wiki/w/%EB%B0%B1%EC%9E%90%20%EB%8B%AC%ED%95%AD%EC%95%84%EB%A6%AC?from=%EB%8B%AC%ED%95%AD%EC%95%84%EB%A6%AC
무심함 속의 아름다움. 단순한 속의 아름다움. 절제와 소박함의 아름다움... 이 모든 것이 달항아리에 응집되어 있다. 건축에 이런 느낌을 반영한다면 어떤 방식이어야 할까. 구체적인 방법론을 거론하는 것은 구차스럽고, 유치해질 것 같다. 그저 자주 보고, 느껴보고, 생각해보고, 내 안에 축적해갈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은연중에 작업 속에서 발현되기를 바랄 뿐이다.
하나만 언급하고 싶다. 그것은 '절제'다. 설계를 하면 할수록 '절제'가 어려운 것 같다. 남들과는 달라야 하고, 뭔가 다른 얘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뭔가 무리스러운 언어를 쓰게 된다. 형태가 되었든, 재료가 되었든, 디테일이 되었든, 창호 모양이 되었든.. 이런 것들이 모이고 모이면 전체 건물이 억지스러워진다. '그럼 평범해지라는 말이냐'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달항아리를 보라. 달항아리가 대단한 기교를 부렸나? 장식을 했나? 오히려 미숙해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최고의 미적 오브제로서 각광을 받는다. 이것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기교나 장식이 없이도 아름다운 것이 더 높은 수준의 아름다움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내 건축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 이 글과 관련해서 경기대학교 조형예술학과 서영기 교수님 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달항아리를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며, 들이는 노동과 정성이 매우 큰데 제가 쓴 글이 마치 '기술이 별로 없는 사람도 달항아리를 만들 수 있다'는 식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한국의 미학과 달항아리에 대한 어설픈 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쓰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이 생겼습니다. 글을 일부 수정해보려고 했습니다만, 비슷한 뉘앙스가 글 전체에 녹아있어 그렇게 수정하기는 힘들 듯 하여 이렇게 주석을 붙이기로 하였습니다. 달항아리에는 매우 높은 수준의 미적 감각과 기술, 노동력이 들어갑니다. 제 글이 달항아리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점에 대해 사과드리며, 오늘도 달항아리의 정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꼐 감사드립니다.
'건축가의 습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