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개인적으로, 그리고 업무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다. 어떻게든 극복해가야 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지만, 아무튼 무언가 업무 외적으로 여러가지 여가거리 내지는 위안을 주는 것을 찾다 보니 최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건프라, 피규어 같은 것들이다.
약간의 가격대가 있다보니, 그리고 과감성이 아직 좀 떨어져서인지 직접 사지는 못하고 그냥 유투브로 눈팅만 줄창 하고 있다. 그 중에 주로 보는 것은 재룡님이 운영하는 건담홀릭 TV 채널, 그리고 개그맨 이상훈 님이 운영하시는 이상훈 TV 채널이다. 아래 채널들을 소개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쯤 보셔도 좋을 것 같다.
(129) Gundam Holic TV - YouTube
아무튼 오늘 글을 쓰게 된 것은 이 채널들을 소개하려는 것은 아니고, 최근 보게 된 장난감 하나가 준 인상 내지는 영감 때문이다. 최근 키덜트(장난감을 좋아하는 어른들을 뜻하는 용어)에서 한창 핫한 것이 '세븐 체인저'라는 장난감이다. 난 사실 이 제품을 '장난감'이라고 말하기가 참 어색한데, 그 정교함과 완성도가 도저히 '장난감'이라는 용어로 말하기가 민망하고 미안할 지경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엄청난 제품이다.
일단 이 '세븐 체인저'는 우리세대 - 그러니까 80년대생 내지는 90년대 초반 생들에게 아주 익숙한 '전설의 용자 다간'에 나왔던 로보트의 이름이다. 완전히 주역 기체는 아니고, 원래 악당 내지는 적 포지션이었다가 나중에 우리 편으로 바뀌는 역할이었다. 드래곤볼로 치면 피콜로나 베지터 같은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나 역시 이 만화영화를 완전히 정주행하지 못해서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하는데, 아무튼 7개의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것에 굉장히 강한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대충 위의 모습이 에니메이션에서의 모습이다. 물론 이것은 설정화이기 때문에 이대로 완구로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름부터가 '세븐 체인저'다. 무려 7개의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뜻이다. 트레일러, 탱크, 잠수함, 제트기, 그리폰, 재규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반적인 로보트의 모습이다. 여렀을 때는 순진했기 때문에 만화를 제작할 때부터 이런 변신이 가능한지를 모두 검토해보고 그리는 줄 알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만화영화를 제작할 때는 아주 대충 설정화 정도만 그리고 완구 제작팀에 맡겨 버린다고 한다. 그러면 완구 회사에서 이것을 장난감으로 구현하느라 엄청난 고생을 한다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30년 전 장난감들은 그 완성도가 상당히 떨어진 상태였다. 이 '세븐 체인저'도 장난감으로 나왔는데, 어찌 어찌 7개의 변신 형태는 구현했지만 로보트가 그저 '차렷' 자세로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못하는데다 전체적으로 조악한 퀄리티의 제품이었다.
뭐 대충 이런 모습이었다.. 안습 그 자체 ㅠㅠ
30년 전 추억을 간직한 아저씨들이 이제 40대 초 중반이 되었다. 나처럼 사회에서, 가정에서 쌓인 힘듦과 스트레스를 풀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돈도 있겠다 장난감을 살 여력이 되니 이런 아저씨들을 타겟으로 한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최신 만화가 아닌 30년전 만화영화의 완구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순전히 나 같은 '키덜트'들을 노린다는 뜻이다. 40대 아저씨들이 조악한 퀄리티의 장난감에 만족할 리가 없으니, 퀄리티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굿 스마일이라는 일본회사의 '더 합체' 시리즈다. 그 중에 최신작이 이 '세븐체인저'다.
[SUB/JP] 더 합체 세븐 체인저 개발자 리뷰 / Seven Changer review (youtube.com)
위 영상이 이 제품을 디자인한 '갓 브레이브 스튜디오'의 '자연침대' 님께서 제작한 리뷰 영상이다. 디자이너의 입으로 직접 설명하는 리뷰를 볼 수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쯤 보셔도 좋을 듯 하다.
이 제품은 어찌 보면 '경이롭다'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무슨 장난감에 '경이롭다' 정도 씩이나..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7개로 변신하는 제품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피규어 매니아들이 자주 쓰는 용어 중에 '프로포션'이라는 것이 있다. 건축에서도 자주 쓰는 것인데 '비례'를 뜻하는 것이다. 즉, 로보트가 되었을 때 머리 크기, 손발 크기, 덩치 등등 비율이 잘 맞아야 모델처럼 멋있다는 것이다. 물론 로봇 형태만 신경쓴다면 누구든지 멋진 걸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합체 변형 시키려고 하면 엄청나게 난이도가 올라간다.
그 시절 로보트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알 것이다. 로보트는 자고로 합체 그리고 변형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로보트라고 칭할 수 없다. 그 시절 꼬마들은 모두 합체와 변형에 환장을 했다. 그 정도로 합체와 변형은 로보트의 매력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니 로봇 완구의 완성도는 이 합체와 변형을 제대로 구현하면서도 로봇 형태에서 얼마나 프로포션이 좋고 가동성이 좋아서 다양한 포즈를 취할 수 있는지가 완성도, 품질의 척도가 된다. 아무리 프로포션과 가동성이 좋더라도 합체, 변형이 제대로 안되거나 혹은 그 반대더라도 절름받이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세븐 체인저' 완구가 대단한 것은 7개의 변형 형태를 구현하면서도 로보트였을 때의 비율이 매우 훌륭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동성도 뛰어나서 에니메이션에 나왔던 거의 모든 포즈가 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최근의 기술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도 있지만, 디자인 즉 설계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 제품은 물론 일본 제품이지만, 놀랍게도 디자인은 한국인이 맡았다. '갓 브레이브 스튜디오'의 '자연침대'님이 설계를 진행했다고 알려졌는데, 난 비록 동영상으로만 눈팅만 했지만 극도로 정교하고 치밀한 설계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내가 이 분의 영상을 보고 가장 큰 인상을 받은 부분은 영상 말미에 자신이 30년 전에 가지고 놀았던 '세븐 체인저'를 새로 나온 제품과 같이 꺼내놓는 장면이었다. 하도 가지고 놀아서 너덜거리고 일부분이 손상된 장난감.. 본인 스스로도 수없이 변신시키고 가지고 놀아서 너덜거릴 지경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가지고 놀았길래 저런 말을 할까? 아마 자신도 '내가 이 장난감을 리뉴얼 시켜서 다시 새롭게 만들어 내다니'라고 생각하고 감개가 무량해질 것 같다. 영상 말미에 스스로 감격해서 그런 말을 하기도 한다.
완구 디자이너가 30년 전 자신이 가지고 놀던 제품을 자신의 제품과 비교해서 소개하는 장면.
난 이 장면을 보고 꽤나 큰 감동을 받았다. 이 모습이야 말로 '성덕(성공한 덕후)'의 표본이 아닐까? 세상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분야를 놓치지 않고 파고 또 파서,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놀던 그 제품을 리뉴얼시켜 다시 없을 완성도로 만들어낸 것이다.
아마 이 분도 분명히 나와 비슷한 나이대일 것이다. 나 정도 되는 나이대의 사람이 장난감 디자이너라.. 아마 그 길이 분명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 그 누가 장난감 디자이너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을까? 아마 너 나이가 몇이냐, 나이값 해라, 그건 그냥 취미지 돈을 벌려면 다른 걸 해야 한다.. 수많은 말들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장난감, 완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 역수입을 제안할 정도로 실력을 쌓아서 결국 인정받았다. 이 분의 유투브를 가보면 일본인들도 찾아와 대단하다고 찬사를 보내는 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제 '덕후'들도 자신의 분야를 파고 또 파서 성공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그 길은 무척 험난하다. 그러니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를 보내겠다고 고등학교 수학책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난 그런 모습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단 내 자식부터 그렇게 키울 생각이 없다.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추기 보다 이 완구 디자이너처럼 좋아하는 분야를 파고 또 파서 '성공한 덕후'가 되라고 말하고 싶다. 그게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