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 예술마을은 내가 건축을 배우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 디자인을 중시한 혁신적인 여러 건물들을 선보이면서 건축계의 흐름을 선도했었다. 오늘 파주 근방에 새로운 설계공모를 신청하면서 부근의 가볼 만한 건축, 공간을 찾다가 헤이리에 있는 음악감상실 '카메라타'를 찾게 되었다.
2004년 완공된 카메라타는 방송인이자 아나운서인 황인용 선생님이 그동안 모아두었던 각종 LP와 오디오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지금은 한국 최고의 건축가로 손꼽히는 조병수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이다. 건물을 처음 마주하면 희미하게 뒤가 비쳐 보이는 와이어 메쉬 소재를 스크린으로 삼아 두 개의 노출콘크리트 메스가 병치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좌측은 황인용 선생님의 주거공간이고, 우측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완공된 지 20년이라는 꽤 긴 세월이 흘렀지만, 강인한 노출콘크리트와 은은한 메쉬의 물성이 어우러져 강한 아우라를 풍기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메스의 틈새로 나 있는 좁은 입구를 들어서면, 거대한 오디오 시스템을 전면에 두고 있는 높은 층고의 공간에 들어선다. 이 공간에 방문객들이 앉을 수 있는 많은 좌석과 테이블이 있고, 이것들은 모두 스피커를 향해 배치되어 있다. 이 공간의 높이가 상당히 높았는데, 9~10미터 가량의 높이감이 느껴졌다. 전면에 설치된 스피커들은 독일 클랑필름 스피커와 미국 웨스턴일렉트릭 스피커라고 한다. 오디오 애호가들에게는 환상의 스피커라고 불릴 만큼 고가라고 하는데, 비전문가인 나로서는 얼마나 좋은 것인지 그다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이러한 음악 감상실을 방문하는 나의 막귀로도 상당히 좋은 사운드라는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중앙에 있는 클랑필름 스피커는 아예 벽체 안으로 매립되어 일체화되어 있었다. 이 건물은 철거될 때 까지 계속 음악 감상실로 유지되어야 하는 운명을 부여받을 것처럼 느껴졌다. 이 모습을 보고 음악과 오디오에 대한 건축주와 건축가의 애정이 어느정도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스피커 뒤로 1만여 장의 LP판이 비치되어 있는데, 황인용 선생님께서 손수 음악을 고르고 그 음반과 음악 명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보드에 적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건축물의 진수는 이 음악감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벽면의 노출콘크리트와 천장에 매달린 반사판 역할을 하는 거대한 슬라브 판이 절묘한 음향 효과를 완성하고 있었다. 안도 다다오 식의 매끈한 노출콘크리트였다면 아마 음향의 반사가 심해서 음악감상실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노출콘크리트는 표면이 매우 거칠다. 그로 인해 불규칙한 패턴을 만들었고, 음향판과 같은 난반사 효과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천장에 매달린 목재 슬라브는 미송 원목을 하나하나 켜서 맞붙인 디테일로 완성되었다. 이 역시 최적의 잔향 효과를 만들기 위한 디테일이라고 한다.
사운드와 난반사, 잔향 효과 같은 것들은 사실 그것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정확히 캐치하기가 힘들었다. 다만 이 공간에서 음악을 들을 때 일반적인 빈 공간에서 느끼던 반사나 울림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고, 굉장히 좋은 사운드로 음악을 감상하기에 좋은 공간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건물에서 감탄했던 것은 노출콘크리트와 목재, 금속과 같은 각종 소재들의 물성들이 거칠지만 확실하게 살아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들이 굉장히 절묘하게 어울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음악감상실이라는 이 건물의 프로그램에 완전히 적절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사운드의 전달이라는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각종 재료들이 조병수의 근작들보다도 훨씬 야성적이면서도 확실한 질감을 전달하고 있었다. 화장실의 거친 세면대, 합판으로 짜여진 큐비클, 천장에 노출된 pvc 배관까지도 이러한 컨셉 안에 수용되어 충분히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될 정도였다.
두 번째로 철재 와이어를 통해 공중에 매달린 목재 슬라브 판이다. 이것이 주는 긴장감과 묵직한 무게감, 존재감이 대단했다. 방문객들은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가 투명한 아크릴 브릿지를 건너 이 목재 슬라브 판 위를 거닐 수 있다. 여기에도 몇 개의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와이어에 매달려있어서 그런지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이런 곳을 겁내하는 나로서는 오래 서 있기가 좀 힘들었다.
조병수 건축가는 건축재료의 텍스쳐와 물성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고 그것을 조화롭게 잘 다루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건축물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만들기보다 무심하게 툭 던지듯이 만들어 놓지만, 그 재료들이 엮어서 만들어내는 야성적인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비단결같이 매끄러운 노출콘크리트가 아니라 거푸집의 표면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한 거친 노출콘크리트. 매끄럽게 가공되어 곱게 페인트가 칠해진 철판이 아니라 녹이 덧입혀져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철판... 사실 이런 것들이 모이면 자칫 낡고 보기 흉한 건축이 되기 십상이지만, 그의 손길을 거치면 언제나 세련되고 멋진 공간으로 만들어진다. 이런 능력이 조병수 건축가가 가진 특별한 힘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접근과 디자인 방식은 누구나 따라한다고 쉽게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쌓여온 생각과 철학, 실천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멋진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거나 명상에 잠기고 싶은 분, 소위 말하는 '멍때리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딱 좋은 공간이고 건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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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소장 / 건축사
'건축가의 습관' 저자
Architect (K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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