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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군 Mar 08. 2022

노산, 그리고 생명의 신비

#02 산부인과

뉴스에서는 매년 낮아지는 출산율에 대해서 보도하고 인터넷 세상에서도 이러한 출산율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 집값때문이라고도 하고 영유아 정책이 미비해서라고도 말한다. 

실제로 우리 부부 역시 아이에 대한 망설임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집과 육아비용이긴 했으니 이 점에서 사람들의 주제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할 수 있긴 했다. 

하지만 막상 임신 후에 병원을 가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 


평일에는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진료를 주말 일정으로 몰아야 했는데, 이런 나의 고민은 대부분의 직장인 아빠들이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들이다. 토요일 아침에 출근하는 기분으로 부리나케 준비하고 산부인과에 도착해도 이미 주차장은 번잡하고 접수처는 더없이 혼잡하다. 

거기다 예약도 받지 않는 주말이다 보니 일단 아침 일찍 도착한다 하더라도 2시간 정도의 대기는 기본으로 생각해야 한다. 

당연히 주말에 어떤 일정을 계획한다는 건 쉽지 않다. 


첫 산부인과의 진료 후 두 번째 진료에서 드디어 초음파 검사를 시작했다. 

초음파 검사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눈물이 흐르더라는 이야기 외에도 온갖 감동적인 미사여구를 나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쓰던 많은 주변 지인들이 떠올랐다.

과연 나도 이렇게 되는 걸까? 아직은 막연한 감정이고 뚜렷하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감정이 만들어지지 않다 보니 그냥 그렇구나. 아 다들 감동적인가 보네. 와 같은 영혼 없는 머릿속 리액션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초음파 검사에서는 사실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아직 아기집이 만들어지는 과정이고, 아이가 자란다는 느낌보다는 자궁의 건강함을 확인하는 느낌이 더 강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후 산부인과를 방문하며 첫 번째 심장소리를 듣는 순간이 왔다. 

초음파 검사를 시작하기 전에 따로 이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고, 나는 아무런 감정적인 대비 없이 아직 얼굴도 모르는 내 아이의 심장소리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엄청나게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소리에 집중하라는 배려인지 아무런 말 없이 잠시 동안 심장소리가 검사실에 울려 퍼지도록 기다려주었다. 

당시의 나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다만 무언가 마음속의 울컥함이 계속해서 올라오면서 임신 계획을 시작하던 시점에 아내와 나눈 대화가 하나씩 머릿속에서 흘러지나 가며 여러 복잡한 생각이 오가기 시작했다. 

검사실에서 나온 뒤에도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짧은 침묵 끝에 아내를 보면서 어색한 미소를 보여줬다.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온갖 소음이 들려오면서도 메아리처럼 심장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이 여운은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 분주한 준비 시간을 거치면서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아내가 병원에서 나오며 말했다. 

"이제 못 물러. 평생 같이 살아야 해."


산부인과 담당 원장님을 선택할 때 병원의 카탈로그를 보며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다 아내와 나는 서로의 상의 없이 1명씩 원하는 원장님을 골라보기로 했다. 이때 둘이 골랐던 원장님이 동일인이라서 별 문제도 시간 소비도 없이 진료과 선택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의 선택 이유 중 하나는 가장 많은 학회 이력을 가졌다는 점에 있었고, 아내는 어디서 알아냈는지 원장님이 의대 수석 졸업자라고 했다. 


산부인과 원장님과 상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질문했던 것 중 하나가 노산에 대한 것이었는데, 얼마나 위험한지와 우리와 같은 노산 부부가 얼마나 있는지에 대해서 객관적인 정보가 필요했다. 

원장님은 노산에 대해서는 요즘 의학기술이 워낙 발달해 있기 때문에 크게 위험성을 고민하실 필요는 없다고 답변했고, 우리는 재차 질문했다. 우리 또래의 산모가 있나요?라고.

원장님은 짧은 침묵 후에 대답했다. 

"아니요."

물론 원장님은 이후에도 우리가 얼마나 안전한 의료환경 속에 있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했지만 사실 이 시점에서 불안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 이리라.


노산에 대해서 상담 후에 이로 인해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다양한 것들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는데, 가장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았던 것을 꼽아보자면 검사에 대한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노산인 경우 산모의 신체적 부담 외에 태아의 기형아 확률이 큰 폭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필수로 추가 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 부분은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영역이기도 했다. 

덕분에 우리는 임신기간 내 일반적인 젊은 산모보다 더 많은 검사를 했고, NIPT검사까지 마친 후에야 다른 산모와 같이 안심할 수 있었다. 

물론 검사비 수십만 원은 덤. 일해라 정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산부인과의 진료는 대부분 주말에 몰아서 했지만 검사가 필요한 날은 모두 평일 예약이 요구되었다. 부득이하게 연차를 소진해가며 평일 진료를 병행했는데, 이후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산모는 산부인과 진료가 필요한 경우 연차 소진 없이 휴가 사용이 가능하도록 법제화가 되어 있었고 남편은 지원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남편이 산모를 혼자 보내겠는가. 더 일해라 정부.


노산에 대한 걱정을 뒤로하고 점점 아이가 성장하며 초음파에서도 아이의 모습이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애벌레 같았던 모습이 점차 사람처럼 바뀌어가는 모습은 지금 다시 돌이켜 떠올려도 너무나도 생경하고 신기한 경험이었는데, 앞으로도 이런 경험은 둘째(는 계획에 없지만)를 낳기 전에 못하리라 생각한다. 재미있는 점은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계속해서 팔을 들고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입체 초음파 검사를 할 때까지 팔을 안 내려서 제대로 된 얼굴 확인은 끝내 하지 못하고 출산했다. 

병원에서도 드문 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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