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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화위복 Apr 07. 2021

가끔은 소름이 돋는 서태지의 곡들 - (1)

서태지를 그가 데뷔할 때 부터 좋아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시기는 1992년이고, 제가 1988년 생이니 5살 때부터 좋아했네요. 데뷔 때는 그저 TV에 나서 춤추고 노래부르는 세 명의 신나는 모습을 따라하며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입문한 이후, 서태지가 신보를 낼 수록 이전작들에 비해 더욱 강렬해진 사운드와 메시지에 점차 빠져들어 갔습니다. 당시 제대로 학교에 다닌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어린 초딩이었음에도 '교실 이데아'를 듣고, 따라 부르며 이 나라의 교육은 끝났어라며 혀를 찼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서태지라는 종교에 점차 빠져들어갈 때쯤,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1996년 1월 서태지의 은퇴발표 후, 9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웃 여고생 누나들처럼 매우 상심에 빠졌었습니다. 그 때 당시에 서태지는 이미 저에겐 신의 영역이었으며, 그의 은퇴 후 당장 내일이 되면 이 세상이 종말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크게 비뚤어진 이 세상을 누가 바로 잡을 것인지, 서태지를 대체할 새로운 영웅이 등장할 수나 있을지 같은 걱정을 했었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은퇴 발표



하지만, 저는 그저 초딩에 불과했습니다. 몇 년 후, 이수만에 의해 탄생한 서태지의 '완벽한 카피캣'이었던 H.O.T.가 등장하자 그 동안 어떠한 가수에게도 정을 주지 않는 몹쓸병에 걸려있던 저의 마음은 다시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습니다. SES와 핑클이 치열한 라이벌리를 이루고 베이비복스 누나들이 부상하자, 좌초하는 이 세상에 대해 걱정하던 저는, 사실은 세상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000년, 서태지는 국내 무대 정식 컴백을 선언하며 6집을 내놓습니다. 1998년에 이미 5집을 내놓았지만 오프라인 활동이 전무했던지라, 6집이 실질적인 컴백이었던 것이지요. 더욱더 강해진 메탈 사운드 기반의 6집은 당시 초딩 6학년인 제가 듣기엔 너무 난해했습니다. 아니, 그만큼 팬심이 많이 저물었다는 반증이었습니다. 물론 서태지와 H.O.T.의 음반을 모두 구입했지만, 조강지처를 버리는 것과 같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마음 속으로는 H.O.T.를 더 응원했습니다. 그렇게 저에겐 영웅이자 종교의 신이었던 서태지도 서서히 '한 때' 좋아했던 가수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때 부터 난해했....


이후 서태지가 새로운 신보를 낼 때마다 예전같은 열렬함은 사라졌지만 꼭꼭 챙겨들었습니다. 그리고 신보를 듣게되면 꼭 과거에 냈던 음반들을 다시 일정기간 정주행하게 됩니다. 서태지가 앨범을 발매하는 텀인 4~6년 마다 그러한 행위를 반복하게 되는데, 그만큼 저도 앨범 별로 달라진 연령대에 다시 예전곡들을 접하게 되는 것이지요. 7집이 나온 2004년엔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가장 최신 앨범이 나온 2014년엔 27세였습니다. 지금은 비록 신보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34세의 나이에 노래를 찾아듣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듣는 시기별, 연령별로 각 곡마다 느껴지는 감정들이 조금씩 달라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을 때마다 특유의 메시지 때문에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곡들이 몇 개 있습니다. 서태지가 곡을 매우 어린 나이에 만들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그렇게 가끔씩 저를 소름이 돋게 만드는, 서태지가 왜 '그저 인기있던 대중가수 중 한명'이 아니라 '천재', '문화 대통령'이라 불렸는지 알 수 있는 곡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1. 환상속의 그대 - 서태지 1집 수록곡(1992, 당시 만 20세)



세상은 Yo 빨리 돌아가고 있다
시간은 그대를 위해 멈추어 기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대의 머리위로 뛰어다니고
그대는 방 한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한다

환상속에 그대가 있다
모든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속엔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세상은 빨리 돌아가는데, 방구석에서 환상속에 빠져 현재의 초라한 모습을 진짜가 아니라고 자기 위로하지 말고 어서 빨리 밖으로 나가 도전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방구석 여포' 청자에게 팩트폭격을 하는 가사일 수도 있으나, 당시 서태지 본인의 자조적인 가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서태지는 음악인의 길을 걷기 위해 고교를 중퇴하고 전설의 메탈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로 가입했지만, 다시 중도에 탈퇴한 후 댄스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학교까지 중퇴해가며 걸으려 했던 록음악 커리어를 전혀 다른 장르로 전환하는 것, 그리고 홀로 방안에서 고독한 음반작업을 하는 일은 제 아무리 자유분방한 서태지였어도 쉽지 않은 생활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곡은 본인을 채찍질하는 마음으로 만든 곡일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정말 직설적으로 '방구석 여포'들을 비판하는 곡으로 해석해도, 그 또한 꽤나 의미심장한 메시지입니다.



2. 발해를 꿈꾸며 - 서태지 3집 수록곡(1994, 당시 만 22세)



진정 나에겐 단한가지 내가 소망하는게 있어
갈려진 땅의 친구들을 언제쯤 볼수가 있을까
망설일 시간에 우리를 잃어요
언젠가 나의 작은 땅에 경계선이 사라지는 날
많은 사람이 마음속에 희망들을 가득 담겠지
난 지금 평화와 사랑을 바래요


2집 '하여가'에서도 메탈적인 요소를 많이 녹아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때까지 서태지는 10대들 위주의 인기를 끄는 '아이돌'적 면모가 더 강했습니다. 3집 타이틀 곡인 이 '발해를 꿈꾸며'는 당시엔 파격적으로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곡이자, 서태지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대해 본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첫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과 만 22세에 통일을 염원하는 자작곡을 타이틀 곡으로 제작한 것도 놀랍지만, 이후 사전심의제도(신곡에 문제가 될 만한 요소가 있는지 사전 검사를 받는 제도)에 강력한 항의를 하며 제도 철폐 여론을 이끌어낸 행보들을 보면 서태지가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한 것이 불과 '신곡 이슈 몰이' 정도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교실 이데아 - 서태지 3집 수록곡(1994, 당시 만 22세)


2016년 BTS의 커버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들어가면
고등학교를 지나 우릴 포장센터로 넘겨
겉보기좋은 널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
이젠 생각해봐 "대학" 본 얼굴은 가린체 근엄한 척
할 시대가 지나버린건 좀 더 솔직해봐 넌 알수 있어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3집 수록곡이지만, 27년이 넘은 지금에도 서태지의 주요 대표곡 중 하나가 된 '교실 이데아' 입니다. 27년이나 지났지만, 교육 환경은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제조업 기반의 고속 성장을 거치며, 값싸고 질 좋은 '대졸자'들을 마꾸 뽑아내는 것이 국가 발전의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부작용으로 청소년들의 삶의 질은 처참해졌습니다. 그 나이때만 쌓을 수 있는 이성 간 감정도, 스포츠맨쉽도, 즐거운 추억도, 가족들과의 시간도 모두 희생해 가며 대학 입시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아이 한 명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부모들의 희생 또한 눈물 겹습니다. 물론 타고난 학습력이 뛰어나고, 공부에 대한 자발적인 열의가 충만한 학생들은 세계 어디에서든 그러한 노력을 할 것 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보통의' 학생들도 그러한 혹독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렇게 노력한 결과 일정 수준의 허들을 넘지 못하면, 사회적 낙오자로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최대의 문제인 '저출산'도 이와 절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젊은 사람들이 내 자식도 그렇게 키울 생각을 하면 막막해 지니까요.



이런 문제에 서태지는 '바뀌길 바라지 말고, 너 부터 바뀌어봐' 라며 젊은이들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도권 교육을 그만두고, 가수로 데뷔해서 성공한, 즉 전형적으로 '먼저 성공한' 사람의 공감되지 않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 생활 뿐만이 아니라, 사회인이 되어서도 가끔은 조직 내에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걸어야 할 순간이 찾아오는 데, 그 때마다 종종 저 가사가 떠오릅니다. 내 인생은 회사나 가족이 아닌 내 스스로 선택해야 해야하며, 고민만 하다간 젊은 날은 빠르게 지나가기 마련이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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