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시대유감 - 서태지 4집 수록곡(1995, 당시 만 23세)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숱한 가식속에서 (오늘은 아우성을 들을수 있어)
왜 기다려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것 같네
4집 음반 발매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제도로 인해 베일에 감춰져 있던 가사가, 서태지 은퇴 선언 후 공개 되었습니다. 사실 '시대유감'의 가사가 처음 공개 되었을 때의 개인적인 소감은 '딱히 문제될 부분이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필승'에서 처럼 '널 죽인다'라는 가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딱히 과격한 욕설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요. 멜로디는 신나고 사운드는 경쾌했던 점도 가사를 가볍게 느끼도록 하는 데 한 몫 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의 너무 어렸던 나이에는 그저 서태지가 은퇴해서 쓸쓸한 마당에, 더 이상 못들을지 모르는 '서태지표 신나는 곡' 하나가 추가되었다는 점이 좋았을 뿐이었습니다.
최근들어 우리나라에서 90년대에 대한 이미지는, 뉴트로 유행으로 인해 화려했던 문화 전성기 정도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 많은 국민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을 통해 외형적으로만 고속 성장을 해온 부작용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던 시기였습니다. 2021년 현재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었습니다. 1994년엔 멀쩡하던 한강 다리(성수대교)가 무너졌습니다. 당시 성수대교가 붕괴한 후 전면적인 재점검을 실시하자, 당산철교도 조금만 늦었다면 붕괴가 임박한 상태였다는 점이 더욱 큰 충격이었습니다. 출퇴근시간에 그 혼잡한 2호선 전동차가 교량을 횡단하고 있을 때, 그러한 일이 벌어졌다면 그 피해는 성수대교 붕괴보다 훨씬 컸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성수대교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1년 후, 이번엔 대한민국 최고 부촌의 으리으리했던 백화점이 주저 앉았습니다. 가난의 시기를 넘어 경제발전의 상징이라 믿었던 건축물들이 대참사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불과 2년 후엔 이 모든 사건들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사건인 'IMF 외환위기'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기득권층은 책임회피에 급급합니다. 붕괴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건설 시공사들은 여론이 절벽에 몰릴때까지 부실시공을 끝끝내 부정했었습니다. 무려 국정 교과서에서 IMF의 주요 원인을 '국민들의 사치와 과소비로 인한 외화 유출'로 가르칩니다. 전국 곳곳에서 국민들의 희생이 동반된 비극들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가사가 이를 조금이라도 연상 시키거나, 높으신 분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금지곡'이 되는 세상입니다. 이 '금지곡' 시대유감은, 그러한 세상에 23세의 서태지가 던지는 통쾌한 조롱의 메시지 였습니다.
5. Take Two - 서태지 5집 수록곡(1998, 당시 만 26세)
깡통같은 자식들
내가 아무래도
그렇게 멍청할 것 같냐 내
마이크에 누가 껌을 붙여놨어
진짜 좀 더럽게 좀 굴지마
너의 맘대로 살아가도 돼
상관없어 그대로 썩어가도 널 누가
왜 너는 그냥 맞기만해 왜 왜
그냥 멋대로 돼
서태지가 은퇴를 선언하고 약 2년 만에 발매한 5집 앨범 수록곡입니다. 서태지의 1집과 2집은 그야말로 재기발랄함으로 가득찬 앨범이었습니다. 락커에서 댄스가수로서의 도박적인 변신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성공을 가져다 주었고, 서태지는 처음 두 앨범에서 그 결실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2집 '하여가'는 서태지를 10대들만의 가수에서 본격적인 국민가수로 만들어 주었고, 이런 폭발적인 인기로 인해 서태지는 비로소 자신이 하고싶은 음악과,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는 자신감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3집 앨범은 서태지 음악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됩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귀여움을 받던 서태지는 3집 앨범을 통해 '문제아'로 낙인 찍히게 됩니다. 서태지를 좋아하는 팬층과 대중간의 괴리가 생기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었으며, 락 팬들에겐 '락을 배신했다가 유명해지니 다시 락으로 돈 벌려는 놈'이 되었고, 높으신 분들과 종교인들에겐 '피가 모자라' 역재생 사건으로 '사탄의 재림'으로 취급을 받았지요. 방송국에선 가사를 수정하라는 지시를 거부하는 '건방진 놈' 취급을 받습니다. 이후 발표하는 곡마다 '표절 시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심지어 '더 이상 서태지의 음악은 신선하지 않아. 외국에도 다 있는 장르야' 식으로도 비판을 받았어야만 했지요. 스스로가 자칭한 적도 없는 '새로운 장르의 선구자'라는 타이틀을 달아준 것도 언론이었는데, 그를 일거에 부정한 것도 언론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서태지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이 논란과 안주거리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 '문화 대통령'으로 불렸지만, 서태지는 이제서야 약관을 겨우 넘은 어린 청년이기도 했습니다. 4집 활동 시점엔 대중과 매체로 부터의 피로감이 서태지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을 것이고, 이는 이른 은퇴로 이어지게 되지요. 긴 휴식기를 마치고 5집 앨범을 제작하던 시기에도 이러한 서태지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은 듯 보였으며, 그렇게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에서 나온 곡이 이 Take Two라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과 유튜브라는 인터넷 매체의 혁명이 아직 일어나지 않아 방송국의 파워가 아직도 막강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신인 가수가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선 TV 출연이 유일하던 시절이었으며, 톱 가수들도 방송국의 영향력 아래선 결코 자유로울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무려 그런 시절에 자신에게 더 이상 뒤가 없을 지도 모르는 정면돌파로 방송 매체들에 대한 '따끔한 일갈'을 택했다는 점에서, 그 패기가 참 서태지스럽다라는 점이 이 곡의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6. 인터넷 전쟁 - 서태지 6집 수록곡(2000, 당시 만 28세)
같지 않았던 잡설이 판치는 곳
누구나 맘껏 짖어 댄 곳
그 작던 상식에 나불대는 넌
서툰 상처만 드러냈고
상대 그 녀석이 맘을 다치던
무식한 넌 따로 지껄이고
덜 떨어진 네 값어치 애석하지만 넌
좀 작작해
바이러스 끝없이 맞서는 백신
온 세상 지천에 널린
어덜트 갤러리 감춘 칼날이
어린 우리 아이 머리 속을 홀린
아동학대 자학변태
소녀들을 노리는 네 추태
천태만상의 실태
공교롭게도 가사가 발매 당시보다 지금 시점에서 더 크게 와닿는 곡입니다. 발매 시점인 2000년과는 달리,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이제 더 이상 인터넷은 집에 귀가 후 잠시 접속하고 놀다가 끝내는 곳이 아닌, 24시간 내내 '접속 상태'에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도 점차 커졌습니다. 지나친 악플로 유명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포털 사이트 연예와 스포츠란에 댓글 기능이 사라졌습니다. 인터넷 여론의 파워가 강해져 세대 갈등, 성별 갈등, 정치적 성향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지요. 작년에는 대중들을 경악케한 미성년자 대상의 성범죄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이 곡이 발매된 2000년은 가정에 초고속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던 시절입니다. 그 동안 느린 속도와 비싼 전화비로 인해 진입 장벽이 꽤나 높았던 인터넷을 이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찾아옵니다. PC통신보다 훨씬 자유도가 높은 환경과 특유의 익명성 때문에 인터넷 세상은 태동과 동시에 급속도로 혼란에 빠지게 되지요. 희박한 저작권 개념으로 불법 복제 자료들이 범람하였습니다. 미성년자도 쉽게 접속 가능한 사이트에도 성인물들의 공유가 난무하였습니다. 사이트와 주제를 막론하고 게시판은 매일같이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동반한 싸움이 벌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이 곡은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상의 여러 문제들의 심각성을 느끼기 전, 즉 인터넷 상의 문제들이 본격적인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한 바로 그 시점에, 여러 천태만상을 노래 가사로 활용했다는 점이 참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그 선견지명은 신의 한수가 되어, 21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가사의 곡으로 남게 되었지요. 물론 전주의 전화선 모뎀 접속음은 예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