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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화위복 Apr 28. 2021

[책이야기] 메트로폴리스

도시의 역사로 바라보는 방대한 인류 문명사



1990년대 서울의 인구는 이미 1,000만을 넘어 절정을 향해 치솟고 있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이러한 현상을 '이촌향도'라는 단어로 배웠습니다. 교과서에선 인구가 도시로 몰리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으로 여겨졌습니다. 인구의 밀집은 교통 체증, 환경 오염, 높은 범죄율, 실업, 거주민 간의 갈등 등 여러가지 도시 문제를 발생시키는 주범이며, 지방으로의 인구 분산은 우리나라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였습니다. 정부는 90년대부터 시작된 신도시 개발사업을 통해 서울 주변에 대규모 택지를 공급하여, 서울의 인구를 분산시킬 계획이며, 장기적인 미래엔 서울의 인구는 꾸준히 감소할 것으로 예측한다고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 약 30년이 지난 지금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1,000만이 넘던 서울의 인구는 약 960만으로 소폭 하락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행정 수도로서, 경제, 문화, 사회, 교육의 최대 중심지로서의 서울의 위치는 예전보다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감소한 인구수조차 대부분이 지방으로 이주가 아닌 인접 수도권 택지로의 이주로 발생한 수치이며, 이들은 이주 후에도 여전히 서울에 생활권을 두고 매일같이 왕래하고 있습니다. 늘어난 유동인구로 서울의 도로, 대중교통, 철도망이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확충 되었지만, 그 혼잡도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시기동안 지방자치제 시행으로 인해 지방 도시도 발전을 거듭했지만, 서울의 발전 속도에 결코 미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서울과 지방 간의 격차는 줄어들기는 커녕 지금 현재도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동탄 신도시



서울의 '교외'로서 수도권 신도시들은 초기엔 서울의 베드타운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그러나 비수도권에서 서울 생활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점차 이 곳들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결국 2021년 현재 경기, 인천 등을 포함한 수도권의 인구수가 비수도권 전체 인구수를 능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몰려든 인구로 인해 몇몇 베드타운들은 나름의 중심지와 업무지구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즉, 이제는 서울의 인구를 분산하기 위해 건설한 수도권이 서울과 함께 대중교통으로 연결된 다수의 중심지와 주거지역들을 포함하는 '거대 광역권'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2021년 수도권 전철 노선도





앞서 말씀 드렸듯이,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몰려 살다보면 각종 도시 문제에 직면하기 마련입니다. 과거엔 급격히 늘어나는 인구와 이로인해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감당하지 못하여 서양권에선 도시를 '죄악'으로 여기는 문화도 있었음을 작가는 언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도시에서의 생활을 좀처럼 포기하지 않습니다. 은퇴한 직장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유유자적한 삶을 즐긴다는, '귀농(歸農)'도 이제는 지나간 트렌드가 되었을 정도이지요. 그만큼 도시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류의 도시는 마치 생물체처럼 진화를 거듭하면서, 직면했던 수 많은 문제들을 극복해왔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책에서 말합니다. 도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가까운 거리에 밀집하 서로 교류하며 생활합니다. 비위생적이며 무분별한 좁은 공간에 밀집해서 사는 모습은 일견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곳은 새로운 창의력의 원천이 됩니다. 문화적으로 본다면 마치 우리나라에서 '힙'하다는 장소들이 성수동, 을지로, 망원동과 같은 낙후된 장소에서 젊은 창업가들의 창의력으로 탄생하기 시작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일 것입니다. 세계 최고 주류 음악 장르가 된 힙합도 뉴욕 브롱스 빈민가에서 시작된 점도 이와 마찬가지 입니다. 이렇게 좁은 곳에서 몰려사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어 각종 도시 문제를 해결하면서 도시의 삶의 질은 더욱 개선됩니다. 이런 도시의 순기능으로 인해 일반적인 도시들이 아닌, 역사적으로 큰 역할을 담당했던 도시들에선 단순히 해당 도시 삶의 개선을 넘어 인류 문명의 진보를 이룩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철저한 남성 중심의 신분사회였던 아테네에서 예외적으로 '아고라' 광장에서는, 신분의 고하나 성별, 국적에 상관없이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분위기였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매료된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그리스 각지의 철학자, 역사학자, 과학자, 웅변가 등이 한데 모였으며, 이들 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아테네는 서양 기초 학문의 성지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대항해시대에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박해를 당한 유대인들이 정착한 이래 급속도로 무역 도시화가 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그 어떤 도시보다 이주민들에게 개방적인 문화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반체제인사, 자유사상가, 기업가 등이 이 도시에 매력을 느껴, 이 곳은 지금의 실리콘밸리처럼 온갖 혁신적인 사상의 근원지가 되었지요. '돈벌이에 방해가 되는 것은 뭐든 없앨 수 있다'라는 도시의 기풍아래 1602년, '실물'을 팔지 않아도 돈을 벌수 있는 증권거래소가 탄생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에도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는 공매도와 같은 투기 기법들도 성행했다고 하네요.



이처럼 이 책은 인류 최초의 도시 우르크부터, 21세기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있는 라고스까지 주요도시 14개(짧게 언급된 도시들까지 합하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도시들의 흥망성쇠에 따른 인류 문명 발전사에 대해 쓰인 책입니다. 현대 사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의 삶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제 도시란 공기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워 쉽게 그 중요성을 인식하기 힘든 존재가 되버렸습니다. 공기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듯이 도시밖에서의 삶 자체가 상상하기 어렵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 생활에 깊게 스며들어, 삶의 일부분이 된 도시에 대해서, 그리고 그 도시의 발전에 따른 인류 문명사 발전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에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쯤은 읽어볼만한 좋은 책이라 추천합니다.



물론 약 7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이 다소 읽기 힘들 수도 있으며, 작가가 중간에 워낙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기 때문에 독자에 따라선 집중이 잘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대함과 책 곳곳에서 묻어나오는 작가의 열정적인 취재 덕분에 이 책을 통해서 왜 다른 곳도 아닌 하필 특정 지역에서 도시가 발생을 했는지, 그렇게 발생한 도시가 다른 도시들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고 많은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특정 도시가 다른 도시들과 다른 형태로 개발된 이유는 무엇인지, 그토록 발전하고 흥했던 도시들이 왜 지금은 겨우 형태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소멸했는지, 그럼에도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시로 모이고 싶어하는 지 등 도시와 관련되어 그 동안 쌓여온 다양한 궁금증에 대해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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