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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화위복 Oct 09. 2021

[도시이야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살면서 이사를 많이 다닌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젊을 때는 한 곳에 토박이로 정착하는 것보다 여기저기 다양한 곳에서 거주해 보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사를 자주 다녀볼 예정입니다. 따라서 여태까지 살아왔던 도시들에 대한 느낌들을 기록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는 저의 고향이자 20년이 넘게 살았던 곳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입니다.





위치는 인천광역시 정중앙에 위치하여 계양구를 제외하고는 인천시의 모든 구와 맞닿아 있습니다. 타지의 많은 사람들이 인천하면 떠오르는 스팟은 1) 월미도로 대표되는 바닷가, 2) 개항장, 차이나타운 등으로 대표되는 19세기말 도시 풍경, 3) 송도, 청라 등으로 대표되는 국제 도시의 모습일 것입니다. 사실 인천시에서도 이 세 가지를 주구장창 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추홀구는 인천의 정중앙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타지인들에게 인지도는 듣보잡에 가깝습니다.



인천이라는 도시가 현대에 발전한 과정을 살펴보면, '원인천'이라 불리는 항구 주변의 중구와 동구쪽에서 시작하여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서에서 동으로, 내륙쪽으로 급격하게 뻗어나갔습니다. 주요한 발전 축은 역시 교통로입니다. 수도권 지하철 1호선과 지금은 일반도로로 전환되었지만 구 경인 고속도로를 중심축으로 시가지가 뻗어나갔습니다. 이 중심축 주변의 개발이 완료된 이후엔 빈 땅이었던 연수구와 계양구가 90년대 개발되었으며, 원래 바닷가였던 곳을 매립해서 2000년대 이후 송도와 청라 등의 신도시를 건설했지요.



따라서 인천광역시의 특징으로는 자치구별로 전형적인 시대적 도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송도와 청라는 누가봐도 2000년대 이후에 개발된 신도시 입니다. 연수구와 계양구는 1기 신도시 풍의 전형적인 90년대 베드타운 느낌입니다. 지하철 1호선과 경인 고속도로가 관통하는 미추홀구는 80년대 이전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 많습니다. 인천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루트가 지하철 1호선과 경인 고속도로 혹은 미추홀구 관교동의 위치한 인천 터미널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인천의 첫 인상으로 '인천은 낙후된 곳이 참 많다'이라고 느끼는게 바로 이 때문이지요.



위에서 부터 차례대로 미추홀구, 연수구, 송도. 시대별 특징이 매우 뚜렷합니다.



수봉공원은 미추홀구의 허파의 역할을 합니다. 오래전 급격하게 개발된 도시인 만큼 답답할 정도로 녹지가 적은데 미추홀구에서 수봉공원의 존재는 매우 소중합니다. 놀랍게도 예전에는 작은 테마파크가 있었고, 장사도 꽤나 잘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통의 발달로 인해 인천 사람들도 롯데월드나 에버랜드를 찾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쇠퇴의 길을 걷지요. 놀이기구는 싹 철거를 하고, 동네 자체가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시는 만큼 탑골공원의 역할을 충실하게 했습니다. 공원 규모에 비해 찾는 사람이 적어 달리기를 하기 아주 쾌적한 곳입니다. 저 또한 많이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인천시의 경관 조성사업으로 인해 야경 스팟으로 변모함에 따라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최근에는 날씨 좋은 날엔 사람들 때문에 런닝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지요. 동네가 활기를 찾은 것 같아 좋은 기분도 들지만, 저만 알고 즐겼던 공간이 없어진 느낌에 아쉬움도 교차합니다.



인천의 탑골공원에서 인스타 맛집으로 변모한 수봉공원



1호선 제물포역 근처엔 '구 선인재단' 소속 학교들이 위치하여 있습니다. 친일파이자 6.25 전쟁 영웅이라는 양면성을 가진 백선엽 장군의 동생인 백인엽 장군이 1964년에 중국인 공동묘지와 일반 시민들의 집을 강제로 밀어내서 만든 거대한 재단 건물입니다. 중국인 공동묘지 강제 철거로 인해 외교 문제까지 발생했다고 하니, 그의 흉악함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대지 16만평에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무려 총 15개 학교를 보유했다고 합니다. 이후 재단에서 수많은 비리들이 발견되며, 학교들은 1994년에 모두 인천시로 기증되어 시립학교로 전환 되었습니다.  시립으로 전환되었어도 이름은 그대로라 '선인 고등학교', '선화 여중'과 같이 과거 백선엽-백인엽 형제의 이름을 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인천대학교는 추후에 국립으로 전환되어 현재는 송도로 이전하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택시를 탔는데, 호구를 제대로 잡은 택시기사가 신기한 것을 보여준다며 15개 학교를 모두 찍고 목적지에 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근데 당시엔 비싼 돈을 냈지만, 덕분에 좀처럼 갈 일이 없었던 내부를 구석구석 볼 수 있었습니다. 내부를 보기 힘든 것이 다른 사립 재단들과는 다르게, 정말 거대한 땅에 성처럼 지어놔서 외부인들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었거든요.



당시 선인재단 안에는 장충체육관 3배 규모이자 건설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다는 선인 체육관이 있었습니다. 제 기준으로 이 곳에서 가장 역사적인 사건은 다름아닌, 스타크래프트 리그 역사상 최고의 리그로 꼽힌 'So1 스타리그'의 결승전입니다. 오영종이 황제 임요환을 이기고 역사적인 '가을의 전설의 로열로더'가 된 장소가 바로 이 곳 입니다. 물론 저는 당시에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이곳도 흘러가는 세월은 막지 못하였습니다. 인천시는 몇몇 학교들의 이전 등으로 빈 건물들을 철거하고 도시개발을 진행합니다. 거대했던 선인 체육관도 시민들의 구경아래 발파 철거 되었습니다. 현재 이곳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과 앨리웨이 도화를 비롯한 여러 상가건물들, 인천정부지방 합동청사와 같은 행정 타운으로 복합 개발이 완료되었습니다. 지금보면 언제 그 웅장하고 거대했던 체육관이 있었나 싶습니다.



발파 해체되는 선인 체육관



미추홀구는 의외로 프로 스포츠 '부자' 도시 입니다. 인천 시민들은 '문학구장'으로 더 많이 부르는 SSG 랜더스의 홈구장 'SSG랜더스필드'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모두 미추홀구 안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도원 체육관'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중구 이지만, 미추홀구와 경계에 위치하였으며 현재는 WKBL 신한은행이 홈구장으로 사용 중입니다. 따라서 미추홀구엔 스포츠 팬이 정말 많습니다. 중학교 시절 제 친구의 아버님께서 당시 SK 와이번스의 홈 경기 전 경기를 직관 하시는 것을 보고, 저의 미래 롤모델로 삼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친구 어머님께서 문학구장 근처에서 개인 미용실을 운영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은 과거엔 '도원 야구장'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문학 경기장을 짓기 전에 인천 야구단들의 홈구장이었는데, 시설은 그야말로 끔찍했습니다.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냄새가 진동하는 예전 철판 소변기가 그대로 있었던 점입니다. 그래도 인천 야구팬들에겐 문학경기장 건립 전까지 프로야구의 갈증을 해소해준 소중한 추억의 장소 입니다.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지금 이 부지는 2012년에 인천축구전용경기장과 대형마트가 지어졌으며 대형 아파트 단지가 완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도원 야구장에 있었던 모르는 사람과 금방 친해질 수 있는 소변기



인하대학교는 수도권 최서단이라는 다소 애매한(?) 위치 때문에 자취생의 비율이 높습니다. 이 수많은 자취생들은 주로 후문가에 거주를 하기 때문에 이쪽 상권의 물가는 현재에도 말도 안되게 저렴합니다. 왠지 여기에 가면 1,500원 이상 지불하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은 사치를 한 듯한 죄책감이 듭니다. 짜장면은 4,500원에 해결이 가능합니다. 크기는 다소 작을지라도 1인이 먹기엔 절대 적지 않은 치킨 1마리를 9,000원에 먹을 수 있습니다.



서울 성동구처럼 과거엔 외곽으로 간주되어 들어섰던 공장들이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중앙부에 위치하게 되면, 그 공장들은 다시 외곽으로 떠나게 되고 자연스레 다른 시설들로 대체가 됩니다. 인하대학교 정문 쪽도 마찬가지 입니다. SK에너지, 구 동양제철화학(현 OCI), 대우일렉트로닉스 등 대규모 공장들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 어린 기억엔 중앙 도로에는 수인분당선 공사를 한창 진행중이어서, 공장 굴뚝과 공사 현장의 두 가지 모습만 기억에 남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업체들이 점점 공장을 이전하며, 이 곳도 현재는 브랜드 아파트들과 쇼핑 시설들이 들어섰습니다. 몇 개 남지않은 공장들은 주변과 이질적인 모습으로 대조되어 더욱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게 되었고, 월드스타 비가 이러한 분위기를 탐지하여 작년 한 해를 강타한 '깡'의 촬영 장소로 활용하였습니다.



뒤에 초고층 아파트와 오래된 공장의 오묘한 조화를 알아채버린 비



수인분당선 숭의역 근처에도 을지로나 문래동처럼 아직도 소규모 공장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마저도 방문할 때마다 조금씩 사라져감을 느낍니다. 이 곳에는 유명한 전국구 집창촌 '옐로 하우스'가 있었는데, 여기도 현재는 철거되어 브랜드 아파트가 분양 중입니다. 과거의 수인선 지상 철로였던 곳은 공원화되어 녹지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오랜기간 과거의 모습을 유지해온 만큼, 그 어느 곳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는 곳이 미추홀구 입니다. 골목이 많은 동네인 만큼, 제 개인적으로 골목마다 추억들이 많습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되면 그 골목길들은 지도상에서 '삭제'가 되어 버립니다. 이렇게 아파트 단지 위주로 개발이 완료되면, 앞으로 '골목길'이란 개념도 없어지겠구나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도시 개발의 기본 베이스가 되는 지금의 방식이 과연 최선인가, 길과 과거의 흔적들은 최대한 남겨두고 재개발 하는 방법은 도저히 없는 것일까 하는 아쉬움을 느끼며 이 글을 마칩니다.



과거 수인선 지상 철로는 요즘 트렌드에 맞게 공원화가 완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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