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이야기 세 번째 시리즈는 제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약 7년 간 거주했던 '경기도 수원시' 입니다.
수원시는 서울을 기준으로 경기도를 북부와 남부로 구분했을 때, 경기 남부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경기도 군포시, 의왕시, 동쪽으로는 용인시, 서쪽로는 안산시, 남쪽으로는 화성시와 인접해 있습니다. 경기도청의 소재지이자, 경기도 기초자치단체 중 최다 인구(약 118만명)을 자랑하는 명실상부한 경기도의 '최대 도시' 입니다. 수원시의 인구는 무려 '울산광역시(약 112만명)' 보다도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주요 거점들의 개발이 거의 완료된 수원시에 비해 용인시와 화성시가 워낙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탓에 향후에는 무섭도록 성장 중인 용인시와 화성시의 인구가 수원시를 추월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원시가 가지고 있는 '경기도 최대도시'라는 타이틀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화성시의 동탄 신도시나 용인시의 기흥구 등도 수원시의 밀집된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 개발되었기 때문에, 아직도 이 도시들 사이에서 수원시가 중심지로써 가지는 영향력은 적지 않은 편입니다. 이처럼 수원시는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와 더불어 수도권의 한 축을 책임지는 경기도의 주요 거점 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수원시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약 120만에 육박하는 인구 규모가 무색하게 도시의 면적이 '매우 좁다'라는 점입니다. 양 옆에 용인시와 화성시가 워낙 거대한 면적을 자랑해서 상대적으로 더 좁아보이기도 합니다. 앞서 인천광역시 서구 편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수원시의 면적은 인천광역시의 한 개의 구인 서구와 면적이 비슷합니다. 실제로 수원시 최고 서쪽에 해당하는 호매실 동에서 최고 동쪽 영통동까지 교통 체증만 피한다면 오로지 국도 주행만으로 자차 기준 20분 안에 도착이 가능합니다. 안 그래도 좁은 면적에 큼지막한 광교산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10비행전투단이 수원시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화성은 수원 원도심을 넓게 둘러싸고 있는데 이 근처 대부분의 구역이 고도제한에 걸려 있어, 고밀도 개발이 불가한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같은 타향출신 사람이 보기엔 이런 도시에 무려 120만명이 살고 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과밀해서 삶의 질이 떨어진다 하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 것도 큰 특징입니다. 그만큼 좁은 면적을 참 야무지게 잘 개발했다는 느낌을 줍니다.
수원시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삼성전자' 입니다. 삼성전자는 전국에 여러 개의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중 본사가 영통구 매탄동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게다가 반도체 사업장인 기흥 사업장과 화성 사업장도 영통구 망포동 남단에 밀접하여 위치하여 있습니다. 따라서 이 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임직원들도 수원시에 생활반경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도체 사업은 첨단 산업이라는 '편견'이 다소 무색하게끔, 사람 손을 상당히 많이 필요로 하는 사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성전자 기흥, 화성 사업장에는 무려 약 4만 명에 육박하는 임직원들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원시 중에서도 적어도 영통구 만큼은 이 3개의 거대한 삼성전자 사업장에 둘러쌓여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삼성타운'이라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삼성전자의 본사는 강남역 서초사옥이 아니라, 이곳 수원시 매탄동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임직원들은 수원시와 화성시 동탄 신도시에 많이 거주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당수의 임직원들은 배우자의 근무지나 자녀의 교육 상황에 따라 수도권 각지에서 출퇴근을 합니다. 먼 곳에서도 출퇴근이 가능한 배경에는 삼성전자가 운용하고 있는 대규모의 통근버스 체계가 있습니다. 삼성전자 각 사업장의 통근버스 탑승장은 웬만한 시, 군의 버스터미널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아직 마땅한 거처를 마련할 여유자금이 충분하지 않은,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이나 저연차 사원들의 경우에는 회사 근처에서 원룸 혹은 오피스텔을 얻어 생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수인분당선 망포역 뒤편의 원룸촌입니다. 이 곳에선 수많은 원룸과 오피스텔 건물들 그리고 그곳에 거주하는 젊은 삼성전자 사원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저의 입사 동기들도 입사 직후에 이 근방에서 방을 얻어 생활했었습니다. 따라서 망포역 상권은 철저하게 젊은 직원들을 타겟으로 한 음식점, 술집, 카페, 편의점, 미용실, 어학원(삼성에서 요구하는 자격시험 속성 대비용) 등 위주로 발달되어 있습니다.
네이버 로드뷰로 본 망포역 원룸단지. 출근 시간에 이곳에 가면 수많은 삼성전자 직원들이 밖으로 나오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수원시 안에 다른 곳들도 많은데 하필 이곳이 삼성전자 신입사원들의 '집성촌(?)'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상대적으로 저렴한 방값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압도적인 '교통 편의성'이 아닐까 합니다. 매탄동 수원 사업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도보로 출퇴근이 가능합니다. 기흥, 화성 사업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망포역에서 출근 버스 탑승이 가능한데, 놀라운 것은 수원 시내에서 출발하는 거의 모든 출근 버스가 망포역에 정차한 후 영통로를 거쳐 기흥, 화성 사업장으로 진입합니다. 퇴근 시에도 역방향으로 마찬가지이지요. 이것은 수원시에서 기흥, 화성 사업장으로 진입하는 거의 유일한 '큰 길'이기 때문입니다(물론 작은 우회로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아마 도시가 처음 생겼을 때,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이 여러 방향의 진입로가 필요할 정도로 커질 줄 예측하기 못해서 생긴 결과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포역은 거의 2~3분 이내에 한 대씩 출퇴근 버스가 정차하는 '사기적인 배차'를 자랑하게 되었지요. 다른 동네라면 1분 늦어서 버스를 놓치기도 하는 직장인들에겐 이처럼 편한게 없습니다.
아무때나 나가면 출근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망포역. 저도 출근때는 그 시절이 그립읍니다...
게다가 젊은 사원들의 경우엔, 지루하고 길었던 취준생 시절을 이겨내고 돈 벌고 쓰는 재미를 만끽하고자(우스갯소리로 '삼뽕에 취한다'고 말합니다), 입사 이후 여기저기에서 참 많은 모임(혹은 소개팅)을 가지게 됩니다. 가깝게는 수원 시내에서 동기들과 간단하게 모임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망포역 상권 곳곳엔 삼성전자 직원들의 입소문을 탄 오래된 맛집들이 많이 있습니다. 망포역에서 수인분당선을 타고 인천 방향으로 2정거장을 가면 수원시청역에서 내릴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수원시 최고의 젊음의 거리인 인계동 상권이 있습니다. 2정거장을 더 가면 AK몰, 롯데 백화점 등 큼지막한 쇼핑 상권이 있는 수원역에 갈 수 있습니다. 망포역에서 반대편 왕십리 방향으로 1정거장을 가면, 역시 각종 술집과 음식점이 즐비한 영통역으로 갈 수 있습니다. 주말 같은 경우엔 더 위쪽으로 올라가서 서울 각 핫스팟에 진입하거나, 1550-1 광역버스를 타고 바로 강남역으로 가기도 하지요. 출퇴근 편의로 보나, 놀거리로 보나 젊은 사원들에겐 이만한 교통의 요지가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망포역 뒷편에는 소위 '사외 기숙사'라 불릴 정도로 젊은 삼성전자 직원들의 집단 거주 지역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주민 구성원들이 젊고, 퇴근 시간 후엔 워낙 떠들석한 모임들이 많은 탓에(물론 코로나로 예전만 못하기는 합니다) 흡사 대학가와 유사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물론 분위기만 그런 것이지 물가는 대기업 직원들에게 받을 만큼 다 받는 것은 함정입니다. 이처럼 수요가 몰리다 보니 안 좋은 사건들이 종종 발생하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건이 삼성전자 신입사원 수백명이 피해를 본 2019년에 있었던 수백억 원룸 깡통 전세 사기 사건입니다. 이 사건 처럼 뉴스에 나올 만큼 규모가 큰 사건이 아니어도, 제 주변에도 유사한 사건으로 고생한 동료들이 몇몇 있습니다. 따라서 망포역 인근은 어떤 이에겐 신입사원 시절의 불타는 청춘을 보낸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기억하기도 싫은 아픔의 장소로 상반되게 기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전자에 가까운 곳으로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