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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화위복 Jan 10. 2022

[NBA] 클레이 탐슨의 가슴엔 '불꽃'이 있다

오늘 한국 시각으로 오전 10시 30분에 열린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경기에서 워리어스의 슈팅가드 클레이 탐슨(Klay Thompson)이 무려 942일만에 복귀전을 가졌습니다. 942일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강산은 10년이면 변한다고 합니다. 스포츠에선 2년 반이라는 시간은 강산의 10년처럼 한 리그의 판세가 완전히 변할 정도로는 충분한 시간인 듯 합니다. 리그의 스타들 대부분이 클레이 탐슨이 부상당할 당시와 현재 각기 다른 팀에서 뛰고 있는 점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건장한 대한민국 남성이 군대를 한 번 다녀와도 클레이 탐슨은 부상에서 복귀하지 못했을 만큼 정말 긴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클레이 탐슨이 마지막으로 뛴 시점의 선수들의 소속팀. 현재는 모두 새 팀의 유니폼을 입고 있습니다.




클레이 탐슨의 복귀전이 오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전으로 확정되자 미국 현지 중계는 발빠르게 전국 중계방송으로 전환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중계를 맡고 있는 SPOTV에서도 오래 전부터 탐슨의 복귀를 메인 테마로 중계 방송을 예정했습니다. 2022년 올스타전 팬 투표 랭킹에서 올해 한 경기도 뛰지 못한 탐슨은 서부리그 2위팀 피닉스 선즈와 3위팀 유타 재즈의 부동의 에이스들인 데빈 부커와 도노반 미첼보다 더 많은 수를 득표하여 현재 서부리그 가드 부문 4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클레이 탐슨의 위상은 냉정하게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급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슨이 대중들로부터 이런 엄청난 환대를 받는 이유는 소속팀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인기팀인점, 그리고 기나긴 장기 부상을 이겨낸 뒤 복귀라는 극적인 스토리가 큰 요인들로 작용했겠지만, 저는 한 가지를 더해 클레이 탐슨이 가슴 속에 간직한 뜨거운 '불꽃'을 꼽고 싶습니다.




서부리그 가드 특표수에서 4위를 차지하고 있는 클레이 탐슨




작년 12월, 한 인터뷰에서 팀 동료 드레이먼드 그린은 '나는 극단적이고, 미쳤고, 경쟁심이 강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내 생각엔 클레이 탐슨이 나보다 더 심하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발언이 복귀를 앞둔 동료를 띄우기 위한 립서비스가 아니라는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클레이 탐슨이 첫 장기 부상을 입었던 순간을 회상하면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2019년 토론토 랩터스와의 파이널 6차전, 당시 속공 덩크를 시도하던 중 토론토의 수비수 대니 그린(Danny Green)과의 충돌로 인해 잘못된 착지를 하여 탐슨의 왼쪽 무릎이 순간적으로 뒤틀리게 됩니다. 경기 후 탐슨의 부상 진단 결과는 전방십자인대 파열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동료들의 부축을 받고 라커룸으로 들어가던 탐슨은 갑자기 홀로 코트에 다시 복귀하여 자유투 2구를 끝내 성공 시킵니다. 당시 팀내 의료진이 말리지 않았으면 엄청난 고통에도 불구하고 클레이 탐슨은 경기 출전을 강행할 기세였습니다. 십자인대 파열 부상은 종목을 막론하고 운동 선수라면 누구에게나 선수 생활에서 가장 치명적인 부상 중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 뒤 상황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경기를 뛸려는 그의 투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 당한 뒤에 자유투를 던지러 코트로 복귀하는 탐슨




이후 1년여간의 기나긴 재활 끝에 찾아온 것은 어두운 터널의 끝이 아니라, 다시 반복된 악몽이었습니다. 2020년 11월, 새 시즌을 앞두고 팀내 연습경기를 치르는 도중 탐슨의 부상 소식이 갑작스럽게 언론 매체를 통해 번졌습니다. 처음엔 연습경기에서 일어난 일일 뿐더러, 부상 정도가 언론에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벼운 부상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팀 선수들로부터 클레이 탐슨이 큰 부상이 아님을 기원함과 동시에 쾌유를 바라는 트윗들이 달리기 시작하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형성되더니, 결국 이번엔 오른발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을 판정을 선고 받습니다. 왼쪽 전방십자인대 파열에 이어 오른쪽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는, 운동 선수로서 당할 수 있는 최악의 부상을 양쪽 하체에 당했으니 상황은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없었습니다.




심상치 않았던 동료들의 트위터. 결국 아킬레스건 파열을 선고받다.




클레이 탐슨이 빠진 2년 동안 2010년대에 왕조를 구축했던 팀의 성적은 한없이 추락했습니다. 스테픈 커리와 드레이먼드 그린마저 장기 부상으로 결장한 2019-2020시즌에는 15승 50패의 처참한 승률로 리그 전체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주축 선수들과 모두 재계약을 맺으며 샐러리캡 초과로 엄청난 사치세를 부담하고 있는 팀의 사정을 감안하면 더욱 할 말이 없어지는 최악의 성적이었습니다. 팀의 철학상 절대 탱킹 노선을 걷지 않겠다는 말은 그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커리와 그린이 복귀한 2020-2021시즌에는 지난 해와 같은 최악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LA 레이커스와의 플레이인(Play-in) 토너먼트 끝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쓸쓸한 여름을 맞이하게 됩니다. 탐슨의 복귀마저 기약이 없었기 때문에 샐러리캡이 꽉 막힌 골든 스테이트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까지는 앞으로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탐슨 본인이었을 것입니다. 많은 선수들이 장기 부상이 선수들에게 치명적인 이유로 신체적인 타격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타격을 꼽습니다. 운동선수로서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29세~31세 구간을 통째로 날려버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 팀의 패배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체 컨디션, 기약없는 복귀 일정, 반복되고 피로한 재활 과정, 주기적으로 흘러나오는 성공적인 복귀에 대한 대중과 언론의 의심, 대형 부상을 연달아 당하며 부상재발에 대한 두려움 등은 경기에 뛰지 못해 안달난 클레이 탐슨같은 선수들에겐 엄청난 정신력 소모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탐슨이 부상기간 동안 번 돈이 이전 왕조시절보다 더 많이 벌었다는 보도가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존 월, 챈들러 파슨스같은 선수들처럼 먹튀라 비난받아도 딱히 할 말이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기나긴 암흑의 터널 끝에 942일만에 오늘 복귀전을 치른 탐슨은 비록 야투 효율과 경기 감각면에서 아쉬운 면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오픈 상황에서 기계처럼 올라가는 삼점슛, 답답한 공격을 풀어주는 미드레인지 점퍼, 비록 파울이 불리긴 했지만 적극적인 수비로 상대 에이스 다리우스 갈랜드의 슈팅을 클린 블락으로 막아내는 등 모두가 탐슨에게 바랬던 모습들을 모두 보여주며 성공적으로 복귀하는데 성공합니다.




작년 11월 포틀랜드 전 홈경기에서 팀의 대승에도 불구하고 홀로 경기장을 빠져나가지 못한 탐슨




오늘 경기에서 클레이 탐슨의 무표정 속에 숨어있던 '불꽃'이 제대로 나타난 장면으로 2쿼터 3분여를 남기고 꽂은 원핸드 덩크를 꼽고 싶습니다. 덩크 자체가 파워풀하기는 했지만, 탐슨은 끔찍한 두 번의 부상 후 2년 반만에 복귀한 선수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보다 더 상징적인 장면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경기에서 탐슨에게 누구도 허슬이나 궂은 일을 강요하는 코칭 스태프들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대부분 관중들의 심정으로는 오늘 만큼은 제발 무탈하게 몸을 사려줬으면 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몸이 재산인 선수들 대부분도 이러한 경기에서는 최대한 안정적인 플레이에 주력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슨은 예상 외에 파워풀한 페이셜 덩크를 꽂는데, 덩크를 성공한 후에 지난 십자인대 파열 부상 시점이 떠오를 정도로 아찔한 착지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탐슨은 원래부터 그런 선수입니다. 탐슨은 경기 후에 '내가 사람을 앞에 두고 덩크를 할 줄 나도 몰랐다'라고 밝혔습니다. 그야말로 자신에게 더 이상 부상재발의 트라우마와 두려움이 없음을 확인해보고자 가슴이 시키는대로, 본능적으로 시도한 덩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인터뷰 내용입니다. 슬램덩크의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처럼, 미네소타에서 커리어 하이 득점을 기록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 데릭 로즈처럼 가슴에 뜨거운 '불꽃'을 지니고 있는 선수들은 보는이들에게 왠지 모를 뭉클함을 전달해줍니다. 가슴에서 그러한 뭉클함이 느껴질 때 이것이 스포츠를 즐기는 본질적인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른 클레이 탐슨도 앞으로 더 이상 아프지 말고 건강하고 오랫동한 선수생활을 이어나가기를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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