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아이템들
나는 미니멀리스트이자 얼리버드이자 쇼핑애호가이다. 1인 가구이면 어떻게든 없는 데로 살아보겠지만 아이들 키우면서 미니멀 라이프 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아이들 한참 어릴 때는 맥시멀로 살다 이제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고 나 역시 중년의 능선을 넘고 있는지라 다시 미니멀을 추구하고 있다. 너무 많은 물건들은 삶을 지치게 하고 복잡하게 할뿐더러 청소할 힘도 없는데 에너지만 고갈시킬 뿐인지라 최대한 쇼핑을 자제하고 불여 불급한 것은 들이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게다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은 까닭에 삶을 간소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한두 개를 사기 위해 마트에 갔을 때 한두 개만 사 오는 게 아니라 당초 계획에도 없던걸 사 오게 된다. 인터넷 볼 때도 마찬가지로 순간 정신을 잃고 물건을 주문하게 된다. 남편이 항상 말하길 내가 물건을 꾸준히 쓰는 게 아니라 구입한 후 지겨워지면 '용도변경'의 과정을 통해 최후엔 버린다는 것이다. 정말 그건 정확한 시각이었다. 예를 들어 박스를 산다면 그 용도로 쓰다가 지겨워지면 쓰레기통 용도로 쓰다가 최후엔 버리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무인양품에서 산 좌탁도 이방 저 방 옮겨 다니다가 결국 사무실에 가져가 톱으로 다리 길이를 자른 후 내 책상 옆에 있는 공기청정기를 올려두었다. 그것도 언젠가 버려질 물건이다
가격이나 여러 가지를 따져 당장 사지 못할 땐 그것을 구입했을 때 얼마나 편리하고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상상의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도 한다. 결국 그렇게 뭔가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언젠가 꼭 구입하게 된다. 아쉬운 건 물건에 대한 싫증 또한 구매욕을 앞지르기에 뭔가를 끈덕지게 사용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내 사랑을 받고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 영원히 나와 함께 할 물건들이 몇 가지 있다. 이제 그걸 소개할까 한다.
1) 캡슐 커피머신
한 7년 전 에센자라는 커피머신과 거품기를 남편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큰 맘먹고 들였다. 커피를 워낙 좋아해서였다. 그것도 여러 차례 사용 블로거 홈피를 들락날락하며 사용기를 지켜본 후였다. 따로 커피를 갈아서 물을 끓여서 데울 필요 없이 비몽사몽 간 일어나 바로 캡슐 넣고 버튼 누르면 에스프레소 타입의 커피가 완성된다. 그것과 함께 우유 거품기 에어로치노까지 구입했지만 실상 귀챦다는 이유로 그냥 우유를 커피에 살짝 부어 먹고 있다. 아이들 키우며 직장 생활하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가 사실 쉽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마신 커피 한잔은 순간 잠을 확 깨게 한다. 지금도 그것 없이는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그동안 마신 캡슐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다른 에스프레소 머신기 두개는 이미 버려졌지만 이 것은 퇴직 후에도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것이다.
2) 몽블랑 만년필 & 잉크
주사로 승진한 후 나에게 선물한답시고 하나 둘 구입한 만년필이 정신 차리고 보니 한 자루도 아닌 네 자루가 되어 있었다. 물론 이건 남편한텐 비밀이다. 이런 걸 이해할 사람이 전혀 아니니깐 말이다. 결국 만년필 쓰면서 악필도 해소하고 글쓰기에 맛 들여 독서도 꾸준히 한 덕에 부상으로 얻은 것도 많다. 이 것 역시 나와 함께 영원히 할 것이다. 단 걱정스러운 건 내 자녀들이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하긴 나도 그 나이에 만년필이라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 그건 두고 볼 일이다. 아울러 그 만년필에 각각 들어갈 잉크는 덤이다.
3) 블루투스 자판
아이폰을 쓰고 있는데 손가락을 이용해 문자를 보낼 때 오타가 많다. 다른 사람들이랑 카톡 하거나 문자 보내고 블로그에 글 쓴 땐 블루투스 자판이 정말 편하다. 아직까지 버리지 않고 잘 활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유용할거 같다. 특히 브런치 작가인 나에게 딱이다.
4) 몽블랑 서류가방
한때 몽블랑에 미친 적이 있어서 몽블랑 시계며 서류가방을 미친 듯 구입했다. 아니 이 서류가방을 사려고 한건 아니고 매장 들렀다가 점원의 추천에 확 넘어가서 순간 구입하고 말았는데 노트북을 넣거나 적은 양의 서류를 넣을 땐 너무 간지 있다. 단점은 가방 자체로도 무게가 조금 나가는 데다가 이것저것 잡다한 거 넣어가지고 다니는 여성들에겐 울룩불룩해 보여서 별로라는 거다. 어깨에 메도 되는데 사실 무겁다. 하지만 추가로 구입한 마스코트도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여하튼 내 생애 최고 가격 서류가방이다. 이걸 들고 다니면 내가 비니지스 우먼이 된듯한 착각에 빠진다.
5) 수첩(로이텀 다이어리)
6개월에 한 번 정도 다이어리를 소진하는데 미니멀 라이프 시작한 이후 그게 부담스러워 수첩에 일정을 적지 않았더니 머릿속으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쉽게 지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수첩에 뭔가 해야겠다고 만년필로 확실히 적으면 그걸 실행하고 실행 완료하면 밑줄을 그으면서 목표관리를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만년필만 사용하기 때문에 잉크가 번지지 않고 만년필로 썼을 때 그 필감이 좋은 노트를 골라야 하는데 가성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여러 해 몰스킨, 로디아를 비롯해 많은 노트를 써봤지만 로이텀 다이어리만큼 내가 소유한 만년필과 궁합이 맞은 노트가 없었다. 그래서 냉큼 2021년 다이어를 구입했다. 2019년에는 위클리를 구입했는데 한번 쓰다 보면 하루 중 기록할게 넘쳐 칸이 부족할 정도였다. 위클리로 부족한 듯싶어 처음으로 데일리를 구입했더니 살짝 두껍다. 옥션에 저 색이 블루보다 덜 판매되는지 가격이 저렴해서 색상 따지지 않고 내용을 보고 제일 저렴한 가격 비교해서 구입하게 되었는데 상당히 만족스럽고 벌써 무슨 계획을 세워야 할지 설렌다.
6) 수제 맥주
이건 물품이라기보다는 마셔 없어지는 것이지만 내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수제 맥주의 맛에 길들여진 후에는 일반 맥주는 맹물 같은 느낌이다. 온갖 잡스런 스트레스 쌓인 퇴근 이후 시간엔 집에 와서 마시는 수제 맥주만큼 날 위로해주는 건 없다. 수제맥주하니 거창한 거 같지만 그냥 국내 맥주회사에서 다양한 맛과 디자인으로 나온 마트에 파는 캔맥주다.
7) 룰루레몬 요가복
서울 롯데월드 몰 매장에서 이걸 보기 전까지 이 브랜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호기심에 구입해서 입어보니 너무 편하다. 신축성이나 제품의 질도 너무 좋다. 일상복 같은 바지와 티셔츠를 정장 재킷 속에 입고 사무실 출근해도 아무도 모른다. 입는 순간 편안함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옷의 무게도 감안해야 할 만큼 내게 최적의 옷이다. 앞으로도 이 요가복을 추가로 구매할 거 같은 이상한 예감이 든다.
결국 투자 대비 사용빈도나 기간을 고려해볼 때 , 잘 샀다고 생각하는 물건들은 내가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으며 질이 좋은 것들이었다. 저렴한 거 여러 개 사는 것보다 질 좋은 거 한 개 사는 게 이득이라는 생을 가지고 있고 터무니없이 비싼건 피한다.
추가적으로 이런 소비를 하면서도 내가 너무 과소비하지 않나 하는 피드백하는 건 기본이다. 그래도 나름 크게 눈에 띄지 않고 소소한 취미를 위해 구입하는 것들에 대해 그나마 마음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건 내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활동을 하는 것의 유일한 이득이 바로 이것이다. 남편 혼자 벌어 남편이 번 돈으로 내 개인의 취미생활에 투자한다는 게 쉽지 않을 거 같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비록 돈벌이로 스트레스를 받고는 있지만 그걸 해소할 배출구를 나름 비축해 두고 있다는 것에서 조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내가 투자하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아이템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문제는 그 소소한 투자가 갈수록 그 기준을 넘어가는 것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강력한 자가 검열이 필요하다. 어쨌거나 직장 다니며 이런 배출구를 찾아서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 살짝 안도감이 든다. 앞으로도 힘들 때마다 몰입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