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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Jan 01. 2021

나는 합리적이지 못한 미니멀리즘 추구자

구매로 이어지는 쇼핑 전 시뮬레이션은 이제 그만

복잡한 걸 싫어하고 싫증을 잘 내는 나의 성격은 물건을 소유하거나 사용하는 취향에도 반영된다. 구입했지만 활용도가 떨어지면 방치하게 되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어떻게든 치워야 속이 개운하다. 문제는 남을 주거나 버리거나 한 후에는 그 물건을 안 사야 하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그 물건을 구입하게 된다는 점이다. 급기야 사고 버리고 또 사고 그런 패턴이 반복되게 된다.

처음 물건을 구입할 때는 그것을 구입해 사용하고 있는 시뮬레이션을 한 후 구입하게 된다. 가령 어떤 다이어리를 봤을 때 저 다이어리를 쓰면 스케줄 관리를 엄청 잘하게 될 거 같은 시뮬레이션을 해본 후 바로 구입으로 연결된다. 자칭 얼리어답터이지만 되돌아보면 정말 쓸데없는 물건들을 많이도 구입했었다.

그중 가장 시뮬레이션을 활발히 한 건 다이어리다. 만년필과 궁합이 잘 맞는 노트를 소유한다는 로망은 끊임없이 다이어리에 대한 구매를 멈추지 못하게 한다. 만년필의 잉크가 선명히 각인된 질 좋은 노트를 보면 나름의 만족감과 뿌듯함을 느낀다. 노트를 발견할 때마다 만년필과의 관계를 재보는 것도 선행사항이다. 며칠 전 만년필 카페에서 회원이 구입한 후 추천한 도라에몽과 컬래버레이션한 구찌 노트 또한 나의 손길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젠 계속 쌓여만 가는 다이어리와 미니멀 라이프의 관계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 이르렀다.

두 번째는 여행 관련 가방이다. 이 가방을 메고 유럽여행을 가면 소매치기의 위험으로부터 지킬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이 가방의 구매욕을 불 지른다. 그 가방을 메고 외국 관광지 어느 곳을 돌아다니는 나의 모습을 시뮬레이션하면서 구매한 크로스백이 벌써 최근에 세 개다.(기존 것은 기부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가방들은 사무실 출근하면서 가지고 다니기엔 어울리지 않는다. 언젠가 올 여행 갈 그날을 위해 방에 걸려 있다가 주말에 나들이라도 가게 되면 한두 번 걸치게 되는 게 고작이다. 이것 또한 실패한 쇼핑의 흔적이다. 또 구입해놓고 필요 없다 싶어 올해 초 기부처에 팩 세이프 여권보관용 크로스를 기부해 버리고 다니 그 가방이 그리 아쉬울 수가 없었다. 다시 구매하려고 했더니 5만 원이 넘는다. 다시 한번 어리석고 즉흥적인 나에 대해 자책하며 물건을 버릴 때도 신중함을 기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세 번째 자주 구매하는 것은 도시락이다. 백화점 그릇 매장 지날 때 우연히 본 일본 도시락을 볼 때면 나도 저 도시락에 간식을 싸가지고 사무실에 가는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바로 내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구입해보지만 사무실에서 터놓고 그걸 꺼내고 먹을 수 없는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 도시락을 자주 구입했던 것이다. 그 수많은 도시락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 유목민 유전자가 강한지 '여행'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린다. 여행을 위한 최고의 아이템이라고 생각될 때는 서슴지 않고 지갑을 열게 된다. 언젠가 퇴직하는 그날이 오면 배낭 하나 메고 전 세계 이곳저곳을 유랑하리라 했기에 여행하는데 적합한 물건 구매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하다

또 여행과 독서를 연결하면 바로 미니스탠드라는 답이 나온다. 그렇게 여러 개 구매한 미니 독서등도 최종 한 개 남아있다. ' 퇴직 후 배낭 메고 세계여행'이라는 실행해야 할것만 같은 그 막연한 환상 때문에 여행관련 물품은 언제나 구매 1순위고 사도사도 지치지 않는 것들이었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투철히 지켜야 할 것이 바로 미니멀리즘이다. 삶의 부피를 줄이고 물건도 최소한의 것만 간소하게 갖추어야 마음도 가벼워지고 에너지가 여기저기 분산되지 않는다.

며칠 전에는 항공사 포인트로 여행 시 필요한 파우치와 짐 정리용 백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빼기를 여러 번 반복한 후 다행히 구입하지 않았다. 여행을 쉽게 다니지도 못하는 팬데믹 시대에 여행 파우치라니


나이 들어도 쇼핑 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도 걱정거리 중 하나다. 불여 불급하지 않은 것을 아무 생각 없이 구입하다 보면 언제가 버리게 될 그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무절제하게 낭비된 나의 돈에 대한 탄식도 영혼을 피폐하게 한다. 2021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지켜야 할 소중한 신념처럼 쓸데없는 물건들을 사모으지 않도록 역으로 그걸 사용했을 때 불러오는 역효과를 시뮬레이션해보고자 한다. 그래도 다행인건 요즘은 알라딘에서 책을 사면서 예전처럼 굿즈까지 구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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