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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로 여행지를 그려보기로 했다

잊지 못할 북유럽과 미국의 도시 풍경

by 얼음마녀

만년필로 풍경 그린 책을 보고 나도 언젠가 저렇게 그려봐야지 했다. 여행지에서 또는 비행기 안애서 하얀 공백의 노트 위에 가득 충전된 만년필을 들고 한없이 그리는데 빠져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여행지를 만년필로 스케치하고 글과 함께 책을 낸다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 하지만 질 좋은 메모지와 만년필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데도 작은 그림 하나 그리는 것에도 나름 준비 의식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그려야지 하면서 미루다 시간은 가고 그 일은 언젠가 해야 할 숙제처럼 느껴졌다. 대단한 그림이 아니래도 내가 만족하면 되는데 말이다


어떤 일을 하려면 앞뒤 잴 것 없이 바로 실행하는 것이 빨리 시작하는 방법이다. 주말을 이용해 드디어 실행에 옮겨보았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국의 여행지가 나의 그림으로 재탄생한다는 것도 창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고 따라 그리다 보니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그 멋진 기억은 더욱 생생해지고 나름 신선한 재미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조지아대학교가 있는 미국 남부 도시 애선스 시, 코카콜라와 CNN이 있는 애틀랜타, 오래된 도시 사바나, 그리고 뉴욕, 워싱턴, 북쪽의 버몬트주 그 모든 풍경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그 당시의 설렘과 아쉬움 모두가 말이다.


앞으로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다시 가게 되더라도 마스크는 계속 껴야 할 거 같고 전처럼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전에 갔던 여행지 사진을 들춰보며 그때를 회상해보기도 하지만 기억과 감흥이란 게 갈수록 희미해지기 마련이라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나이가 들어갈수록 과거의 추억을 먹고 산다지만 기약 없이 추억만 반복해 곱씹는 것도 한계가 느껴진다. 그 공허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매일 조금씩 방문했던 혹은 가고 싶은 여행지를 만년필로 미니 사이즈로 이렇게 부담 없이 그리다 보면 아쉬움을 조금씩 가라앉힐 수 있을 거 같다. 하루에 한 장씩이라도 조금씩 하다 보면 실력도 조금씩 늘겠지. 지금은 짙은 갈색 잉크를 사용해 그렸지만 곧 핑크, 파랑, 빨강, 녹색 잉크를 사용해봐야겠다. 방구석에서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최면에 빠진다.



몇 주간 머물렀던 애선스 시에 있는 로컬 브루어리인데 영화 어벤저스 출연진들이 촬영 끝나고 뒤풀이를 했던 곳이라 해서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미국 술집은 오후부터 문을 여는데다 또 수제 맥주를 좋아하는 취향이 같은 교육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핸드폰에 남아있는 사진을 보며 이곳을 그리다 보니 그때의 안타까움이 또다시 요동친다.


생각보다 작았던 미국의 백악관(좌)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옥상에서 바라본 뉴욕의 마천루(좌), 2015년 딸들과 갔던 런던에 있는 세인트폴 대성당 꼭대기(우)인데 이것 또한 그리다 보니 평소와 다르게 의욕을 보이며 성당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자는 딸의 말에 자극받아 내부 철계단을 아슬아슬 타고 올라가 꼭대기까지 올라간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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