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하루 일과는 항상 여섯 시에 시작된다. 핸드폰 알람을 설정해두지 않아도 그 시간이면 눈이 저절로 떠지는 게 나이 탓일까. 딱 50대에 접어들면서 정말로 잠이 없어진 것이다. 바쁜 아침 준비를 하고, 가족들이 모두 나가면 세재를 이용해 접시를 애벌세척한 후 식기세척기 속에 투척한다. 또 물걸레 로봇청소기를 가동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에 넣으면 아침 집안일은 마무리된다. 물론 건조기에서 빼서 개우는 작업도 남아있다. 집에 있으면서도 집안 일이 장난아닌데 그동안 직장 다니면서 집안 일을 어떻게 했을까 잠시 의문에 빠진다.
9시 부터 컴퓨터를 켜고 온라인으로 토익 강의를 듣는다. 어떤 날은 듣다가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 나이에 다시 토익이라니 별 쓸모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영어공부라는 것도 어떤 목표가 있어야 계속할 힘이 생긴다. 이왕 할바엔 목표가 있는 영어를 하는 게 좋겠는 생각을 해서 토익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취미로 하는 영어독서, 영어뉴스 듣기, 영어 필사를 단지 열정만으로 꾸준히 지속하기 힘들 거 같았다. 하지만 온라인은 듣다 보니 졸리고, 책을 펴고 보고 있자니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50대가 되니 책을 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집 근처 헬스장이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운영했으나, 최근 코로나가 더 심각해지면서 오전 12시부터 저녁 9시까지 운영시간이 바뀌었다. 운영시간이 바뀌기 전에는 오전에 집안일을 끝내고 바로 9시쯤 헬스장으로 향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토익공부를 오전에 하고 있는 것이다. 오전은 금방 지나간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텀블러에 보리차를 담고 블루투스 헤드셋까지 챙겨서 헬스장으로 향하면 12시이지만 이용자는 한 명 아니면 아무도 없다. 운동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에어컨을 켜고 은은한 주황빛 조명을 켜고 러닝머신에서 엄청 여유있게 속도 4.0 또는 4.5로 해두고 기운 빠지지 않게 걷는다. 이렇게라면 두시간도 걸을 수 있겠다. 창밖은 펜션과 푸르른 나무 넓은 하늘, 정면으로 저 멀리 높은 산들이 보인다. 폭염이 아니면 창문을 통해 대자연의 아침향기가 바람에 실려 상쾌함을 가져다 준다. 이렇게 매일 운동하고 취미생활하며 하루를 보낼수 있다면 참 행복할텐데. 갑자기 직장생각을 하자 시간을 온전히 뺏기고 에너지 소진당하며 하루하루 시골감옥에 갇혀 아무것도 아닌것을 하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걷다가 지치면 내려와서 하체 단련을 위해 자전거를 한 30분 탄다. 젤 효과적인 시간 분배는 먼저 자전거를 30분 타고 러닝머신 30분타고 다시 자전거 타고 다시 러닝머신 하는 것이다. 자전거 1시간, 러닝머신 1시간 해서 총 두 시간 정도 헬스장에서 보낸다.
헬스장에서 나온 후 바로 옆 파동 욕장 겸 작은 사우나로 직행한다. 그 시간대 그곳도 거의 손님이 없다. 파동 욕장은 뜨거운 게르마늄 원석 위에 배를 대고 5분 누웠다가, 등을 대고 10분 눕다가 밖으로 나와서 5분 쉬다가 다시 들어가서 총 3회를 하면 온몸의 노폐물이 빠져나가가고 혈액순환도 잘되고 면역력을 길러준다고 해서 전국 각지에서 입소문 타고 많이 오는 곳이다. 차를 마시는 공간은 벽은 편백으로 되어 있고 주황빛 조명이라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이다. 그곳에서 난 새로운 물건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삼나무로 만든 탁자였다. 처음엔 너무 단순해서 왜 이렇게 만들었나 했고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차를 한잔 들고 그 탁자 앞에 앉았는데 너무 요긴한 물건으로 보이는 것이다. 넓이도 높이도 딱 맞았다. 집에도 이런 탁자가 하나 있으면 차를 마시고 책도 보고 딱 좋겠네 하는 생각을 했다. 그곳 관계자에게 그 탁자를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하루는 집에서 자를 들고 가서 그 탁자 사이즈를 쟀다.
며칠을 그렇게 탁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결국 근처 농협 하나로 마트에 편백제품을 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그 편백제품 구입할 수 있는 곳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전화를 했다. 사진으로 찍은 것 보내주고 사이즈를 알려주니 편백제품으로 똑같이 아니 더 튼튼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 후 편백 공방에서 직접 내가 있는 곳으로 편백 탁자를 배달해주셨고 그렇게 나만의 편백 탁자를 손에 넣게 되었다.
실제 받고 보니 파동 욕장에서 본 것보다 훨씬 튼튼하게 보였다. 심플한 스타일에 필요한 것만 올려놓고 집중해서 독서하거나 필사하기에 딱 적합했다. 이곳에 책을 올려놓고 독서를 해보니 역시 적당한 눈높이였다. 다만 눈이 슬슬 침침해져서 낮 시간 동안 햇살 가득할 때 베란다 가까운 창가에 두고 사용해야겠다.
물론 집에는 책상이나 탁자가 여러 개 있지만 높이가 맞지 않아 쉽게 사용하지 않는다. 주로 부엌 식탁이나 소파에 기대 책을 보거나 하는데 소파에 기대 책 볼 경우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거나 한없이 게을러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좌탁은 등을 벽에 기대고 발을 쭉 뻗고 작업을 한다면 몇 시간 집중할 수 있다. 좌식 생활이 관절에 좋지 않다기에 너무 많이 앉아 있진 않을 거 같다. 하루 이 탁자에서 책을 조금 봤더니 길게 뻗은 다리가 편한 상태를 찾아 조금씩 접혀지더니 그날 오후는 왠지 왼쪽 다리가 아픈 거 같다. 아무튼 너무 오래 앉아 있지는 않을 것이지만 나만의 최초 맞춤 탁자가 생겨서 상당히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