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일해 오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도 했다. 하지만 결코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당장 그만두고 나가서 할 일이 없는게 가장 큰 이유다. 터무니없는 일로 고함치고 괴롭히는 직장상사악성민원, 시스템이 엉망인 조직, 맘에 안 드는 동료 등 우리를 지치게 하고 위협이 되는 요인들이 많다. 시대가 바뀌어도 과거 우리를 힘들게 했던 요인들이 특별히 개선되는 건 없다. 그냥 안 좋은 일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도록 바랠 수밖에 없다. 그 상사와, 그 직원과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지 않길 바랜 적도 있지만 운명의 신은 우리가 원하는 데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최근의 공무원 블라인드 커뮤니티를 보면 많은 신규 공무원들이 다양한 이유로 그만두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사유는 각양각색이지만 내용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고민이었다. 일부는 현실을 벗어나고자 전출에 성공하기도 한다. 일부는 실제로 사직하고 닭발집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대부분 댓글은 일단 휴직부터 하고 건강을 추스른 후 다시 생각해보라는 내용이 많다. 당사자는 너무 괴로워 당장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휴직이니 뭐니 운운하기 전에 이미 우울증으로 견딜 수 없는 상황까지 도달했기에 휴직보다 사직을 우선 고려했을 수 있다. 실제 도시 공무원과 비교해서 시골공무원들은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아주 특이한 케이스를 빼고는 거의 없다. 대부분 시골이 고향인지라 대부분 별일 없는 한 정년까지 마무리한다. 하지만 도시는 그게 아닌 거 같다.
그래도 사직은 말리고 싶다. 자신을 괴롭히는 상황이 영원하지 않기에 주변 상황이 곧 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인회사에서는 힘든 일이 있다면 퇴로가 없지만, 공무원은 한 자리에 오래 두지 않기에 몇 년 있으면 옆자리 사람도 바뀌고 상사도 바뀐다. 그래도 버틸 수 없이 힘들면 휴직이라는 제도도 있고타 부처 전입이나 타 기관 상호 교류를 하면 된다. 물론 상대자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찾다 보면 답이 보이는 날이 온다. 문제는 6급이 되면 타기관 전출이나 상호교류 자체가 힘들다.
막상 공무원 조직에 들어오면 생각했던 것보다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답답할 때가 많다. 그냥 위에서 내려오는 단순 반복 문서 처리도 많은 데다 민원부서는 암초 같은 악성민원을 마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직이 원래 그런 조직이기에 조직을 바꿀 수는 없다. 얼마 전 뉴스에서도 행시 합격한 사무관이 공무원 조직에 적응 못해서 그만뒀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보다 보기 좋은 한글문서를 만드는데 집중한다는 내용도 있다. 어쩔 수 없다. 그게 우리 조직이기 때문이다. 어떤 정책을 새로 시행하는 것에 대해 윗선의 결재를 맡는데 가독성이 좋은 문서를 가지고 결재를 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냥 이것이 공무원 조직인 것이다. 그래도 마냥 괴로운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가뭄에 단비가 내리듯 아주 가끔 보람 있는 일도 있을 것이고 내가 처리한 일로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또 정년이 보장되고 부도날 염려가 없기에 월급은 꼬박꼬박 안 밀리고 제때 들어온다는 사실 때문에 과히 안정적이다라고 말한다. 정말 힘들 때 사직보다는 휴직을 선택하여 잠시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것을 그만두고 더 잘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만두는 것이 나은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가능성이 있었다면 공무원으로 애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불변의 법칙은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게 변한다. 지금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도 떠나고 근무지는 바뀌게 되어 있다. 이 조직에선 최대한 오래오래 버티는 게 최종 승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