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보아온 책들이나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뉴욕에 대한 수많은 로망을 보았다. 그 속에는 뉴욕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열망과 그걸 넘어선 어떤 것이 있는 거 같았다. 2019년 이전엔 뉴욕을 가본 적이 없었기에 도대체 뉴욕이 어떤 곳이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할까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가본건 2000년이었다. 영어연수 명목으로 L.A에서 일주일 머문 적이 있었다. 그랜드캐년, 후버댐,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그 모든 게 나에겐 신세계였고 가슴 뛰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그때 미국을 갔던 기억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 당시에는 공항 면세점에서 풍겨져 나오는 향수 냄새만으로 해외여행을 한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하지만 그 모든 감흥도 때가 있다는 걸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그 어딜 가더라도 그냥 시들할 뿐이라는 게 아쉬울 뿐이다.
그런 내 삶에도 드디어 뉴욕을 갈 기회가 생겼다. 바로 2019년 장기교육을 통해서이다. 우리 팀이 수행해야 할 국정과제 주제는 친환경에너지 '태양광 에너지' 분야인데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를 선택했지만 6명이 한 팀이라 나로서는 딱히 반대할 언변도 부족했기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연수 속에서 문화체험이라는 정말 꿈같은 며칠이 주어졌다. 삶은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지만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이다. 뉴욕을 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지만 다들 열광하는 뉴욕을 간다는 것으로 드디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때만큼 미국 국내선 비행기를 그렇게 타본 적 없었다. 워싱턴 D.C에서 뉴욕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고 뉴욕의 공항에서 리프트 택시를 타고 우리가 미리 예약한 맨해튼에 있는 펜실베이니아 호텔로 향했다. 뉴욕이 가까워질 무렵 저 멀리서 엄청나게 높은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선 게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저곳에 뉴욕이구나 생각했다. 영어에 대햔 두려움이 너무 커서 문화체험의 참 재미도 누리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지금 와 드는게 사실이다.
호텔은 한국에서 인터넷만 보고 쉽게 예약이 가능했고 가격도 적당했지만 기대와 달리 정말 최악이었다위치만 좋다 할 뿐이지 내부 숙소는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낡고 추웠기에 옆 동료랑 둘이서 다른 숙소로 옮길 수 있으면 옮기려고 숙소를 검색해 보기도 했다. 주변에는 온갖 상가가 밀집되어 있고 우범자로 보이는 흑인들이 길가에 앉아 사람들 하나하나 주시하는 것도 보였고 밤에는 총소리도 들렸다고 한다.
뉴욕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불과 이틀이었다. 남들 다 가본다는 타임스퀘어도 가보고 애플샵도 들러보고 나이키 매장에서 옷도 사보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메이시스 백화점에도 들러보았다. 한국의 백화점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낡은 티가 났고 손님들도 거의 없었다. 뉴욕은 살인적인 물가라고 어떻게 하이테켄 하나에 3불 이상 하는지 몰랐다. 한국 마트에서 이천 원이 안 되는 가격인데 말이다. 우리는 매끼를 밖에서 사 먹어야 했는데 사전에 길거리 음식은 될 수 있으면 안 먹는 게 좋다고 했지만 할랄 음식은 먹어봐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근처에서 줄 선다는 할랄 음식은 찾을 수 없었다. 매 식사 때마다 별로 가성비가 좋지 않은 음식을 먹고 하루 이틀 사이에 뉴욕에서 볼만한 것은 다 봐야 했기에 강행군이 될 수밖에 없었다.
브로드웨이에서 겨울왕국을 팀원들이랑 같이 보고 그곳 샵에서 50달러 주고 겨울왕국 엘사 담요를 구입했다. 호텔이 하도 추워서 덮고 자려고 구입했지만 그걸 덮어도 춥긴 마찬가지였다. 지금 그 담요는 딸이 학교에 가지고 다니며 쓰고 있다. 말로만 듣던 센트럴파크에도 가보고,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도 보고, 피카소 작품들도 보았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도 가봤는데 문제는 정말 체력이었다. 여행도 젊을 때 많이 다닌다는 말은 정석이다. 마음은 이곳저곳 다 보고픈데 너무 걸어서 지쳐서 발이 퉁퉁 부은 데다가 체력이 되지 않아 더는 돌아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현대미술관에서 나와 다른 한 명과 한께 그냥 숙소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막상 도착해서 그 구질구질한 숙소에 들어갈 수는 없어서 호텔 앞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잔 마실까 해서 들어갔는데 주문하는 것도 나 혼자여서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어서 그냥 나와버렸다. 음식을 뭐 먹어볼까 해도 시험적인 걸 먹을 수도 없었다. 가격도 물론 두배이지만 말이다.
중학교 영어책에서 처음 알게 된 미국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을 거닐었다. '이곳은 뉴욕이야' 애써 뉴욕의 참 맛을 느끼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하면서 그곳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찾으려고 했지만 사실 내게 뉴욕은 너무도 복잡하고 다양하고 건물들만 너무 높고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뉴욕에서 갈만한 곳을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검색해보았더니 많은 곳이 나왔지만 호텔 근처에 갈만한 카페가 하나 있었다. 너무 많은 시간을 카페찾는데 허비했다. 이곳인데 분명 그 호텔 카페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주 작은 글씨로 창문에 쓰여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크게 간판이 걸렸을 텐데 말이다. 그곳에서 유명하다는 크로와상과 커피를 주문하고 커피 주문하면서 아까운 팁까지 주고 그걸 들고 호텔 로비에 있는 소파로 나왔다. 그곳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로비에서 글을 쓴다는 둥 아주 멋지게 포장된 인터넷 글과 달리 너무도 평범하고 크게 대단할 것까지 없는 장면이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도 수많은 인파의 흐름 속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도록 애써 조심해서 걸어야 했다
하여튼 아직도 뉴욕을 떠올리면 너무도 복잡하고 물가도 비싸고 구질구질했던 호텔이 떠오른다. 지저분하다는 뉴욕의 지하철도 타봤는데 한 번은 타보지만또 한 번 탄다는 건 어디선가 들은듯한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거 같았다. 어쩌면 단지 이틀이었기에 내가 뉴욕을 제대로 알 수는 없고 참 맛을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자유의 여신상으로 향하는 페리를 탈 수 있는 곳에서 가보진 못하고 저 멀리서 자유의 여신상만 보고 왔을 뿐이었다. 어릴 때 수많은 사진에서 보았던 자유의 여신상 앞에 페리를 타고 간다면 정말 내가 뉴욕에 왔구나 느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20대에 뉴욕을 여행했더라면 지금의 심드렁함은 없고 나 역시 뉴욕의 활기에 열광하고 푹 빠졌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또 한번의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