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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Mar 25. 2024

점집 가서 주객전도 된 이야기

"제발 조금만 참아.."

옆 팀장은 내게 간청한다.

내가 무슨 일을 확 저지를까 봐 걱정하는 얼굴이다. 성격상 다 까발리고 면장과 한판 할 것 같은가 보다. 오늘도 면장은 다른 팀 문서는 다 결재하고 우리 팀 문서는 열람을 했지만 결재를 하지 않는다. 일할 의욕도 나지 않아 휑한 마음으로 조퇴를 했다.


운전을 해서 한적한 도로로 빠져나갔다. 생전 다니지 않는 길이다. 오래된 주택가가 즐비한 곳엔 깃발이 보였다. 순간  외국인에게 솟대같은 거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곳을 가서 내 현재 상황에 대해 읍소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돈 오만 원을 투자해서 괜히 갔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어려운 이웃 불우이웃 돕기 했다고 생각하자 그런 마음이 들었다. 또 직장 스트레스 상담비라고 생각해도 되고 정신과 상담비도 될 수 있다.


그곳에 두 곳이 있었는데 한 곳은 빨간 깃발 위에 흰 깃발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여보세요"불러도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다시 샷시 문을 닫았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몇 미터 위에 또 하나 그냥 빨간 깃발만 있는 곳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웬 점집이라고 볼 수 없는 조그만 마당에 여기저기 정리 되지 않는 듯한 곳 수돗가에서 노파가 배추를 씻고 있었다.  나이가 많은 백발의 노인이었다.


" 여기 점 본가요?"


배추를 씻다만 노파가 날 올려다보며 " 내가 봅니다. "

" 아.... 그래요?" 눈빛이 상당히 매섭다.

 "보기 싫으면 그냥 가슈"


노파의 당당함에 끌려 왠지 얼마나 잘 보는지 궁금해졌다. 노파는 마치 911 테러를 예고했다는 불가리아의 예언자 바바 반가(Baba Vanga)의 이미지와 흡사했다. 키는 엄청 작으며 허리는 굽어서 제대로 펴지지 않는 상태로 힘들게 배추를 씻고 있었다. 눈 상태가 좋은 것 같지 않았지만 예리함이 서려있었다.

"신점 보나요? 사주를 보나요?" 하는 나의 물음에 "다 봐요.." 하는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 허리가 굽은 노파는 힘들게 거실로 올라갔다. 조그만 거실 같은데 들어가자 담배냄새가 확 나는 것이다.

" 거 이 앞에 온 손님이 얼마나 피우던지..." 할머니 혼자 중얼거렸다.


할머니의 방 안에는 초라한 침대와 침대 위엔 먹다 남은 사과 한 조각과 먹다 남은 단백질 음료가 있었다. 할머니가 봐준 사주가 안 맞더라도 오만 원으로 어려운 할머니 도와준다고 생각하자고 했을 때 딱 맞는 상태였다. 방도 정리되지 않고 신당 같은 것도 없었다. 방 정리가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정신은 멀쩡해서 사주는 보지만 육체는 쇠락하여 도저히 혼자서 이것저것 치울 여력은 되어 보이지 않았다. 벽에는 오래전 찍은 걸로 보이는 환갑을 넘긴 할머니의 초상화와 아들로 보이는 사람의 대학졸업 사진액자가 붙어 있었다. 할머니것은 벽에 걸려있는 반면 아들 액자는 언제든 집어서 설명할수 있게 벽에 기대어 있었다. 할머니는 침대 끝에 겨우 걸터앉아 사주를 보려는 건지 아닌 건지 자기 이야기부터 하기 시작한다. 최근 큰 병에 걸렸는지 아들과 병원에 간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아니 도대체 할머니가 사주는 언제 봐주는 거야, 침대에 걸터앉아 밑으로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 내가 앉은 곳으로 내려와야 무슨 말을 할거 아닌가 ' 생각했다.


정말 옛날 할머니들에게 아들이란 어떤 존재일까. 이야기 내내 아들의 액자를 집어들고 끊임없이 자랑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계속 자기 아들이 얼마나 착한지, 며느리가 임용고시 어느 지역에서 볼지 자기한테 물어본 이야기부터 자기가 언제부터 사주를 봤는지까지 이야기를 하는데 이거 끝이 안나는 것이다.


"할머니 제 사주 언제 봐주시나요? "


그제야 할머니는 달력 같은 거 하나와 얅은 책자를 편다. 이야기하다 보니 딱 내 직업을 맞춘다. 참 신기하게도 보는 곳마다 직업을 맞추는 게 사주를 정말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할머니는 내가 어딜 가나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 아니에요. 사람들이 저를 가는 곳마다 싫어해요. 가는 곳마다 면장한테 미움을 받는데 도대체 왜 그런가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면장의 나이를 물어본다.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면장이 작년부터 안 좋았어, 올해도 안 좋아.." 그 말을 듣자 작년 말에 갑자기 면장 신상이 변동된 일이 떠올랐다. "그냥 면장님 왜 저한테 그렇게 하세요. "라고 좋은 말로 말하라는 것이다.

"아뇨 그런 말도 하기 싫어요, 꼴도 보기 싫어요.."라고 했다.


사주를 보러 갔는지 상담을 하러 갔는지 이제 주객이 전도되었다. 할머니를 중간에 제지를 하지 않으면 계속 내 사주가 아니라 할머니 개인 스토리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도무지 전체 스토리를 이해할 수 없는 할머니 일가친척이야기까지 할머니가 돈을 3억이나 통장에 있단 이야기까지 한다.  40년 동안 사주만 봐서 3억을 모았다니 할머니는 알부자였다.


"저기 밑에 찜질방 있잖아. 거기도 나 때문에 부자 되었어.."라고 하며 전에 먹다남은 뉴케어 한모금 들이킨다.

 

난 할머니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거의 상황이 기초수급자 독거노인 가정에 방문하니 할머니가 개인 생활고충에 대해 토로하는 것과 같았다. 내 사주는 조금 말해주고 거의 할머니 개인이야기다. 속으로 얼마나 그동안 누구랑 말할 사람 없이 외로웠으면 그런가 하다가, 정말 여자는 할머니가 되어도 수다를 떨어야 사는 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마치 누가 보면 정말 독거노인 가정방문 간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상황이다. 기초수급자 할머니 가정방문하여 상담했던 20대의 내가 생각났다.


중간중간 난 할머니의 말을 끊으며 계속 내 이야기로 유도를 하고 할머니는 틈만 나면 자기 아들이 얼마나 효자인지 하는 이야기부터 정말 아들에 맹신하고 아들을 낳지 못하면 며느리 쫓아내는 과거 시모처럼 셀프로 며느리 들볶은 이야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할머니는 면장의 성씨를 묻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이야기를 하다가 거의 사주 보러 간 할머니와 동네면장 신상 털기까지 갔다. 할머니의 고향이 또 내가 전에 근무했던 면이라는 말을 왜 했는지 머리를 쥐어뜯고 싶다. 나는 이전에 근무했던 곳 면장의 이름까지 읊었고 또 그 면장이 할머니도 아는 동네사람이었다. 이러다가 모든 게 다 드러나고 저녁이 되어도 할머니랑 대화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할머니의 말을 끊고 얼른 그곳을 빠져나와야 한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고 물어볼 찰라에 팀원이 전화가 온다.


전화를 끊고 다시 할머니한테 물었다. "할머니 면장한테 스트레스받는데 부적을 하나 써서 면장차바퀴에 넣던가 책상밑에 붙이던가 할까요" 이건 누가 봐도 정말 코미디 같은 질문인데 할머니는 또 부적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자기는 부적을 공짜로 준다며 할머니 셀프피알을 하기 시작했다. 부적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가야겠다고 일어났다. 뒤꽁무니가 빠지게 후다닥 나오는데 할머니가 또 마루에 놓인 택배로 온 뉴케어 한 박스를 가리키며 " 이거 우리 아들이 보내준 거야..." " 네.. 할머니 아들이 효자라서 참 좋겠네요..... 그리고 할머니 제 이야기 아무에게도 하지 마세요..."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서둘러 도망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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