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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내편으로 만드는 방법

자발적 아웃사이더로 즐겁게 살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by 얼음마녀

나이 오십을 넘자 조금 부지런해진 데다가 개인적으로 해야 할 목표가 많이 생겼다. 알람 없이도 5시 반이면 고개만 살짝 들면 보이는 전자 탁상시계를 통해 시간을 정확히 확인한다. 바로 일어나 머신에 원두를 한 움큼 집어넣고 에스프레소용으로 돌린다. 매일 아침 커피콩 정확히 60알을 세서 마셨다는 베토벤이 생각났다. 천재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서는 커피가 필수적인가 보다


머신으로 미세하게 갈린 원두를 에스프레소 머신을통해 내린다. 에어로치노는 귀찮아서 라테처럼 우유를 붓는다. CNN 팟캐스트를 틀기 시작한다. '오케이 '라는 주문을 외우고 영어로 말을 걸면 자동으로 응답하는 기계도 있지만 핸드폰이 훨씬 편하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일어나자마자 잠을 깨우기 위해 커피 마시는 것과 팟캐스트 듣는 것은 아침의 규칙적인 습관이 되었다.


나의 신념은 나이가 들수록 불필요한 모임을 자제하고 꼭 필요한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임 후 집에 돌아오면 알 수 없는 공허함과 후회가 들었다. 누군가를 만나 많은 말을 한 후에도 후회한다.


퇴근 후 시간에 대해서 오로지 나 자신의 성장과 자기 계발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기에 될 수 있으면 모임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모임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보내는 주변의 시선은 ' 성격이상자'나 '사회 부적응자'로 본다. 실제 농담 반으로 그런 거 아니냐고 대놓고 물어보기까지 한다. 주변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좋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에서 40대 스나이퍼는 꼬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꼬마야 나 반평생 살았다. 물론 네가 나보다 먼저 죽을 수도 있지만 확률상 내가 살 날이 덜 남았지. 그래서 더더욱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소비할 수 없다. 좋은 일에 집중해야 해. 네놈들과는 서 있는 조건 자체가 다르다고


며칠 전 만난 후배와 어렵사리 갖은 저녁자리에서 갑자기 "진짜 모임이 없으세요?" 한다. 누가 봐도 집과 사무실을 시계추처럼 오가며 누구누구랑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다는 단서 하나 없으니 그런 의문을 가질 만도 하다.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 구구절절한 나의 해명에도 동조하지 못한 눈치였다. 퇴근 후 영어와 독서 및 글쓰기 하는 것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니 '우리 같은 시골공무원이 써먹지도 못하는 영어를 해서 뭐하냐'라고 한다. 그 어떤 말로 설명한다고 해도 쉽게 넘어올 거 같지 않았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고 강요할 필요도 없었다. 사람은 각자 자기의 신념에 의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조직 내에도 끼리끼리 소소한 모임이 많다. 비난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모임에 참석할 때도 있다. 그러고 돌아오면 공허함과 내가 해야 할 일을 못하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냈다는 자책감이 든다.


외국은 퇴근 후 모임이나, 주말 전화, 문자, 모임들에 대해 철저하게 선을 긋는다. 퇴근하면 주로 가족들과 보내고 소위 2차까지 이어지는 밤 문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소셜 예의에 대해 철저하다. 평일 퇴근 후 몇 시까지가 전화나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시간인지 주말은 전혀 안 되는 등의 세세한 사회적인 암묵적인 예의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커뮤니티 문화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나 역시 지난 시간을 헛되이 흘려버렸다.

바로 눈앞에 있는 현실만 보고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는 잘못된 시각으로 사용한도가 정해진 인생을 그냥 의미 없이 사용해버린 것이다.


28년이라는 조직생활을 이어오면서 요즘처럼 이렇게 영어뉴스 듣고, 원서 필사했더라면 지금쯤 상당한 수준의 실력을 갖췄을 것이다. 지금 와서야 지난 시간 동안 내가 그렇다 할 것을 갖추지 못한 채 나이 50이 넘어버린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임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커피나 와인을 마시며 책에 대해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어떤 책이 좋은 것인지 서로 추천해주고, 독서 의견을 교환해보는 분위기라면 어쩌면 끌릴 수도 있겠다. 책은 본인이 읽고 깨우쳐야 하기에 독서모임도 자주 만나는 건 좋지 않고 한 달에 한번 만나서 자신이 그동안 읽은 책에 대해 발표하고 더 동기부여받고 돌아가는 것이 좋을 거 같다.


자신의 바람이나 이상과 달리 현실은 참아내고 극복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버티면서 목표한 것을 성취해 가다 보면 시간은 내편이 되리라 믿는다.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물론 네 놈들은 책 같은 거 읽지 말고 놀아야 해, 그러나 어른은 다르다. 일평생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은 한정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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