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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블리 Jul 06. 2021

엄마가 된다는 것

엄마가 되고 엄마를 알게 되었다




이거 이제 네가 가지고 가렴


엄마는 책장 서랍 한편에서 낡은 앨범 하나를 꺼내어 내게 건넸다. 나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추억의 사진첩. 왜 가져가라고 하는 건지 영문을 모른 채 나는 앨범을 받아 들었다. 나와 남편 그리고 딸과 함께 천천히 앨범을 넘겨보았다. 신생아 시절부터 초등학생까지 나의 역사가 그곳에 담겨 있었다. 아이는 그곳에 있는 아기의 모습이 낯선지 누구냐고 계속 묻는다. 엄마라고 대답해줘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다. 아이에겐 엄마가 아기였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일 테니까. 

.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는 엄마였다. 엄마에게도 꽃 같은 청춘이 있었고 하루 종일 거울만 바라보던 소녀 시절이 있었고 철부지 응석받이였던 유년 시절이 있었다는 걸 내가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성장하는 동안 엄마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엄마는 엄마의 자리에서 티 나지 않게 흔들리고 있었고 고달픈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었다. 나는 내 삶을 살아가느라 바빴고 그런 엄마를 알아봐 주지 못했다.





스물여덟. 엄마는 엄마가 되었다. 얼굴도 예쁘고 똑똑했던 엄마가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고 그렇게 잘나지도 않은 남자와 결혼해서 온갖 시집살이를 견뎌내야 했던 그 시절. 나보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엄마는 나를 안고 반지하 셋방에서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 앨범 속 나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 예전엔 ‘우와 우리 엄마가 이렇게 젊고 예뻤네’ 감탄만 했었는데, 아이를 낳고 다시 본 사진 속 엄마의 모습이 어쩐지 서글퍼 보인다. 나를 안고  있는 어색한 표정 속에서 불안함과 고단함이 읽힌다.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다 지친 나는 울면서 속으로 물었다.


‘엄마, 엄마도 이렇게 힘들었어?’


엄마가 된다는 건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일이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순간에 늘 엄마가 생각난다. 나 역시 엄마를 눈물짓게 하는 날이 수없이 많았겠지? 아이의 재롱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내 모습에서도 엄마를 본다. 엄마도 날 바라보면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웃었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 곧 초등학교에 갈 테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바빠지겠지. 어느 순간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꾸려나갈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서운해진다. 엄마가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OO이네 엄마는 OO이랑 주말에 둘이 자주 놀러 다닌 대. 너는 주말마다 집에 붙어있지를 않는구나.”

나는 엄마의 서운한 마음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쏘아붙였다.

“청춘이 집에 붙어있는 게 정상이야?”



난 엄마에게 나름 다정하고 애교 많은 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다. 엄마와 단둘이 데이트를 해본 기억도 많지 않고, 여행을 가본 적도 없다. 딸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던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틈만 나면 친구를 만나거나 연애하기에 바빴다. 훗날 내 딸도 그럴 거라 생각하니 어쩐지 섭섭하다. (그래서 엄마들이 나중에 너 같은 딸 낳아보라고 악담을 퍼붓나 보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았을지 모르겠다. 자식을 온전하게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를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엄마는 수없이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았다. 기꺼이 자기 자신을 내어놓아준 엄마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살아내고 있는 건 아닐까.



      


“네가 어떻게 벌써 애 둘 엄마가 되는 거니..”


곧 아이 둘의 엄마가 될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이 슬프다. 엄마의 눈에는 내가 여전히 어린아이로 보이겠지? 아이 둘을 키우며 정신없이 살아온 엄마, 행복했지만 고단했던 자신의 세월을 똑같이 살아갈 딸의 모습에 엄마는 여러 감정이 오가는 것 같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도 엄마처럼 잘 해낼 수 있어요.
엄마가 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지만 행복해요.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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