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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vi Mar 08. 2021

은행과 은행을 오가는 돈, 어떻게 움직일까?

[계정계 금융IT 기초 - 대외업무#1] 금융공동망

(본 내용은 금융 IT에 새로이 입문하려는 친구들을 위한 글로서,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끔,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과장으로 점된 글입니다. 현실의 History와 아주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멜론은행 ATM에서 키위은행 계좌에 입금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키위은행은 ATM으로 송금이 안된다고, 창구를 찾아가야 한대요!


 필자가 아주 어렸을 적, 부모님 몰래 인터넷에서 만화책을 주문하고 ATM을 통해 입금하려다가 겪은 눈물겨운 실화다. 요즈음이야 CD/ATM은 물론이고 스마트폰 뱅킹, 웹 뱅킹, 오픈뱅킹, 온갖 지급결제 수단들이 일상화된 마당인지라, 타행 입금이 곤란한 상황은 상상조차 가질 않는다. 하지만 불과 90년대 후반, 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ATM을 통한 무통장 송금은 되는 은행보다 안 되는 은행이 더 많았다.


 어떤 은행은 되고, 어떤 은행은 안 돼. 왜? 은행이 서로 사이가 나빠서?


 위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은행 간에 자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대략적인 키워드들을 알 필요가 있다. 깊이 파면 온갖 용어들이 튀어나오지만, 기초 편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세 가지. 금융결제원, 참가은행, 그리고 한국은행이다.

 은행이 다른 은행에게 자금을 전달하려고 할 때, 우리가 상상하는 모양새는 대략 이렇다. 양복 입고 선글라스 낀 아저씨들이 서류 가방이나 시커먼 금고 트럭에 돈을 차곡차곡 실어서 옆 은행으로 보낸다. 물론, 트럭을 호위하는 두어 대의 순찰차와 무장 차량은 덤이다. 꽤나 낭만적인 그림인데다가, 실제로 그 비슷하게 돈을 옮기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은행 간 이체가 발생할 때마다 트럭과 순찰차들이 움직였다간 테헤란로 왕복 10차선 도로는 은행들의 트럭들로 꽉 차버리고 말 거다. 별로 낭만적인 그림은 아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해서, 각 은행들은 트럭 없이, 전산 상으로 서로 돈을 왔다갔다 옮기기 위한 그림을 그렸다. 때마침 은행들은 서로 간의 어음을 교환하기 위한 어음교환소도 있었고, 나라에 유일한, 꽤 그럴싸한 중앙은행도 있었다. 남은 건 은행들이 서로 약속해서 앞으로 우리는 자금 교환을 위한 요 규칙에 참가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 뿐이었다.


 그림이 그려지자, 이후는 일사천리. 어음교환소는 금융결제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나며 자금 교환의 중계를 자청하고, 여러 가지 전산 규칙들을 마련했다. 한국은행이라는 이름의 고매한 중앙은행은 이미 각 은행들의 중앙 계좌(나중에 서술하겠지만, 이 계좌는 지급준비계좌라는 당좌 계좌이다)를 관리하고 있었으므로,

 기꺼이 은행 간 자금 이체에 이 계좌를 사용할 수 있게끔 허락했다. 은행들은 이 새로운 룰을 따르면 더 이상 돈을 옮기는 트럭 기름값에 돈을 쓰지 않아도 될 테니까, 참가은행이라는 신분으로 금융결제원의 전산 규칙에 동의하고 나섰다. 그리고 은행들과 금융결제원이 약속한 이 돈덩어리 클럽하우스를 "금융공동망"이라고 이름붙였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금융공동망을 여러 개 만들었는데, ATM을 통해 이체가 발생할 땐 CD공동망, 창구를 통해 이체가 발생할 땐 타행환공동망, 웹이나 폰으로 이체가 발생할 땐 전자금융공동망 등. 새로운 규칙들을 만들고 아주 괜찮은 이름을 붙였다.


 이제 은행들은 더 이상 테헤란로의 트럭들로 돈을 옮기지 않는다. 다만 테헤란로 왕복 10차선 도로보다 훨씬 쾌적하고 빠른, 금융결제원 전산망을 통해 이체가 발생했음을 서로에게 알릴 뿐이다. 금융결제원은 그 정보를 보관하고 있다가, 다음 날 한국은행에 "요 은행은 저 은행에 이만큼 돈을 줘야 해요"라고 보고하기만 하면 된다.


 자, 그럼 위 질문들에 대해 답변이 될 수 있는지 보자.


 어떤 은행은 되고, 어떤 은행은 안 돼. 왜? 은행이 서로 사이가 나빠서?


 물론 정말로 사이가 나빠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설마 어른들이 그렇게 쪼잔할까. 그냥, 이런 거다. 되는 은행은 금융공동망에 참가은행으로서 참여하고 있는 거고, 안 되는 은행은 금융공동망의 참가은행이 아닌 거다.



멜론은행 ATM에서 키위은행 계좌에 입금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키위은행은 ATM으로 송금이 안된다고, 창구를 찾아가야 한대요!


 정말 안타깝게도, 키위은행이 ATM 거래의 금융공동망인 CD공동망에 참가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그 날의 Ravi는 낯가림을 무릅쓰고 창구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 손 잡고 오라는 창구 직원의 말에 좌절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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