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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vi Mar 09. 2021

은행의 데이터는 전문에 실려 원장의 품으로

[계정계 금융IT 기초 - 공통용어#1] 전문과 원장

(본 내용은 금융 IT에 새로이 입문하려는 친구들을 위한 글로서,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끔,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과장으로 점된 글입니다. 현실의 History와 아주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최 계장, 원장에 쌓인 데이터를 뽑아보니까 전문 레이아웃이 아예 다른 것 같아. 채널 단 로그 뒤져서 실제 전문 IO를 설계서대로 파싱해봐.


 키위은행 IT지원부 최 계장은 과장의 지시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불과 입행한 지 보름 밖에 되지 않았건만, 사수는 하도 바빠서 온종일 여기저기 불려다니는 통에 얼굴도 까먹을 지경. 내선 전화를 개통하자마자 불떨어진 듯 울려대는 수화기는 영업점의 온갖 히스테리를 아무 내성 없는 그에게 고스란히 들이붓는다.

 그래도 학부 시절엔 꽤 한다는 소리 듣고 다녔는데, 이놈의 생소한 금융 용어는 어떻게 되먹은 건지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는다.

 좀 더 알기 쉽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라는 물음이 쉽게 입 밖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거다. 엊그제 "수, 수신이 뭔가요?" 하고 물었을 때 짙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리던 과장의 혼잣말이 가슴에 콕 박혀서다. "너 대체 어떻게 입행했니..."


 최 계장의 잘못이 아니다. 금융IT 용어, 미치도록 생소하고 어려운게 지극히 정상이다. 처음엔 부장도 몰랐고, 부부장들도 몰랐고, 차장과장대리들 다 몰랐고, 지금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게 더 많을 거다.

 원래 금융 도메인이 돈 다루는 거라 좀 폐쇄적이잖아요, 이런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깟 금융전산 용어 몇 개 알려진다고 사고가 빠바방 터지는 것도 아니며, 그깟 용어 몇 개 숨긴다고 장애가 극적으로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치들은 바쁘고 귀찮았을 뿐이다. 본인들도 누구 하나 제대로 알려주는 이 없이 그렇게 눈물젖은 편람을 베고 커 왔으니, 요즘 행원들도 그렇게 크는게 맞다는 생각이던가.


 최 계장은 한숨과 함께 마음을 가다듬는다. 별 수 없다. 알려주는 이 없으면, 찾아야 한다. 정답은 아니더라도 최대한 정답에 근접한 정의를.


대체 원장이 뭐야?


 최 계장도 이건 얼추 알고 있다. 아주 쉽게 생각해서, 원장은 테이블이다.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계좌번호나 고객번호처럼 기준 정보를 PK로 갖고 있는 마스터성 테이블을 원장이라고 일컫는게 정답이지만. 뭐, 대충 내역성 테이블이든 관리성 테이블이든 대충 다 원장이라고 뭉뚱그려서 말하고들 있으니, 원장=테이블이라 여겨도 무리는 없다.

 그럼 과장의 저 암호 같은 지시의 절반은 이해가 된다. 모 테이블에 데이터가 이상하게 들어갔다는 얘기겠구나.


전문은 또 뭐야?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최 계장은 전문이라는 단어가 당최 익숙해지질 않는다. 뭔가 데이터를 의미하는 것 같긴 한데,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학부 시절 만지작거리던 프로젝트는 그냥 파라미터에 담아서 메소드를 호출하거나, 좀 고급진 건 API를 통해 피어 간 데이터를 교환하곤 했다.

 그렇다면, 은행은? 은행은 어떤 방식으로 시스템 간 데이터를 교환할까? 최 계장은 본인이 이미 정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은 수많은 단위 시스템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코어한(?) 계정계, 뭔가 데이터를 가지고 이것저것 하는 정보계, 영업점 창구나 콜센터에서 사용하는 단말, 어딜 가든 있는 24시간 ATM, 모바일 뱅킹 앱, 웹 뱅킹 홈페이지 등등등...

 이렇게 은행을 구성하는 수많은 시스템들이 있고, 이 시스템들은 채널이라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그 통로가 수용하는 영역에 따라 MCI, EAI, FEP라는 이름을 통로에 붙이지만, 일단 여기서는 논외.


 아무튼 이 통로들을 지나는 데이터들은 모두 전문이라는 이름의 그릇에 이쁘게 담겨 동한다. 당연히 그릇의 모양새는 모두 다르고, 데이터를 그릇에 어떻게 담을지에 대한 규칙 또한 필요하다. 규칙이 없다면, 그릇을 받아들고 포장을 뜯었을 때 안에 뒤죽박죽 섞인 내용물이 대체 뭐였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 테니까.

 이렇게 그릇 안에 데이터를 담는 규칙을 레이아웃이라고 부른다. 또한 레이아웃을 비롯해서 전문의 규격, 통신 방법, 장애 대책 등 전문을 주고받기 위해 필요한 규칙들을 상~세히 적어 둔 문서를 설계서라고 총칭한다.


 여기까지 성공적으로 도달한 최 계장은 막막하기만 하던 과장의 지시가 본인에게 무얼 요구하고 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종의 이유로 테이블에 데이터가 이상하게 들어갔으니,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은행의 시스템들을 연결하는 통로에서 전문을 찾아 레이아웃대로 데이터를 쫙 나열해 보라는 의미겠구나.

 이제 뭘 찾아야 하는지까지 알게 되면 베스트다. 최 계장은 우선 세 가지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포스트잇을 꺼내든다.


 맛 간 데이터가 들어간 테이블명.

 채널 단에 찍힌 로그 내용.

 전문의 스펙을 명시하고 있는 설계서.


 나른한 오후가 길게 느껴질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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