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내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 나는 다른 삶을 갈망하는 것을 멈추고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성장을 위한 초대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찰리채플린
‘나는 나를, 그리고 당신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은 신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깃든 신성함을 어떻게 발견하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지? 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정말 찾고 싶었다. 아무리 나를 사랑하려 해도 너무 못난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고, 아무리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 해도 나에게 상처만 준 것 같은 당신을 결코 사랑할 수 없었기에.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내적 풍요로움을 간절히 갈망해 온 내 안의 욕망은, 나로 하여금 지금의 나 자신과 용감하게 마주할 용기를 주고 치유할 수 있는 과정으로 지금도 계속 이끌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잠시 돌아보니 소중하지 않은 어떤 한 걸음도 없었다. 스스로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흑역사라 치부했던 그 순간조차도, 지나고 보니 그 경험들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성숙했더라. 그러면서 현재 각자가 처한 다양한 상황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힘들어하는 누군가도 분명 모두 이러한 성장의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점차 알게 되었다.
이렇게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성장을 위한 초대’임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래서 스스로에게 실패하고 좌절할 권리를 주고 훗날 그것이 지혜와 용기의 발판임을 알게 된다면, 가끔 삶에서 미끄러져도 이전처럼 그렇게 아프진 않으리라.
사람은 그 존재 자체로 누구나 신성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세월이 던져준 비바람을 견뎌낸 단단한 내공에 물리적 시간의 힘이 곱해져서 이뤄낸 중년의 신성함은 또 다른 차원의 쾌거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섹시함이 있을까?
아마도 진정한 섹시함은 조건 없는 사랑과 무한한 연민으로 나와 타인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그 마음 어딘가쯤에, 그래서 한결 부드러워진 마음의 문을 열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그 발걸음 어딘가쯤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지금 나는 다시 내게 묻고 답해본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나는 아직, 나에 대한 온전한 사랑이 부족한 것 같다. 나에게는 아직도 당신에게 인정받고 싶은 갈증이 있으며, 오랫동안 맹목적으로 믿고 따랐던 오해와 선입견으로 인한 수치감, 죄책감, 열등감이 여전히 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가?
나는 아직, 당신에 대한 사랑이 턱없이 부족한 것 같다. 나에게는 아직도 당신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며, 오랫동안 근거도 없이 들이댔던 당신에 대한 무자비한 판단과 평가의 기준이 고스란히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난, 나 자신도 당신도 맘껏, 사랑해 보고 싶다. 그렇게 이 삶을 맘껏,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더, 섹시한 청춘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