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디자인과 미래]06. 가상세계의 혁신이 가져올 미래①
'인공지능에 의해 사라지는 일자리'가 메인 뉴스로 등장할 만큼, 우리는 기술에 인간이 밀린다는 불안감, 패배주의, 비관주의, 당혹감으로 2020년을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발발한 코로나 19 사태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충격적인 방식으로 전개되며 인류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판데믹(pandemic,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사태를 의미하는 말 )'의 전조증상인가?
불편한 상상을 굳이 하고 싶진 않지만 이미 그 불편한 상상들이 너무 갑작스럽게 현실이 되어버리고 있는 것 같아, 사실 난 두려움과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
현실적으로 자영업자들은 이미 벼랑 끝으로 내몰렸고, 처우가 좋아 꿈의 직장으로 불리던 회사들도 잇단 구조조정을 발표하고 있다. 마치 저항할 수 없는 수준의 기습공격을 받고 있는 듯한 무력감이 내 뼈를 파고들고 있다. 그리고 더 두려운 사실은 이것들이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코로나 19 사태 이전에, 이미 전 산업계의 지형을 뒤흔들만한 충격적인 변화는 이미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앞으로 정부나 기관의 대처방식은 지금의 충격적이고도 기하급수적인 변화를 제대로 감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1주일 전 지갑을 하루 동안 분실했다. 분명히 퇴근길에 교통카드로 버스 하차태그를 찍고 카드가 든 지갑을 가방에 넣었는데, 다음날 출근하려 보니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지갑을 분실했던 나의 24시간은 멘털부터 모두 마비상태가 됐다. 그리고 약 한 달 전 스마트폰을 집에 놓고 출근을 했던 그날 역시 나의 일상은 거의 마비됐다.
이처럼 이제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일 중 하나는 우리의 거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는 일이 됐다. 우리가 남긴 모든 것이 클라우드와 소셜미디어에 업로드되고 기억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우리의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어쩌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을 수도 있을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아이폰의 도약을 이끌었던 아이폰4 , 일상을 업로드하는 인스타그램, 승차 공유 서비스 우버, 날마다 친구와 소통하는 카카오톡이 2010년 나왔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능은 2014년에, 구글 포토는 2015년에, 알파고는 2016년에 나왔다. 그리고 2013년 상장된 페이스북은 2019년에 전 세계 사용자 25억 명을 기록했다.
무수한 기술이 쏟아지며 우리의 일상 곳곳을 근본적으로 바꿔낸 2010년. 아마도 미래 인류는 2010년을 바라보며 인류 역사상 가장 예외적이고 특별한 기술 혁신의 시대라 부를 것이다.
우리는 이제 쉼을 위해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할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가고, 멋진 사진을 올리기 위해 벼랑 끝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는 위험을 자초한다. 이렇게 소셜미디어는 인간의 행동양식을 바꾸어 나갔고 불과 10년 전에는 자연스럽지 않았던 행동이 너무 당연해졌다.
기계를 더 의식하고 의존하게 된 우리는 과연 더 자유로와 졌을까? 인간에게 더 편리하게 된 것일까?
우리에게 닥친 변화는 단순히 무수한 혁신 기술의 등장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급기야 인간의 판단보다 인공지능의 판단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기계가 인간이 지성을 초월하는 싱귤래리티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쏟아지고 있다.
지난 2016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문명사적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바로 알파고와 인류 최고의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대국이다. 이는 인공지능이 더 이상 인간이 지시한 대로 입력하기를 거부하며 인공지능의 초월성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미 인간의 많은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들어서고 있다. 최근 야구경기에서 AI심판의 판단을 테스트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인공지능 심판의 결정에 불복한 인간 심판이 쫓겨난 사례가 있다.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차가 어딜 가서 얼마나 머물러야 하는지 명령하는 알고리즘인 프레드 폴의 예측 정확도는 70%가 넘는다. 기업에서는 AI면접관도 도입하고 있다.
이제 비인간 지능은 판단 권력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우리는 기계 판단 과정을 알지도 못한 채 그 결과를 맹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판단력을 넘어서는 시대. 가상의 권력이 현실의 권력이 되는 시대. 이러한 기술이 인간성 자체를 바꿔나가고 있는 시대.
이 시대에 살아가는 인간은 유일한 지능적 존재라는 믿음이 위기에 몰렸다.
작금의 기술적 혁신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화폐'시장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혹시 조개껍질로 사람의 생명과 사랑도 살 수 있었던 그 옛날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가? 이제는 돈이 손에 잡히는 물질이 아닌 디지털 신호로서 재탄생하고 있다. 믿음이 있는 곳에서 가치가 생겨나면서 인터넷에서 태어난 가상화폐가 그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비트코인은 중앙 집권화된 관리자가 필요 없는 암호화폐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정부와 은행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달할 무렵 등장했다. 마찬가지로 지난 2018년 터키 리라화 폭락사태는 터키에서 가상화폐가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스스로 붕괴될 수도 있는 경제시스템을 보며 화폐에 대한 신뢰가 비참히 붕괴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안정성이 극단으로 치달아 더 이상 국가가 지켜주지 못할 경우, 사람들은 결국 국가를 넘어선 돈, 인터넷 화폐에 의탁하게 된다. 이처럼 가상화폐는 경제사정이 불안정한 국가에겐 위협적 화두다.
또한 모든 정부는 '현금 없는 사회' 정책을 추진하며 실물이 사라지게 하고 있는 추세다. 많은 기업들은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이미 리브라라는 자체 화폐를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승차 공유 기업 우버는 우버 머니라는 가상화폐 프로젝트를 발표했으며, 옆 나라 중국은 디지털 위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각 기업의 이러한 행보는 비단 해당 산업의 생태계뿐 아니라 현실의 경제 생태계를 단일 화폐로 통일하려는 움직임이다. 이에 가상의 경제 생태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패권다툼은 이미 예고되어 있다.
이제 원화 등 각국 화폐의 가치, 현실의 돈은 큰 의미가 없어지며 경제의 주도권은 디지털 통화, 가상 화폐로 넘어가고 있다. 화폐정책을 통해 모든 거래의 신뢰성을 보증했던 국가의 고유한 권한은 소셜미디어 기업으로 그 권한이 이양되고 있다.
이렇게 앞으로 디지털 화폐는 현실의 경제생활을 대체할 것이다. 점차 화폐를 경계로 한 영토 개념은 서서히 희미해질 것이고, 기존에 해당 권력을 장악하던 은행과 정부는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위 세부 팩트들은 KBS 다큐 인사이트 <보일링 포인트>에서 다수 인용하였습니다.
(다음 글 : 가상세계의 혁신이 가져올 미래② - 미래는 과거와 결코 같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