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과거의 생존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휴먼 디자인과 마래]03. 미래 생존을 위한 갑옷, 휴먼 디자인

by 라비스망

이제,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로 존재한다


오래전 내가 즐겨봤던 드라마 중에 종영된 <명불허전>이라는 tvN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에서 배우 김남길은 15세기 조선 명의 '허임'을 연기했다. 조선사람인 주인공 허임은 21세기 서울로 시공간을 이동하면서 생전 처음 목격하는 현대의 문물에 적응해나가는 어리둥절한 과정을 연기하며 내게 많은 웃음을 줬다.


지금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는 마치 조선 혜민서에서 침술로 치료하는 것에 익숙한 허임이 어느 순간 현대로 날아와 의료 로봇으로 정밀한 의료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에 비견될 만큼, 실로 정신 차리기 힘들 정도의 아찔한 속도다.


지금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들이 실제로 10년 뒤가 되면 아무 쓸모가 없어지는 세상이 온다는 말처럼,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의 속도를 비유해 지금을 '격변의 시대'라 부르고, 이제는 더 이상 조부모나 부모세대의 과거 경험으로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기에 또한 '불확실성의 시대'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렵고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이스라엘 학자 유발 하라리의 저서「사피엔스」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이제,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로 존재한다"


■ 이제, 더 이상 과거 생존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격변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지금 정보화 사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그 방향성이나 파급효과 자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섣불리 이 질문에 답할 수도 없고 정답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반드시 답을 찾아야만 하는 어려운 상황에 우리는 처해있다.


농경시대에는 농사를 잘 짓고 어르신 말씀을 잘 들으면 잘 살 수 있었고, 산업화가 진행됐던 시절에는 공장에서 일할 사무능력을 갖추고 과장님, 부장님 말씀을 잘 들으면 노년까지 잘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피부로 느끼고 있듯이 집안의 어르신이나 공장의 부장님이 생존했던 과거의 공식이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 세상이 됐다.


다가 올 (혹자는 2차 정보혁명이라고 부르는) 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hyper connectivity)과 초지능(super intellgence)을 기반으로 빅데이터 기술, 인공지능 기술, 네트워킹 기술(5G) 들의 융복합으로 인해 산업 간의 경계가 급속도로 허물어진다. 그리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잇는 기술이 발전되면서 전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충분히 가져올 수 있을만한 수준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혁신적 변화는 기존 약 4백 년 동안 일어났던 산업혁명보다 더 광범위하고 빠른 속도로 우리 일상 곳곳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측이다.


얼핏 뭔가 그럴싸해 보이긴 하지만 뜯어보면 구체적인 대책도 없이 근본적인 변화라는 둥, 빠른 속도라는 둥, 누구나 읊어댈 수 있을 만한 예측을 듣고 있자니 도움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이러한 예측이 무슨 예측이냐고 반문하고 싶을 정도다.


■ 이제, 스스로가 혁명되어야 한다


이러한 예측 아닌 예측에 걸맞게 그동안 인간이 일궈낸 찬란한 문명은, 우리가 만든 인공지능이 사람의 통제권을 벗어나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처럼, 우리의 통제와 상관없이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되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리플리컨트(인조인간)의 이야기로 인간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디스토피아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우울한 세상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을 일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오늘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내일 일어나는, 매일매일이 혁명인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거대한 변화를 수용하고 더 나아가서는 스스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어쩔 수 없이 스스로가 혁명되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떠안게 됐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철도산업의 확장과 함께 산업혁명을 일으킨 18세기 영국에서는, 맨 처음 증기 기계가 나왔을 때 이것이 사람의 일자리를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증기기관을 파괴했던 사건이 있었다. 새롭게 출현한 증기기관이 나에게 위협요소로 판단되어 그것을 파괴한다고 한들, 혹은 변화가 너무 두려워서 땅에 머리를 묻어 눈을 감고 증기기관을 보지 않는다고 한들, 영국에서 철도가 깔리지 않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빠른 속도로 불확실성을 향해 급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일단 통제할 수 없는 이 거대한 변화를 겸허히 수용하고 어떠한 것이 다가오고 있는지 예리하게 촉수를 세워 이 시대의 변화를 읽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적응을 못한 대다수는 어느 순간 변화의 풍랑에 휩쓸려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에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기존의 고집과 아집을 스스로 버리고 스스로 혁명되어야 할 필요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왜 개인이 혁명되어야 하는가? 에 대한 당위성은 두말할 것도 없이'생존'이다. 사실 생존보다 더 긴급하고 근본적인 어떤 것은 없다. 일단 살아남지 않고서는 다른 어떤 것들을 논할 여지도 없기 때문이다.


'생존'. 이 말이 참 무겁게 다가온다.


■ 미래 생존의 대안, 휴먼 디자인

그렇다면 개인은 어떻게 혁명될 수 있는가?


개인의 혁명을 이야기하기 앞서, 휴먼 디자인은 지금의 전 세계적 변화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휴먼 디자인은 누구나 피부로 느끼지만 아무도 제대로 분석하지도 설명해내지도 못한 채, 지금 인류가 처한 현 위치를 글로벌 사이클(Global Cycle)이라는 개념을 통해 단순 명쾌하게 설명한다.


휴먼 디자인에 따르면 프로그램(program)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약 400년 단위로 특정 테마로 조건화(conditioning) 시킨다.


현재의 시점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모든 사람이 결속하고 논리에 기반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눈부신 문명을 일군 '계획의 시대(cross of planning, 1615~2026)'의 막바지다.


그리고 이제 불과 7여 년을 앞둔 2027년을 시작으로 그동안 나의 손을 잡아주고 나를 먹여주고 돌봐주던 가족, 종교, 공동체의 붕괴와 함께, 누구나 자신을 먼저 책임지고 돌보는 개인 생존의 시대인 '잠자는 불사조의 시대(cross of sleeping phoneix, 2027~2438)'로 진입하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곧 영향을 받게 될 이 사이클에서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심(selfishness)'이 주된 테마로, 각자 혼자 알아서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을 찾는 '각자도생'의 패턴이 가속화된다.


혹자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이 사회를 두고 인간성 말살이니 뭐니 하면서 개탄하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가 보고있는이 같은 현상을 우리의 전략, 의지, 노력, 인성 등과는 전혀 상관없이 프로그램이 연출하고 감독한 무대라는 관점으로 해석하다 보면 참으로 힘이 빠지는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휴먼 디자인은 그동안 우리를 지탱했던 모든 논리와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이제 서로가 그 누구도 돕지 않는 극도로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을 말해준다. '오직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여전히 추상적으로 들린다.


휴먼 디자인은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한 솔루션인 '전략'과 '권위'가 다가오는 미래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갑옷'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종말론도 아니며, 누군가를 공포에 떨게 하려고 의도한 것도 아니다. 휴먼 디자인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저 우리들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생존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그러니 나처럼, 지금 살고 있는 현재에 답이 없다고 느껴서, 또 다른 미래 생존의 대안을 절실하게 찾고 있는 사람이라면 휴먼 디자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천천히 귀를 기울이고 음미해보길 권한다.


그래서 앞에서 했던 질문, '개인은 어떻게 혁명될 수 있는가'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는 삶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길 바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어느 순간, 급격하게 몰아치는 변화의 풍랑에 한 순간에 휩쓸리기 전에 말이다.


나와 당신의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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