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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스망 May 30. 2021

두 사람이 만나면 새로운 생명력이 만들어진다

[파트너십]06. 관계의 덫 ③

■ 관계의 메커니즘 


낫 셀프 세상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게 되는 건,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누군가가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경우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더 잘 살고 싶고 더 행복하고 싶어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건, 낫 셀프끼리 모여서 낫 셀프를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이 말에 누군가는 강력한 비판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러한 것 같다.  


어쨌든 이 세상을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우리들은 관계를 맺을 때 서로의 아우라를 통해 이루어지는 메커니즘(mechanics of relationships through the quality of our auras) 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우선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관계의 고통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들 만날 때, 즉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아우라가 합쳐지고 통합될 경우에는 혼자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이 작동된다.


일례로 내 친구 중에 결혼하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린 친구가 있었다. 사람이 변해도 너무 변해서 '어떻게 저렇게까지 사람이 바뀔 수 있을까'라며 그 당시 참 의아했었다. 알고 보니 부부 사이의 아우라에서 작동된 또 다른 메커니즘이 그 친구를 이전에 내가 알던 사람과는 다른 존재로 만들어버린 경우였다. 


이처럼 부부, 연인과 같은 긴밀한 관계(partnership)에서 두 사람이 서로 만나 아우라가 겹치게 되면, 혼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마치 빨간색과 파란색을 섞으면 빨강도 파랑도 아닌 보라라는 전혀 다른 색깔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는 1과 1의 단순한 합인 2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서 생명체라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 만들어지는 양자적 변화(quntum jump)처럼 서로의 아우라 안에서 '나'와 '너'의 단순한 합을 뛰어넘는 새로운 생명력(something else) 이 만들어지게 된다.  


■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그렇다면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만들어지는 또 다른 생명력에서 발생하는 일상의 수많은 위기와 도전 과제는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몇 년 전 <사랑과 전쟁>의 다큐 버전처럼 느껴지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었다. '이상한 나라'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도대체 며느리는 왜 이상한 나라에 살게 되었을까? 


알고 봤더니 대한민국의 가족문화를 다룬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솔로였던 여자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시월드'라는 '이상한 나라'에서 수많은 책임과 희생을 요구당하게 되는 불합리한 관행을 도발적으로 폭로한 프로그램이었다.


대부분 권력과 서열에 따라 한쪽 누군가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뜻을 밀어붙이고, 다른 한쪽의 누군가는 일방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모습들을 주로 그리며, 가족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관계상의 도전과제를 전지적 관찰자 시점에서 현실감 있게 보여줬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애초에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더 크리라는 기대를 품고 짝을 이루었지만, 오히려 싱글일 때보다 더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이상한 나라에서 더 무력해지고, 더 짜증스럽고, 더 불만족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 프로그램이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한 생각을 묻자, 제작진은 '결혼은 사랑이 아닌 현실'이라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깨달아야 이상한 나라에서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본래 이 프로그램의 취지는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되짚어보며, 서로의 다름에 대한 인정과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한다. 


■ 이상한 나라에서 행복한 나라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이상한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사랑과 전쟁'과 같은 막장 드라마를 찍고 있는 사람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며,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상대를 네 생각대로 '통제'하려는 시도를 '멈출 수' 있겠는가? 더 나아가서 타인의 인정과 사랑의 갈구함 없이도 스스로  '완전'하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너무 식상하고 당연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관계 속에서 맞이하게 되는 수많은 도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궁극적인 솔루션은 이 당연한 질문에  기꺼이 '네'라고 답할 수 있는 각자의 '마음가짐', '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상한 나라가 아닌 행복한 나라에서 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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