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두 개의 부서진 마음이 있다. 하나는 베란다에 놓인 하얀색 플라스틱 분리수거함이고, 다른 하나는 거실 한쪽에 놓인 커다란 빨래통이다.
세탁기 멜로디 소리에 부리나케 빨래를 꺼내러 베란다로 직진하다가 코너에 놓인 빨래통을 덥석 집어든다. 빨래통은 제법 깊고 커서 양쪽에 손잡이가 있는데, 그 생김새가 진짜 라탄은 아니고, 라탄을 흉내 낸 짜임에 브라운 색을 입혀 놓은데다 지금은 없지만 원래 건실하게 생긴 뚜껑까지 있었다. 이름은 빨래통이지만 뚜껑이 멀쩡하게 붙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제법 고급스럽게 보이는 수납함 같았다. 이 뚜껑이 떨어져서 고급미가 살짝 바랜 빨래통을 들고 베란다로 가서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려면 꼭 내 발에 체이는 녀석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세탁기 앞에 놓인 하얀색 플라스틱 분리수거 함이다. 이것도 빨래통만큼이나 제법 깊고 큰데, 딱히 놓을 곳이 마땅치 않아 세탁기 앞에서 항상 대기 중이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 나와 남편은 아주 사소한 말다툼이 원인이 되어 서로 마음이 적잖이 상할 때가 있다. 대체로 퉁명하고 성의 없이 대답하는 나의 태도가 남편에게는 어느 날 봇물 터지듯 서운함으로 나올 때가 있고, 나는 때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 오기 아닌 오기를 부리다 분노 조절 실패로 우울이 터져 나올 때가 있으니, 아무리 함께 한 20년 세월이 길다한들 우리는 서로의 속을 아직도 까 - 맣게 모를 때가 많다.
더러 내가 뒤늦게 그이의 진심을 알고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등을 쓸어 주면, 그는 온순한 소(정말 소를 닮았다)처럼 그냥 웃어 넘겨주는 참 마음이 넓고 깊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줄을 알면서도 가끔 그이의 목소리도 듣기 싫을 때가 있는데, 그도 내가 미울 때 어느 지경까지 싫어봤을지는 안 물어봐서 모르겠다.
별로 안 궁금하다.
어쨌든 그 덕분에 망가진 두 개의 애먼 물건이 있었으니 세탁실의 분리수거함, 거실의 빨래통이다. 어떤 날 나는 푹푹 화가 치밀다 말다를 반복하다, 끝내 못 참아져서 아마도 빨래통을 밀어 버렸던 거 같고, 어떤 날 남편은 서운한 마음을 미처 다 삼키지 못해 세탁실 앞에 분리수거함 뚜껑을 세게 닫아버렸다고 했다. (본인이 부섰다고 이실직고하셨다)
부술 것이 비싸고 중한 것이면 안 되겠으니, 가장 하찮고 티도 덜나는 것에 괜한 분풀이를 했겠지만, 언젠가부터 뚜껑이 덜렁거리는 분리수거함과 심지어는 아예 뚜껑이 없어진 빨래통, 그 둘은 덜 여문 우리의 마음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티를 내고 남아 있다.
나는 그 두 마음을 볼 때마다 그때의 치기 어린 내 어린아이가 보이고, 아픈 거 힘든 거, 마음으로 잘도 삼켜오던 남편의 목에 걸린 외로움이 보인다. 그래서 그런가, 어딘가는 깨지고 부서졌어도 완전히 망가진 것은 아니니 둘 다 버리지를 못 하겠다. 낡고 부서졌어도 여전히 제 몫을 하는 이 빠진 그릇 같은 두 마음을 그냥 곁에 두고 싶다.
그래도 그 두 개의 마음이 서로를 밀치지 않고 여전히 젖은 빨래를 담아 주고, 버려질 것들을 깨끗이 모아 제 몫을 하고 살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채워져야 사람이 사는 집이고, 그만큼 비워져야 계속 살만한 집이 되듯, 우리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 아름답고 즐거운 에피소드를 20년째 채우고 비우는 중이다. 하나하나 엮어 온 세월이 주름만큼 깊어질수록 우리도 깊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