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을 쳐다보다 막내를 생각한다. 어질러진 막내 책상 위에 달달한 딸기향이 남아있다. 제자리를 못 찾고 방바닥에 막내 흉내를 내며 드러누워 버린 츄리닝 바지가 어설프게 주인 없는 티를 낸다. 막내가 기숙사에 간 지 채 일주일이 안 되었는데, 아이 없는 시간이, 텅 빈 방이 그저 길고 쓸쓸하고 쓸쓸하다. 말없이 적어 두고 간 쪽지, 그 안에 담긴 속 깊은 어린것의 마음이 울컥, 목에 걸린다.
"시는 마음의 거울이지요. 그는 기교 있는 시는 쓸 수 있어도 마음을 울리는 시는 쓰지 못할 겁니다. 그는 그걸 모를 겁니다. 그는 혼자가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잘해 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잘 안 되는 일도 어려운 일도 뒤집어 보면 실상 하기 싫은 일이었다. 몰입도 흥미 없이는 어렵지 않겠나. 발 빠른 제이는 부장의 입맛에 요리조리 맞춰 귀염 받을 상이다. 반면 속으로 토하고 묵묵히, 덤덤히 버티는 나 같은 부류에게는 적극적이지 않다는 피드백이 종종 돌아온다.
내가 수능 보기 백일 전, 나의 아버지는 딴 식구가 생겨 홀연히 집을 나갔다. 그때부터 나의 세상은 내게 더 이상 호의적이지 않았다. 나의 20대는 아버지의 부재, 이른 결혼, 가난과 결핍, 의무와 책임의 짐을 지고 가는 무겁고 외로운 나날이었다.
"저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야 그런 글을 쓸 수 있을 테니까요. 정직하게 살고 싶어요. 그런데 그럴수록 자꾸 마음이 다쳐요."
가방, 그 속에 돌덩이 몇 개쯤 들었을 것 같다. 너는 항상 괜찮다고 말하지만 묵직한, 벽돌 짐 같은 네 가방이 나는 매우 안쓰럽다. 버스에서 너와 통화를 하다가 끊겼다. 기숙사에서 쳇바퀴 도는 일상이 만만할 리 없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우리는 모두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나고 있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정류장에 누가 서 있었으면... 하고 물끄러미 정류장을 둘러본다. 차라리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다. 이제 차오른 눈물을 비워 버리고 우리는 다시 뻔뻔하게 웃으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아빠가 그랬듯이, 무엇이든 어느 날 홀연히 떠날 때가 올 것 같다. 그것이 부모 곁이든지, 학교 울타리든지 우리의 시간은 마침내 떠날 준비를 위한 시간이다. 지난달 명절을 앞두고 갑자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얼굴을 못 본 지는 십 년쯤, 목소리는 한 오 년 만에 듣는 뜻밖에 연락이었다. 유머러스하고 유쾌하던, 에델바이스 노래를 자주 불러주던 아빠는 이제와 내게 자꾸 미안하단다.
생각보다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 매일의 에피소드가 모여 막과 장이 쌓이고, 뜨거운 가슴으로 삶의 페이지를 넘기다 말이 없어진 배우는 마침내 무대 뒤로 사라질 때가 올 것이다.
"화려한 뮤지컬 배우를 상상했던가, 쓸쓸한 배우의 뒷모습에 울컥했던가. 아, 그런데 진짜 우리 삶에는 커튼콜이 없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