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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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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Jun 26. 2020

아들둘 엄마는 엘리베이터가 무섭다

에그 아들만 둘이야?

묻지마라.

아들만 둘이냐고.

미리서부터 한숨 쉴 준비를 하고 묻지를 마라.




둘째아들을 낳고 얼마 안 됐을 때 옆집할머니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동생은? 기집애야?"

"아들이에요~"

아이고오 욕심도 많다!


옆집 할머니는 늘상 '아들이 좋지, 아들이 좋아'하시던 옛날 분이었기에 약간 아리까리하긴 했지만 좋은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실제로 이 말이 내가 아들 둘 엄마로 살게 된 후,

'잘 모르는 어르신'들에게서 들은 말 중에 가장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아직 둘째가 걷기 전, 아기띠에 안겨다닐 때 역시나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할머니가 물었다.

"섰는 건 아들이고, 안은 건 아들이야 딸이야?"

"아들이에요~"
맹세컨대 나는 밝게 웃으며, 조금의 아쉬운 기색도 담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이고 쯧쯧쯧. 딸을 낳았어야지. 야, 너네 엄마한테 여동생 낳아달라 그래."
"저는 남동생이 좋아요오~"

아이 목소리 흉내까지 내가며 막아낸 나의 방어가 무색하게도 할머니는 자기 할 말만 훽 던지고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어휴 여동생이 좋지이~! 남동생이 뭐가 좋아!


말귀를 다 알아듣는 첫째아들과 그나마 말귀를 못 알아들어 다행인 둘째, 불시의 공격에 데미지를 입은 나, 할머니가 던져놓고 간 말만이 엘리베이터에 남아 서로를 어색해하고 있었다.



둘째가 곧잘 걷을 때 즈음이었다.


얼굴이 가물가물한 윗집 할머니가 엘리베이터(이쯤되면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고 계단으로 다녔어야 했나 싶다)에서 말을 붙여왔다.


"에그그 아들만 둘이야?"

갑자기 훅 들어온 '에그그'에 나는 그만 죄인이 된 심정으로 송구스러워하며 답했다.

"네...(아들만 둘이라서 죄송합니다)"

니가 니가 꼬추를 떼고 나왔어야지! 그래야 느엄마 고생 덜 하지!

별안간 둘째에게 옮겨간 할머니의 맹공.

나를 공격하는 것도 참을 이유가 없지만, 나의 최애를 공격하면 절대 참지 않는다.

"할머니, 애기한테 그런 말씀 하지마세요. 애기도 말귀 다 알아들어요."

윗집 할머니와 내 말을 남겨놓고 엘리베이터를 내리는 뒷통수가 따가웠다.

그 후로 한동안 윗집 할머니는 내 인사를 받지 않으셨다.

 


둘째가 버스를 타고도 보채지 않고 장거리를 오갈 수 있게 되었을 때,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할머니가 물었다.

"아들 하나여?"

"얘 위로 형이 하나 더 있어요."

아이고...엄마한텐 딸이 좋은데...니가 딸이었어야지!


욱이 치고 올라오는 순간 아직도 인사를 받지 않는 윗집할머니가 생각났다.

감정보다 이성적인 대화로 풀어나가자!

"에이 할머니 저도 딸인데요, 저희 엄마한테 별로 해준 것도 없어요. 외려 저희 오빠가 더 잘해요."

와씨. 논리야 반갑다. 성공적인 방어였다. 뿌듯해하면서 할머니께 웃어보이는데 웬걸, 할머니의 얼굴빛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하긴....나도 우리 엄마한테 별로 해준 게 없어. 고생만 시켰지."

덩달아 나도 숙연해졌다. 버스정류장엔 엄마생각에 말이 없어진 할머니와 머쓱해진 논리왕과 논리왕의 아들이 버스가 오는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서로를 외면하고 있었다.



말을 않고 넘어가자니 내 가슴에 남고.

말을 하고 넘어가자니 할머니 가슴에 남고.

그냥 더 이상 '에그그'와 '아들만 둘이야'를 한 문장에 담아 물어보시는 분이 없기를 바라던 어느 날.


그렇지. 엘리베이터가 원흉이지.

1층에 살았어야 했어.


빌어먹을 엘리베이터에서 4층 할머니, 그러니까 우리동네 통장님이 물어오셨다.

"에고 이 집은 아들만 둘이야?"

나는 있는 힘껏 안면근육을 써서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어깨도 활짝 폈다.

"네~아들 둘이서 얼마나 잘 노는지 몰라요. 너무 좋아요!"

나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약간 당황한 통장님은 그래도 본인이 하시려던 말씀을 마저 하셔야겠던지 기어이 방아쇠를 당겼다.

"아니 그래도 엄마는 딸이 있어야..."

"봐서 딸도 둘 더 낳죠 뭐."

지하 1층에서 4층은 금방이었다. 통장님은 뭔가 더 말씀하시고 싶은 듯 자꾸 뒤를 돌아보며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안녕히 가세요.





둘째가 유치원에 들어가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알았다. '아들만 둘인지'를 그렇게 궁금해하셨던 어르신들 중, 혼자 다니는 나를 '그때 그 아들둘 엄마'로 알아보는 할머니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드리면 '젊은 사람이 인사를 잘하네' 흐뭇해하시고는 끝이었다. 그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아. 그냥 누군가에게 말이 걸고 싶으신 거였구나.

당장 눈에 보이는 게 애들이니까, 애들을 소재 삼아 말을 붙여오셨구나.

어쩌면 좀 적적하셨던 걸 수도 있겠다. 손주 생각도 나고.


깨달았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내게 '있는 것'을 보고 굳이 '없는 것'을 이르집어 말을 붙여오셨어야만 했을까?

그저 잠깐의 말벗이 필요한 거라고 해도, 조금 더 예의를 갖춰줄 수는 없었을까?

나의 일상을 불행으로 만들면서 다가오는 사람에게 곁을 내어줄만큼의 여유가, 그때의 내게는 없었다.


악의는 없다, 는 말이 가끔은 날선 악의보다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악의도 없이, 나도 모르게 뱉은 말이 누군가에게 두고두고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아직까지는 그런데, 언제까지나 이럴 수 있을 것인지. 훗날 나이가 들어 살갗이 두꺼워지고 감각이 무뎌질지언정 상대가 받을 상처에 무감해지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커버이미지 출처 : https://pxhere.com/ko/photo/694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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