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가 빨갛게 익어가면,
생협 매대에 토마토가 나와 앉아있다.
대형마트에 가면 따로 제철이란 게 없다지만, 그래도 나는 제철을 기다린다. 제철을 기다려 먹는 음식은 기다림의 각별한 맛까지 더해져 다음해까지 두고두고 그 맛을 그리워할 근거가 된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맛이 생협에 보이기 시작하면, 제철이 시작되고 있구나 와락 반가움을 느낀다.
눈을 맞추고 반가움을 표했는데 그냥 두고 올 수 없어 토마토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이야 토마토다"
며칠전부터 토마토 토마토 노래를 부르던 두 아들이 달려와 반긴다.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토마토를 꺼내들기만 했는데 자동으로 식탁 앞에 착석하는 아들들.
토마토를 씻어 자르는 동안 아이들의 재촉을 달래기 위해 에피타이저로 토마토문답을 시작했다.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가면 의사얼굴이 파래진대.
이 문답으로 말할 것 같으면 20여년 전에 친정엄마가 나에게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으로,
"거시기 토마토가 파래지면 의사가 빨개진다든가? 아니아니 의사가 파래지면 토마토가 빨개지는강? 아닌디 토마토가 거시기하믄 의사가 머시기하는 건디."
당시 엄마의 감퇴한 기억력 탓에 비록 실패는 했지만 그때의 내 엄마도 토마토를 썰어 내주면서 이 문답을 던졌었다. 그때의 나도 열살 즈음이었던가 보다. 내 아들이 열살 즈음 되어가는 여름 초입에 그 장면이 떠오르는 걸 보면.
일곱살 작은 아들은 엄마가 뭐라 떠들든지 말든지 '토마토를 내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먹으리'하는 눈빛으로 토마토를 써는 칼끝만 노려보고 있고, 예상대로 아홉살 큰 아들만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응했다.
"왜 의사 얼굴이 파래져?"
"의사는 뭐 하는 사람이지?"
"병 고치는 사람."
"얼굴이 파래진다는 건 무슨 뜻인지 알아?"
"몰라."
"얼굴이 파래진다는 건 뭔가 불안하거나 무서운 일 때문에 얼굴색이 변할 정도로 놀랐다는 뜻이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고 하잖아. 그거랑 비슷한 말이야."
"아."
"의사가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
"병을 못 고치니까!"
"의사가 병을 못 고치는 게 왜 무서운데?"
"돈을 못 버니까!"
"토마토가 빨개지는데 의사가 왜 돈을 못 벌까?"
"사람들이 건강해지니까! 토마토가 건강하게 만드니까!"
아들이 벌써 이만큼 커서 토마토는 물론이요, 토마토 문답까지 소화해내다니.
그간 햇살 아래 영글어온 것이 토마토만은 아닐 것이다.
먹거리도 아이들도 튼실하게 영글어가는 여름이 온다. 이 여름을 지나고 나면 아이들은 얼마나 더 자라있을까?
이른 맏물치고는 제법 달큰한 토마토를 입에 넣고 꼭꼭 씹으며 내년 여름까지 기억할 그 맛을, 오늘의 문답을 마음에 새겼다.